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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아 Jul 24. 2024

미소의 이야기 (6)

내 첫사랑은 짝사랑.


뭘 어떻게 하고 싶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물론.. 만약 도현이가 나와 같은 마음이라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이렇게 짝사랑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미 많은 걸 해주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김상일이.. 너 박도현 좋아하냐고 묻더라?"

"그래서 뭐라고 했어?"

"아니라고 했지.. 근데 나도 모르게 걔 눈을 피하면서 말해가지고.. 눈치 빠른 김상일이 알았을 것 같기도 하고.. 근데 김상일은 박도현이 짝사랑하는 거 옆에서 다 지켜본 애잖아. 어쩌면 누구보다 그런 모습을 잘 알아챌지도 모르고.."

".. 그렇네."


예상한 일이었다. 도현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던 상일이의 말에 표정관리가 안 되었기 때문에 상일이는 바로 눈치챘을 것이다. 어쩌면 그 얘기를 하기 훨씬 전부터 알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경고.. 같은 것을 던졌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한마디 날렸지. 혹시나 좋아해도 네가 뭔 상관이냐고! 신경 끄라고! .."

"ㅋㅋ.. 상관없어. 알아도."

"진짜? 걔가 박도현한테 말할 수도 있잖아. 아니 뭐, 물론 걔가 그렇게 생각 없는 애는 아니지만.."

"뭐~ 한편으로는 그렇게라도 알아줬으면 싶기도 하고~"

"야~ 그래도 고백은 네가 직접 하는 게 좋지~ 그래야 아쉬움도 안 남고!"

"맞아. 또 그렇긴 해?"

"뭐야 ㅋㅋ 야.. 근데 넌 박도현 어디가 그렇게 좋냐? 아니 나도 짝사랑 꽤나 해본 사람인데.. 그땐 진짜 막 그 사람만 보이고, 심장이 막 내 것이 아닌 것 같고 그래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좋아하는 감정이 사그라들던데? 내가 그렇게까지 좋아한 게 아니라서 그런 건가..? ㅎ"

"나도 잘 모르겠어.. 음.. 좀 부끄럽긴 한데..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게 내게 박힌 것 같아. 그냥 갑자기 나한테 박혀서.. 어느 순간 내 맘 한편에 자리를 잡더니, 점점 커져가고 커져가다가 어느샌가 온통 '내'가 되어버린 거지. 온 신경이 걜 향하는 거야. 그렇게 내 기분도 내 세상도 내어주는 거지."


처음에는 좋아한다는 감정을 잘 알지 못했다. 그러다 '아.. 이런 게 좋아하는 거구나'라고 느꼈을 땐 부정하기 시작했다. 내 마음을 남에게 준다는 건 (물론 상대방은 모르지만)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했다. 잠깐 맡기는 것도 아니고, 내 마음을 왜 그렇게 쉽게 줘버리고, 휘둘리는 건지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바보 같은 짓이, 그 웃기는 일이 이토록 멋지고 근사한 일이 될 줄이야.


문득 내 모습에 놀라곤 한다.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다는 것은 꽤 두근거리는 일이기도 했다. 첫사랑의 뜻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하지만 내 첫사랑은 변함없이 짝사랑하는 그 아이일 것이다. 서로가 통하는 마음이든, 혼자만 바라보는 마음이든. 그건 나에게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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