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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아 Jan 25. 2024

같은 밤을 걸었지만 다른 날을 맞이했다.

너의 말에 세상이 뒤집힌 듯 상처를 입었다. 당장 입을 뗄 수도 없을 만큼, 그렇게 물을 수도 없을 만큼 심장에 박혀서 썩지도 않고 내게 남았다. 시간이 갈수록 깊어지는 상처엔 이젠 아픔보다는 슬픔이 넘쳤다.

네가 남긴 이유가 언젠가는 나를 치유할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랬기 때문에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았고, 그저 너의 말을 곱씹으면서 네가 준 말들을 삼키려고 노력했다.


꽤 오랜 시간을 그렇게 보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깊어지는 시간은 길게 늘어진 시간으로만 남아서 결코 내게 치유가 되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너를 잊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끝내 잊을 수 없다면 미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잊으려 미워하겠다던 슬픈 날을 보내던 그 어느 날에, 난 망설였지만 강하게 너를 돌아섰다. 내 곁에 남은 것들을 긁어내고 끌어모아서 그것들이 나를 밀어주면 힘없이 밀리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 너를 밀어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밀고, 서로를 버렸지만 마주 볼 수밖에 없는 사이였기 때문에, 그렇게 비극적인 사이였기 때문에 서로의 상처를 묻지 않고, 보지 않고 결국은 또 그렇게 어색하게 웃다가 세상이 갈라놓았을 때에야 비로소 헤어졌다.




슬픔이 벽돌처럼 차갑게 박혔던 날.

말없이 들이쳤던 그날에, 서로의 상처가 서로에게 박혔나 보다.

내가 가진 상처를 안았을 때, 덧대어진 너의 상처가 보였을 때.

그때 나는 우리가 가진 상처가 함께 나누어가진 두려운 마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너는 잘 떠나보냈는지 묻고 싶다.

나는 아직 떠나보내는 중이라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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