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현이의 이야기.
도현이가 오유리에게 고백을 했을 때, 오유리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그 자리를 피했다고 했다. 그리고 도현이는 오유리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하는 순간, 오유리의 표정을 보고는 곧바로 후회가 밀려왔다고 했다. 또 며칠째 자신을 어색해하는 오유리를 보며, 괜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고 했다. 그때로 돌아가 자신이 한 말을 주워 담고 싶을 정도였다고. 할 수만 있다면 그때의 오유리의 기억 속에서 자신이 한 고백의 말을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였다고.
그 모습을 본 상일이는 도현이에게 왜 고백했냐며 한숨 섞인 걱정을 내비쳤지만 누구보다도 도현이의 마음을 헤아려 주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한순간에 낯설어져버린 그들의 관계가 슬펐고, 괜히 화가 나기도 했다고. 아마도 본인이 먼저 비슷한 일을 겪었기 때문에 더 마음이 안 좋지 않았을까.
멀어져 버린 그 시간 동안 도현이는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고 했다. 도현이도 서먹해져 버린 사이가 너무 견디기 힘들었고, 다시 예전과 같은 사이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고 했다.
'전에 내가 너 좋아한다고 한 거.. 그거 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 정리하려고.'
'우리가 친구인 게 난 좋거든. 다시 예전처럼 지낼 수 있을까?'
도현이는 어린 마음에 '좋아하는 마음을 끝내야지.' 하고 생각하면 바로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오유리 또한 그렇게 생각했었나 보다. 자신의 그 말에 안도한 듯 환하게 웃던 오유리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도현이도 오유리도 함께한 추억이 너무 소중했을 것이고, 서로의 존재가 힘이 되었을 테니, 그 관계를 잃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돌이킬 수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돌이켜, 돌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도현이는 오유리를 마주칠 때마다, 좋아하는 마음이 한순간에 정리되는 일 따위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오히려 좋아하는 마음을 더 강하게 느낄 뿐이었다고.. 더 멀어지려고 해봤지만 멀어지려고 하면 할수록 더 생각이 나서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오유리 앞에선 다 정리가 된 듯,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행동했지만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도현이와 상일이 그리고 오유리는 여전히 좋은 친구였지만 어딘가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도현이는 항상 오유리 옆이었다. 다가가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고,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정말 다 정리가 된 것처럼. 감쪽같은 모습에 오유리는 속은 것일까. 아니면 속은 척 한 것일까. 아마 후자일 것 같다. 그렇지만 오유리도 친구로서의 도현이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강했을 것이다. 자신이 이기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예 끊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도현이가 주말마다 도서관에 가는 이유가 오유리 때문이었을까. 도현이는 오유리에게 천천히 다가가고 있는 걸까. 천천히 멀어지고 있는 걸까.
도현이는 다시 오유리를 만나게 되고, 자전거를 배우면서 자신의 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지만 아마 훨씬 그전부터, 오유리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오유리를 좋아하고 있었을 것이다. 도현이가 오랜 시간 간직한 그 마음을 짐작해 보았지만 감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소중하고 소중한 것이었기에, 다시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