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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아 Jan 29. 2024

누구에게나 다르고 매 순간 변한다 하더라도.

이렇게 하면 된다기에 덥석 받아 그렇게 만들어냈고, 저렇게 하면 된다기에 넙죽 받아 그렇게 만들어갔다.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휩쓸리고 떠다니면서 정처 없이 이곳저곳을 옮겨 다녔다. 어쩌면 이것은 진정한 나의 자리를 찾아가기 위한 자연스러운 일 일뿐이었다. 단단하게 붙어있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걸쳐있는 모습이 못나 보일 때도 있었지만 크게 관여하지 않았던 것은 어쨌든 머지않아 나도 나의 씨앗을 심고, 기다림의 시간 끝에 맞이하게 될 기쁨이 생길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계절이 오고 감에 있어 변화가 생기듯, 또 그 변화에 맞춰 각자 다르게 삶을 맞이하듯, 불어오는 태풍에 남들은 저마다 자신의 자리를 찾아 돌아갔건만 그 누구의 뒤를 따라가도 내가 머무를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렇게 하면 된다던 것도 또 저렇게 하면 된다던 것도 모두 그럴 수도 있는 것이었지만 어떤 것들의 다름이 곧 어긋남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모든 것을 따라가려다 기어이 모든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기다림 속에서 모든 것을 만들었지만 결국 아무것도 완성하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어긋난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서 그리고 잃어버린 것이 어딘가에 남겨둔 흔적을 찾을 수 있도록 내 모든 것을 던졌으나 끝내 내가 건져낸 것은 폭풍이 몰아치고 난 후에 너덜너덜하게 남겨진, 다 해진 자리였다. 그때 낡아버린 마음을 마주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내게 남은 선택지가 이것뿐이라는 것에, 또 스스로가 심은 순간이 메마른 선택이었다는 것에 슬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것은 어디에 존재하냐는 물음에 선뜻 보여준 것들은 결코 나의 것이 아니었다.

나의 곁에 함께 했던 것들이 하나 둘 스쳐 지나갈 때, 그제야 내가 잡은 것들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놓쳐버린 것들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참 어리석었다. 그거 하나 빠르게 눈치채지 못했다. 어떤 순간이 영원하길 바랐던 것일까. 또 그 어떤 순간이 소멸되길 바랐던 것일까. 의심 없는 마음의 종착지는 확신이라고 믿었는데 그저 빈 껍데기의 버둥거리는 소리에 불과했고, 습관적인 의심의 종착지는 결국 완벽한 결과라고 믿었는데 그저 알맹이 하나하나를  터트리는 것뿐이었다. 과연 무엇을 그렇게까지 믿었는지 모르겠다.




나만의 뿌리라는 것이 단단하게 박히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기 때문에 여전히 그 과정은 혼란스러움을 넘어 나를 위축시키기까지 했다. 각자가 가진 것들을 창피함 없이 다 소개했던 것들이 멋지다면서 박수받는 일이 되었다가도 어느샌가 또 질타 받는 일이 되어있기도 했다. 그 거리가 만들어낸 매서운 공기를 들이쉬면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공기를 마시고 혼란스러움 끝에 뱉어낸 고민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 낡은 자리를 나의 자리로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거대한 돌덩이들을 골라내고, 저 멀리 자리 잡은 깊은 우물 끝에서 보이지 않는 말들을 꺼내와 갈라진 맘에 부었다.

그렇게 조금씩 나의 자리를 다듬었다. 아직도 여기저기가 부서져 있고, 또 아직도 조금만 부딪히면 떨어져 나가는 곳이 많았지만 그래도 이젠 더 이상 떠돌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점차 나는 깨닫게 되었다. 내가 좌절했던 이유는 처음부터 내가 맞이한 자리가 낡고 해진 곳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다 낡고 해질 때까지 나의 자리를 방치한 나의 모습에 충격받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여전히 내 자리를 바라보고 있을 때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고민들에 파묻힐 때가 많다. 그리고 아주 오래 힘들어하곤 한다. 분명 흔들리며 괴로워할 때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어떤 이가 어떤 이의 자리로 존재하며 돌아가듯, 내가 나의 자리가 온전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언제나 인지한다면 파묻힌 마음을 파헤쳐서 함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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