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십일아 Jan 05. 2024

사라진 것들을 나열하라는 말처럼 두려운 일이었으니까.

한계였다. 무언가를 끄집어내기 위해서 힘없이 외쳐대던 말들이 더 이상은 소리쳐지지 않았다. 내가 가진 것들은 하나같이 왜 이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뿐이고, 왜 이토록 못나고 나약한 것들 투성이인 것인지 한심했다. 만약 그 한숨이 나를 쏘아대던 화살이 아니라 나를 감싸주던 햇살이 되었더라면 그 황홀한 빛이 탁한 그림자가 되어 나를 시들게 만들어버리진 않았을 테지. 그러나 끝내 말끔하게 없애버리고 싶은 것들이 되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언제라도 미련 없이 버리고 떠날 수 있길 바랐다. 그깟 가여움 따위는 내게 따질 거리조차 되지 못했다. 뽑을 수 없다면 뚫어서라도 막혀버린 늪의 한 가운데를 거닐며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한 번 파묻힌 마음은 솟아난 시간 위로 굳게 새겨져서 위협적인 흔적이 되어있었다.


먹혀버린 말들이 사라져가는 것을 보면서 멍하니 간지러운 마음을 한참 긁어댔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것들이라도 열심히 끌어안고, 따뜻하게 다독이면 언젠가는 나아갈 거라고 강하게 확신할 때도 있었다. 마음이란 것이 아픔과 슬픔이, 그리고 외로움이 덧대어져 이루어진 것이라, 보기보다 단단한 시간들이 드러날 때가 있었기 때문에 분명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라도 지키기 위해서는 다 흩트려놓아야지, 혹여라도 지나치다가 툭 쳐버리지 않게 저 멀리에 놓아두어야지, 괜히 높이 쌓았다가 흔들리면 안 되니까 여기저기 퍼트려놓아야지. 행여나 망가질까, 주섬주섬 꺼내놓은 소중한 마음들이 다치지 않고, 쓰러지지 않도록 서성이며 엉거주춤거리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이 잘못된 모습이라는 것을 빨리 알아차렸다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아니었다. 알면서도 옳은 길을 찾지 못했던 모습에 절망했을 뿐이었다.



항상 내가 바라보았던 것은 그 너머의 것들이었다.

떠도는 시간 밑으로 가둬진 나의 시선은 절대 나갈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시선을 거두기 위해서는 내게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바라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더 넓은 곳이 아닌 더 깊은 곳을 보기 위해 헤엄쳐야 했다.

시선을 거두지 말고 오히려 가둔 채로 내게 존재하는 것들을 찾아 나서야 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남을 바라보고,

내 것이 될 수 없는 것들을 가지려 하고,

이유 없이 생긴 토라짐과 나와 맞지 않음이 불만이 되어 생겨난 미움에 물을 준다.


이처럼 나를 망치는 방법은 간단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