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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아 Aug 01. 2024

미소의 이야기 (9)

고백할 마음.


좋아한다는 것은 어떤 말을 해도 어떤 행동을 해도 그에게 실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상처를 받을까 두렵고, 상처를 받았을 땐 괴롭지만 사실 그 상처는 그 아이가 내게 준 것이라기보다는 내가 내게 낸 상처와 다름없었다. 그러니까 상처도 두려움도 내 마음에만 간직하면 되었다.




"...! 봤다고?"

"응.. ㅎ"

"헐.. 언제? 어디서? 아니, 나랑 같이 있었잖아..?! 왜왜 너만 봤지? 나는 못 본 거지?"

"야야..ㅋㅋ 진정해. 너 그때 김상일한테 엄청 화나 있었잖아 ㅋㅋ 그때.. 그때 우연히 봤어."

"아.. 야.. 괜히 내가 그날 도서관 가자고 해서.. 미안하다.."

"아니 ㅋㅋㅋ 왜 미안해 네가. 그리고 미안할 일도 아니고. 나는,, 오히려 좋아. 그런 식으로 보게 될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막상 보고 나니까. 후련해."


"도현이가 그런 표정 짓는 거 처음 봤거든.. 나.. ㅎ 조금 웃길 수도 있지만.. 도현이가 조금만 다정하고, 조금만 잘해주면 혹시 나랑 같은 마음인 건가? 하는 생각할 때 많았다? 그래서 막 용기가 생길 때도 있었어..ㅎㅎ 뭐~ 그럴 때면 바로 아니구나. 싶은 상황들이 터지곤 했지만 ㅋㅋ.. 그런데 이번에 보니까 확실히 알겠더라. 좋아하는 사람을 보는 표정. 그 표정 하나로 모든 게 설명되더라고.."


난 도현이의 짝사랑을 누구보다 이해할 수 있다. 도현이의 마음을 다 안다고 할 순 없지만 그래도 그 소중함을 누구보다 느낄 수 있다. 솔직히 도현이와 오유리가 함께 걸어가는 모습을 봤을 때 왜인지 비참한 느낌이 들었고, 도현이의 그 따뜻한 웃음과 눈빛을 받는 오유리가 부럽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담담해졌다. 복잡하게 떠다니던 마음들도 하나둘씩 내려앉기 시작했다. (물론 그날 좀 울긴 했다.)




"생각 좀 해봄?"

"ㅋㅋㅋㅋ 와.. 내가 너랑 이런 고민을 공유할 줄이야.."

"야야~ 영광인 줄 알아라~ 이래 봬도 나 공감 왕이다."

"윽.. 공감 왕이 뭐냐?"

"아이.. 나 간다."

"아아아..! 미안ㅋㅋ 미안 알겠어."


"흠.. 고백.. 안 하려고."

"흠..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뭐.. 후회.. 할지도 모르지? 그런데 지금까지의 생각은 그래."

"겁먹은 거 아니고?"

"ㅎㅎ.. 그런 거 일 수도 있지."

"누군갈 좋아하면.. 나도 모르던 나를 만나게 될 때가 있더라? 분명 행복한데 계속 어딘가 숨고 싶을 때도 있고. 마주치고 싶은데? 또 막 피하게 될 때도 있고.."

"오.. 뭐야.. 너도 누구 좋아해 본 적 있어?"

"야~ 당연하지~ 누가 나를 좋아하는 게 더 어울리긴 하지만 나도 누군갈 진심으로 좋아해 본 적 있다고."

"앞에 말은 공감 못하겠지만 뭐.. 그래 ㅋㅋ"

"참나 ㅋㅋㅋ"


"뭐.. 고백은.. 해봤고?"

"응."

"헐? 진짜?"

"응."


김상일은 되게 뿌듯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 그 표정 되게 짜증 난다 ..^^"

"왜 너는 못한 고백이라서~~?"

"아이씨 이게 ㅡㅡ"

"아 ㅋㅋ 알았어 알았어 ㅋㅋ 미안ㅋㅋ"


"암튼 뭐.. 대단하네. 겁쟁이가 아니야 넌."

"이건 너한테만 말해주는 건데. 완~전 겁쟁이야 나. 얼마나 전전긍긍했는데 고백해놓고 ㅋㅋㅋ 어후, 그때 진짜 괴로웠다 ㅋㅋ"


"그래도 후회는 안 해."


후련한 듯 말하는 상일이었지만 그와는 다르게 복잡한 표정을 보니, 괜히 내 마음도 복잡해졌다.


"그냥.. 불현듯 알고 있었던 것 같아. 상대방은 나를 친구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는걸.."


"수백수천 번 망설였는데.. 그냥 어느 순간 말하고 있더라. 아차 싶었는데. 이미 늦었고.. ㅋ 예상한 대로 걘 거절을 했고, 난 예상은 했지만 상처를 받긴 했지. 그래도 친한 사이였으니까, 꾸준히 잘 지내긴 했는데.. 그래도 어딘가.. 더 이상 가까워질 순 없더라고. 그렇게 조금씩 멀어졌지."


"예전의 내가 생각나기도 하고 그래서 전에 너네한테 괜히 막무가내로 막 단호하게 말했던 것 같아."

"나라도 그랬을 것 같아. 너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야. 단단할 것만 같던 사이가 틀어져 버렸다는 걸 알았을 때, 그게 또 괜히 내 탓인 것만 같을 때. 버겁잖아 그런 감정."

"강미소 너 은근히 속 깊다? 맨날 숙제 안 해오고, 책상에 엎드려 잠만 자는 것 같더니만 ㅋㅋ"

"야. 간만에 진지한데 분위기 좀 깨지 마라."

"ㅋㅋㅋㅋ 알겠어. 암튼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네 마음이 원하는 대로."


후회?..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시간이 아주 많이 흘러서 나의 시절을 돌아봤을 때, 설레었고, 따뜻했고, 함께 웃으며 즐거웠던 추억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다. 난 도현이와 가까운 사이지만 어느 선 이상은 가까워질 수 없다. 그걸 너무 잘 알기에 슬프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선을 굳이 내 손으로 끊어내고 싶지도 않다. 만족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만족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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