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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아 Jan 19. 2024

되도록 멀리 갈 수 있다면.

나는 꼭 대답을 할 것이었다. 마치 그 순간만을 기다린 것처럼 매일을 살았으니, 네가 물어보러 오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다가가 너에게 던질 것이었다. 네가 어떻게 말을 걸어오든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너의 질문에 모든 원망이 새겨진 것처럼 나의 대답에는 모든 고뇌가 묻혀있었기 때문이었다.

너는 매번 꼼짝도 하지 않고, 어쩌면 게으른 모습으로 조용히 서성일 뿐이었지만 네가 밤새 되뇌던 소리는 모든 적막을 뚫고 거대하게 비추며, 나를 향해 밀려왔다. 그렇게 너 자신을 애써 감추면서 나를 괴롭힐 거라면 그 모습이 괘씸해서라도 저벅저벅 다가가 너를 밀고, 떨쳐낼 것이었다.



내가 한 발 다가갔을 때, 너는 나를 멈춰세웠다.

불안한 마음이 내게도 느껴질 만큼 온통 너를 비추고 있었다.

너는 잠시 망설이다가 너를 감싸고 있던 것들을 한 겹씩 놓아두고서 나를 향해 걸었다.



어떻게 했어야 했냐는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분명 가슴팍까지 차오르던 말이 있었는데 말이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모습에 쓴웃음이 지어졌다.

수만 가지의 말들이 한순간에 쓸려버렸다.




나는 알지 못했다.

그 고뇌라는 것이 너의 원망 속에도 있었다는 것을.

참고 참다가, 되뇌고 속삭이다가 끝내 밝혀내지 못한 마음 앞에 무릎을 꿇고서 마침내 나에게 왔다는 것을.



나는 한때를 생각하며 종종 생각에 현실을 빼앗기곤 했다.

그러나 빼앗긴 시간들 속에서 찾아낸 답은 결코 한때의 답이 되어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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