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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아 Jan 14. 2024

나의 바탕이 너이길 바라며.

네가 머물고자 하는 곳과 내가 머무르고 있는 곳은 하늘과 바다가 맞물려있는 것처럼 이어져있었으나 뻗어도 닿지 못할 곳에 있었다. 그러니 함께 하자던 너의 말에 먼저 가 있으라고 말은 했지만 나는 가지 않을 것이었다. 비록 이곳이 썩 마음에 드는 곳은 아니었지만 나조차도 이곳을 떠나버린다면 애초에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너조차도 없어져 버릴 것이었다.

너는 나를 두렵게 했고, 서로 모질게 굴며 힘겹던 시간도 많았지만, 너는 나의 모든 날이었다. 너는 나 자신보다도 더 아끼고 사랑했던 계절이었다. 그러니 네가 받아내지 못했던 것들을 내가 받아내려는 이 마음은 이해도, 배려도, 희생도 아니었다. 그저 언제나 네가 나에게 기대왔던 것처럼 난 그 마음에 이제서야 답을 할 뿐이었다.



나를 따르던 너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괜찮을 것이었다. 괜찮을 수 있었다.


천천히 돌아서서, 네가 걸어간 거리를 따라 은은하게 젖어드는 노을을 묻혀, 네가 떠나고 남긴 파도에 못다 한 말을 적었다. 나는 떠돌 수밖에 없으나 너는 떠날 수 있으니, 그거면 충분했다. 외로워하지 말고, 헤매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네가 가고자 하는 그곳에서 모든 걸 이루길 바랐다.




그래, 그 어딘가 어떤 곳에는.

네가 바라던 모양으로, 네가 원하던 모습으로, 네가 그리워하던 공간에, 네가 존재할 거라 생각한다.

그 언젠가, 그쯤에 내가 다가설 수 있을지 확신하진 못하지만 그럼에도 너의 뿌리는 당당히 그곳에 자리 잡아 있을 거라는 믿음에 오늘도 버티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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