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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오면 지나가리라는 희망을 품고.

by 십일아


어떠한 시절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 기대로 잔뜩 힘이 들어간 나의 마음은 금방이라도 무엇인가 해낼 듯했고, 어렵지 않게 원하는 것들을 손에 넣을 듯했다. 그러나 그 힘은 욕심이었으니, 언제 주저앉아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루하루 기쁘게 일어나던 시간 속에서 조금씩 외로움에 잠들던 시간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힘이 세지고 있었다. 뭐든 이루어지리라는 기대는 어느덧 결코 그래서는 안된다는 어두운 욕심이 되어버렸다.


걷잡을 수 없는 기억은 회피하려 할수록 짙게 퍼져갔다. 흐려진 화면을 아무리 닦아내도 선명한 무늬는 애초에 없었던 듯 형체를 잃어갔다. 돌이킬 수 없는 기억은 잊으려 할수록 검게 번져갔다. 꼬여버린 실을 아무리 잘라내도 순순히 따라오기란 벅찬 듯 힘없이 끌려갔다. 물든 맘으로 멍든 숨을 쉬었다. 살짝 아려오는 느낌이 익숙하게 아팠다. 그렇게 잠에 들었다.


그대로 도망치고 있었다. 더 이상 나아질 수 없을 거라고 중얼거렸다. 미안하지만 어떠한 시절도 함께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저 변명만 늘어놓고 있었다. 미친 듯이 뛰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줄곧 망치고 싶지 않았던 그 시절로, 그러나 끝내 도망쳐 버린 그 시절로 미친 듯이 뛰어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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