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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아 Jul 11. 2024

미소의 이야기 (3)

별거 없는 대화라도 좋은 걸.


그 아이와 같은 반이 됐다. 같은 반이라니.. 같은 반이라니..!! 아마도 세상이 나를 도와주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지민이는 나보다도 더 호들갑을 떨며 축하해 주었다. 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행동했지만 지민이는 숨길 걸 숨기라면서 나를 놀려대기 바빴다. 지민이와 나, 그리고 그 아이. 또 그 아이와 친한 친구까지. 완벽했다.




"도현아! 뭐해?"

"숙제해."

"야.. 이거 다음 주까지 아니야?"

"미리 해두면 편하니까."


지민이가 박수를 치며 다가왔다.


"역시..! 달라. 응? 박도현은 달라. 강미소랑은 전~혀 달라."

"에이씨.! 뭐래~ 야 나도 미리미리.. 하.. 할 때도 있거든?"

"ㅋㅋ 그러셔요? 영어 단어 못 외워서 어제 깜지 도와달라고 했던 사람이 누구였더라~?"

"야.. 조용히 해.. 하하하.. 얜 뭔 자기소개를 하고 있대~"

"ㅋㅋㅋ 맞아. 내 얘기이기도 하지 ㅋㅋㅋ"


우리 둘의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도현이는 재밌다는 듯 살짝 미소 지었다.


"어? 박도현 너 보조개 있네? 오.. 처음 봐..!"


그러나 지민이의 말에 도현이는 곧바로 미소를 지웠다.


"야.. 야 너 저기로 가. 너는 저기가 네 자리면서 여기까지 왔냐?"

"아이고~ 지는~ 너는 저어기~ 뒤 쪽 자리면서."

"아 빨리 가! 빨리 가!"

"아! 아! 때리지 마. 아!! 이게!!"


투닥투닥거리는 우리의 모습을 보던 도현이는 또 슬며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지~ 이 보조개에! 뻑간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상일이가 도현이에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능글맞게 말했다.


"오~~ 역시 그럴 것 같았음 ㅋㅋ"

-"야. 너 긴장해야겠다."-


지민이는 상일이의 말에 맞장구치면서도 내게 조용히 속삭였다.


"아. 치워라.."

"에이~ 쑥스러워하기는 ㅋㅋ"


도현이는 상일이의 팔을 치우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지만 상일이와 지민이는 그런 도현이의 모습이 오히려 귀엽다면서 놀리고 있었다.

그런데 난 함께 웃으면서도 지민이의 장난스러운 말에 괜히 마음이 심란했다. 당연히 내가 좋아하는 것처럼 도현이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아니 얼마나 많을까?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문득 하나의 궁금증이 생겼다.


도현이는 좋아하는 애가 있을까?




"에휴 부럽다~ 집 방향 같아서 집도 같이 갈 친구도 있고~ 나는 혼자 가는데~"

"야! 왜 혼자냐? 내가 있는데?"

"야.. 넌 빠져라.."

"아닛..!"


지민이와 상일이의 투닥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도현이와 나는 '또 그러는구나~' 하며, 익숙하다는 듯 인사를 건넸다.


"ㅋㅋ 왜 이래 ㅋㅋㅋㅋ 야 얼른 집이나 가라. 지민이 너 오늘 외식한다며."

"오! 맞아. 외식하지! 나 정말 비장하다. 아까 점심도 반절만 먹은 거 봤지?"

"오? 너 외식해? 뭐 먹는데? 나도 가면 안 되냐. 나 오늘 엄빠 야근해서 늦게 오는데."

"어. 꺼져 ^^"


"김상일. 너는 내일 발표할 거나 잘 준비해서 와라."

"아.. 박도현 진짜.. 너는.. 행복한 하굣길인데. 숙제 얘기를 해야겠냐."

"어. 다 하고, 모르는 거 있으면 11시 전에 물어보고."

"아~! 역시!! 박도현이 최고라니까아~"


상일이가 도현이를 향해 안겼지만 도현이는 질색팔색을 하면서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와 지민이는 함께 크게 웃었다. 마치 그렇게 인사하는 하굣길이 하루의 마무리라도 된 것처럼 어느덧 익숙해져 있는 우리였다. 왜인지 그 장면들이 매 순간 마음속 깊이 새겨졌다.


"ㅋㅋㅋ 그래 얼릉 가~ 훠이~"

"ㅋㅋㅋ 내일 보자~ 강미소, 박도현~"

"그래."

"잘 가~~"

"야! 같이 가..! 야! 채지민! 야야 너네 잘 가라~ 빠이~"


'잘 가.'라는 인사를 열 번은 더 하고 내일 보자며 인사하는 우리였다.




"도현아 야자 안 하니까 너무 좋지 않니..!"

"좋긴 하지."

"근데 너는 왜 야자 안 하는 거야? 1학년 때까지는 하지 않았었나?"

"집중이 잘 안돼서. 집이 더 편하니까 오히려 더 집중이 잘 되더라고."


"너는?"

"아.. 나는.. 뭐.. 공부 못하잖아~ 안 하는 것도 있지만.. 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뭘 잘하는지도 모르겠고.."

"너 그림 잘 그리잖아."

"어?"

"너 그림 잘 그리던데?"

"어.. 어떻게 알아?"

"너랑 나랑 저번에 공책 바뀐 적 있었잖아. 똑같이 생긴 거."

"아..!"

"그림 쪽으로 갈 생각은 안 해 봤어?"

"해본 적 있긴 하지.. 근데 그냥 좋아한다고 그 일을 해도 되는 건가 싶더라고.."


"솔직히 잘하는 사람들 많잖아.. 너무 많잖아. 그런 사람들 틈에서 내가 보이긴 할까? 갑자기 너무 의기소침해지는 거야.. ㅎ 나 완전 별로지? 해보기도 전에 낙담이나 하고.."

"잘하는 사람.. 많지. 뭐든. 그런데 너도 잘해. 너도 잘 그려. 적어도 내 눈엔 그렇게 보였어. 겁먹을 수는 있지만 해보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는 마."


도현이는 가끔 별거 아니라는 듯이 툭 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그 말에 나와 지민이와 상일이는 위로를 받을 때도 있었고, 알 수 없는 용기를 얻기도 했다. 상일이는 도현이랑 유치원 때부터 친구라고 했었지만 이렇게 다른 둘이 왜 아직까지 친구일까 의구심이 들 때도 많았었다. 그런데 조금씩 알 것 같았다. 상일이가 왜 그렇게 도현이를 좋아하는지, 도현이에게 의지하는지 말이다.


사실 아직도 난 도현이와 이런 대화를 하고, 이렇게 친해졌다는 것이 꿈만 같기도 하다. 갈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박도현이라는 사람 자체가 내겐 너무 큰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것이 너무 좋았다. 나를 더 충만하게 만들어주었고, 내가 나이고 싶도록 더 단단하게 두드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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