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우리가 좋거든."
좋아하는 마음이 서로 통하기란 참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 애와 마주칠 때면 온 세상이 내 심장에 갇힌 듯 두근거렸고, 그 애가 나를 쳐다볼 땐 숨 막힐 듯 기뻤다. 그러나 그 애가 진정으로 품은 시선의 끝에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무너지게 만들었다.
"어? 뭐야. 김상일도 있었네?"
"야.. 미소야.. 얘 좀 어떻게 좀 해봐.."
"ㅋㅋ 하이 강미소!"
지민이가 기분 전환을 하자며 나를 불렀는데 그 자리에 상일이도 함께 있었다. 먼저 카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지민이는 우연히 상일이를 만났다고 했다. 어쩐지 내가 오기 전부터 이미 상일이에게 많이 시달린 표정이었다.
"아니. 김상일 진짜. 눈치 밥 말아 먹었냐^^"
"야. 친구가 어?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다는데, 같이 먹어주면 어디가 덧나냐?"
"아니! 너 친구들 많잖아!!"
"아-! 없다고! 몰라~ 몰라~"
"하.. 내 탓이다.. 그래 내 죄다.. 왜 하고많은 카페 중에 여길 와서.. 그래.. 내 잘못이다.."
"ㅋㅋㅋㅋㅋ 같이 먹자. 난 상관없어."
"와- 강미소 뭐 먹을래 내가 다 사줄게."
"야.. 뭐야 네가 사준다는 말은 없었잖아~"
"어어~? 너 나를 아주 돈으로 보지?"
"아니~ 야~ 그런 건 아니고~ 그래서 뭐.. 뭐 사줄 건데..? ㅎㅎ"
"참나.. 너네가 골라~ 먹고 싶은 거 사줄게 ㅋㅋ"
"아싸~"
"야 박도현. 너 진짜 안 오지?"
"그래 너 진짜.. 공부 그렇게 해서 친구 잃고, 좋은 대학교 가라~"
"어~ 됐네요~"
"ㅋㅋㅋㅋㅋ 아니 됐다고. 어~ 월욜날 봅세~"
상일이가 도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괜히 헛기침이 나왔다. 그래도 내심 도현이도 오려나 기대를 했는데, 상일이의 말투를 보니 도현이는 오지 않는 것 같았다.
"야.. 뭐.. 박도현은 안 온대..?"
내 눈치를 보던 지민이가 나 대신 상일이에게 물었다.
"어- 얘 주말에는 도서관에서 거의 살다시피 해~ 웬만하면 안 돌아다녀."
"그럼 뭐..! 셋이 놀면 되지! 밥 먹고, 카페 가자! 내가 알아 놓은 곳 있거든!"
"야.. 지금 카페인데 또 카페를 간다고?"
"저기요.. 이거랑 그거랑 다르거든요?"
"아니 뭔.. 야 그러지 말고, 밥 먹고 방탈출하자!"
"아.. 나 그거 못해.."
"야 ㅋㅋ 설마 너 어려워서 못하냐?"
".. 그냥 내 스탈이 아니거든?"
"어~? 설마 너 한 번도 탈출 못한 거 아니지?"
"아니거든!!"
둘이 옥신각신 떠들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웃고 있었지만 왜인지 마음은 살짝 아팠다.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상일이는 아빠가 기분 좋은 일이 있었는지 갑자기 용돈을 주셨다면서 먹고 싶은 걸 다 시키라고 했다. 지민이는 '콜!'을 외치더니, 상일이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서 진지하게 메뉴를 골랐다.
"야.. 이거 다 먹을 수 있어..?"
"물론!"
"가능!"
걱정 어린 나의 말에 지민이와 상일이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답했다.
"아- 나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됨?"
"뭔데?"
"아. 아니 물어보지 마. 너 또 이상한 말 할 것 같아."
"아~ 난 궁금해! 뭔데? 뭐 물어보고 싶은데?"
"아.. 수상한데.."
갑자기 궁금한 게 있다고 말하는 상일이의 말을 지민이는 단칼에 거절했다. 그렇지만 난 궁금했다.
"혹시 너네 박도현 좋아해?"
'캑캑'
'아.. 궁금해하지 말걸.'
"야.. 다.. 다.. 당연하지! 친군데! 너는 그럼 나 안 좋아하냐..?!"
갑자기 들어온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사레에 들렸다. 그리고 그 순간, 몇 초전에 질문이 뭘까 궁금해하던 나 자신이 후회스러웠다. 지민이는 그런 나를 보고는 괜히 큰소리를 내며 어떻게든 상황을 정리하려고 했지만 바로 인상을 찌푸리며 자신이 뱉은 말을 후회하는 듯했다.
"아니 ㅋㅋ 뭘 그렇게 당황들 하고 그래~ 나는 그냥 진짜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아이.. 넌 무슨 그런 질문을 하냐.. 밥맛 떨어지게.. 큼.."
지민이의 말에 피자를 씹던 상일이는 콜라를 벌컥벌컥 마시고 난 후, 답을 했다.
"괜한 걱정일 수도 있지만 만약 너네 중에 도현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잘 될 일 없을 거라고 말해주려고."
상일이의 제법 단호한 말투에 지민이도 나도 토끼 눈이 된 채 상일이를 쳐다봤다. 그러다가 나보다 먼저 정신이 든 지민이가 상일에게 따지듯이 받아쳤다.
"야! 그걸 네가 어떻게 아냐?"
"알아."
한층 더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하는 상일이였다. 이번엔 내가 물었다.
"어떻게 아는데?"
"박도현 걔. 좋아하는 사람 있어."
순간, 모든 게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모든 게 멈춘 채, 내 심장만 쿵쿵 뛰고 있는 것 같았다.
지민이는 또 어이없다는 듯 상일이에게 그걸 네가 어떻게 확신하냐고 물었지만 그 물음 끝에 지민이도 무언갈 깨달은 듯이 보였다. 그랬다. 김상일과 박도현은 유치원 때부터 알았고, 아주 오래된 사이였으며, 둘도 없는 친구였다. 김상일의 말은 분명 일리가 있었다.
"나는 지금 우리가 좋거든."
상일이의 마지막 말이 잊히지 않는다. 상일이는 우리의 우정에 금이 가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것 같았다. 맞다. 나도 지금의 우리가 좋다. 함께 웃고 떠들며, 더 재밌고 행복한 일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그렇게 만들어준 우리가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