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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아 Jul 17. 2024

미소의 이야기 (4)

좋은 기억임엔 변함없어, 그런데..


특별함이 특별하게 남는 일은 드물었다. 한 스푼의 기대와 한 스푼의 희망 또 한 스푼의 욕심.. 뭐 여러 것들이 섞이다 보면 어느샌가 완전히 다른 것이 되어 있었다. 특별함을 온전하게 바라보지 못해서였을까. 스스로 만들어낸 착각 속에 아파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와.. 오늘 진짜 비 엄청 내린다. 바지 다 젖음 ㅠㅠ'

'그러니까 엄청 쏟아지더라.'

'아유.. 엄마는 꼭 이런 날에 심부름을 시키냐..'

'근데 어쩐 일로 군말 없이 감?'

'먹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거 다 사라고 해서 갔지~'

'역시 네가 그렇지.'


'야야 뭘 역시야~'

'거기에 심부름 비도 받음 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많은 걸 어케 다 들고 갔냐.. 한 손은 우산 땜에 쓰지도 못했을 텐데.'


'아! 마자. 마트에서 박도현 만났거든. 박도현이 짐 드는 거 도와주고 집까지 데려다줬잖아. 진짜 개 고마움 ㅠㅠ'


"어?!"


나는 순간 육성으로 큰소리를 냈다가 내 소리에 내가 놀라 입을 막았다.


다시 지민이가 보낸 답장을 천천히 읽어보았다.


왜 이렇게 심장이 빨리 뛰는 걸까. 왜 이렇게 마음이 복잡한 걸까.


'??'

'야 읽씹하냐.'


1이 사라지고도 한동안 답장이 없는 나를 기다리던 지민이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난 지민이에게 답장을 보내려다가 전화를 걸었다.


"뭐임?"

"야 마트에서 도현이 만났어?"

"엉. 와~ 야~ 이 자식 아까 내가 마트에서 전화하자고 할 때는 귀찮다고 안해주더만 박도현 얘기 나오니까 바로 전화하는 것 봐."

"마트 안에서 만난 거야? 집까지 데려다준 거야?"

"응~ 말 안 해줘. 나 상처받았어."

"아.. 아니~ 야~ 너 집 도착하면 전화하려고 했어. 원래.."

".. 흠.. 그래 뭐 친구 짝사랑을 응원해 줘야지. 난 좋은 사람이니까.. 그래."


"살 거 다 사고 계산 다하고, 밖 보면서 '와~ 비 어쩔.. 집에 어케 가지 이거 들고.. 적당히 좀 살걸..' 이런 생각 하면서 멍 때리고 있었는데, 누가 갑자기 날 툭툭 치는 거야. 박도현이더라고? 건전지 사러 왔다나? 암튼 그래서 인사하고 가려는데, 조금만 기다리라는 거야. 그래서 '왜? 설마~ 나 도와주려고?' 이러면서 장난으로 말했지? 근데 그렇대. 진지하게 '응.' 이러는거임..ㅋㅋ"


"그래서..?"

"그래서 괜찮다고 했지. 야 나도 양심이 있는데, 걔네 집이랑 우리 집이랑 반대편이잖아. 그리고 마트도 우리 집이랑 더 가깝고."

"그런데도 데려다준 거야?"

"어 ㅋㅋ 뭐라더라. 이 비에 내가 산 거 다 들고 가다간 물귀신 된다나? 걔는,, 유머 감각은 없더라. 얘가 참 잘생기고 착하고 바르고 그런데.. 유머감각이 좀 아쉬워.."


"야..!"

"어..?"

"뭐야. 듣고 있는 거야?"

"어.. 어.. ㅎ 듣고 있어."

"왜 이렇게 영혼이 없어.. 설마.. 질투하냐? 나를?! 야야 아니다. 절대 아니다. 물론! 내가 한 번 더 거절을 했었어야 했는데.. 그건 미안하다.. 야.. 나도 그 비를 뚫고 그 많은 짐을 들고 혼자 갈 용기가 안 났다.. 담부턴 무조건 거절한다 진짜!"

"아니.. 야 질투는 무슨.. ㅋ 너랑 도현이도 친군데.."


작년 겨울방학, 함박눈이 퍼붓던 날. 내가 도현이에게 다시 또 반한 그날의 일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냥 단지 호의였을지도 몰랐는데, 난 뭘 기대한 걸까. 괜히 나 혼자 들뜨고, 나 혼자 설레었던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들떴던 마음이 조금씩 차분해졌다. 조금씩 가까워진다고 느낄 때마다 좋아하는 마음은 저 멀리 뛰어가고 있었나 보다. 마음을 조절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그래도 달려나간 마음을 붙잡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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