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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아 Aug 07. 2024

미소의 이야기 (10)

도현이의 추억.


그래도 짝사랑을 끝낼 수는 없을 것 같다.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은 없으니까. 계속 좋아하던, 좋아하는 걸 멈추던.. 뭐든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내일 비 온다더라~"

"아.. 그래?"

"ㅋㅋㅋㅋ 표정 굳는 거 봐. 넌 눈 오는 날도 비 오는 날도 안 좋아하더라?"

"날이 안 좋으면 자전거를 탈 수 없거든."

"자전거 타는 거 좋아해?"

"응.."


도현이는 그 말을 끝으로 회상에 잠긴 표정이었다. 그리고 떠올리고 있는 그 기억을 꺼내서 내게도 보여주었다.


"난 자전거를 친구한테 처음 배웠어. 초등학생 때."


도현이의 말속에 그 ‘친구’가 오유리라는 것을 짐작했다. 내가 물을 자격이 있을까 싶었지만, 내심 궁금했던 그 아이와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들려주는 도현이었다.


"어렸을 때 겁이 많았거든. 그래서 자전거 타는 것도 무서워했어. 그래서 매번 김상일이 태워줬어. 그걸 지금까지도 놀린다.."

"ㅋㅋㅋㅋ 김상일은 너 놀리는 재미로 사는 것 같아."

"내 말이 ㅋㅋ"


"그러다 어렸을 때 잠깐 학교 같이 다녔던 친구가 다시 이쪽으로 전학을 온 거야."

"너무 반갑더라.."


도현이가 짓는 미소에 살짝 깊어진 보조개가 행복해 보였다.


“그.. 친구가 가르쳐 준 거야? 자전거?”

“응 ㅋㅋ 완전 스파르타로 가르쳐 준 거 있지? 학교 갈 때도, 학교 끝나고 나서도. 매일매일 알려줬어. 숙제할 힘도 없어서 그냥 잠든 적도 있다니까?”

“와- 네가?”


이렇게 들떠서, 이렇게 설레는 표정으로. 많은 말을 하는 도현이를 처음 보았다.


“그렇게 배웠더니, 어느 순간 내가 자전거를 타고 있더라? 와.. 그때의 기쁨이 잊히지 않아.”

“그치..! 나도 그랬어. 처음에 자전거 탔을 때, 그 희열..! 나는 고등학생 되고 나서 자전거 탈 수 있었거든.. ㅎ”


창피하다는 듯 웃는 나를 보던 도현이는 더 깊어진 보조개를 보이며, 손으로 입을 살짝 가리고 크게 웃었다.


"야.. 비웃냐..?!"

“아니 .. 아니 ㅋㅋ 뭔가 음.. 의외?라서.”

“ㅋㅋ 참나.. 그래서..? 그 뒤 이야기는 없어? 그.. 여자아이와는..”

“음.. 그런데 분명 기뻤는데.. 집에 오니까 괜히 슬퍼지는 거야. 뒤에서 잡아주고, 엎어지면 바로 달려와서 괜찮냐고 옷 털어주고.. 매일 많은 시간을 같이 있었는데, 내가 이젠 자전거를 타게 됐으니까. 더 이상은 그런 시간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언제나 도현이가 말끝에 남기는 정적은, 그 어떤 말보다도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러했다. 그 정적이 그동안 도현이가 간직했던 마음을 고이 펼쳐내고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 좋아했나 봐."


자신도 모르게 툭 뱉어낸 말에 쑥스러운 듯이 웃다가 그때를 회상하는 듯, 눈빛이 아련해졌다.


상일이의 말이 맞았다. 도현이는 그 아이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행복한 듯했다. 난 도현이의 웃는 모습에 덩달아 웃음이 나오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려왔다.


"그때 자전거 배웠을 때, 한 번 심하게 엎어진 적이 있었거든? 근데 그 애가 너무 미안해하는 거야. 분명 내 잘못이었는데도.. 걘 꼭 가방에 밴드를 가지고 다녔는데, 토끼가 그려져있는 밴드를 붙여줬어. 그날은 날 집까지 데려다주기까지 했다?"

"오~ 뭐야~ .."

"나 그 밴드, 3년도 넘게 가지고 있었어 .. ㅋㅋ"

"헐 진짜? 와.. 너도 진짜.. 찐 사랑이었구나.."

"김상일이 발견하지만 않았어도 나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을지도 몰라."

"걔가 버렸어? 설마?"

"응.. ㅋ 몰랐을 테니까. 웬 너덜너덜한 쓰레기가 있나 싶어서 버렸대."


"그 밴드 버린 날 김상일한테 말했어. 좋아하는 사람 생겼다고. 그런데 안 믿더라? 처음엔 관심 없는 듯한 표정이다가 나중엔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다가 마지막엔 충격받은 표정이었어. 걘 상상도 못했나 봐. 그래도 모른 척해 주고, 신경 써주더라고. 김상일 걔, 꽤 괜찮은 녀석이잖아."

"그치.. ㅋㅋ"


"... 고백은 해봤어?"


이게 왜 궁금했을까. 이게 왜 중요한 걸까.

빨간 신호등이 깜빡거리며 흔들거리는 시간 동안 도현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응."


그러나 흔들림이 멈추고 곧바로 초록 신호등이 밝게 빛날 때, 짧게 답한 도현이의 말엔 망설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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