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수상 수상 그리고 등단
펫로스 전문 상담을 받으며
이전보다는 확실히 덜 울게 되었고,
더디지만
아픔과 슬픔에 대한 생각이 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전의 나와는 확실히 다른 '나'처럼 느껴졌다.
마치 내가 이전의 '나 자신'을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여행을 가면 국내외 어디서든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길을 가르쳐 줄 정도로 길눈이 밝았던 나는 자꾸만 길을 잃었다. 지하철을 타고 친구를 만나러 가던 어느 날, 6호선만 3번을 갈아탔다. 자꾸만 엉뚱한 곳에 내려 건너가서 다시 타기를 반복. 정말 우스갯소리로 하던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딱 그 느낌이었다.
방향 감각만 잃은 것이 아니었다.
시간과 날짜의 감각도 흐려져 하루에도 수십 번씩 시계와 달력을 확인해야 했다. 원래의 나는 10시간도 넘게 앉아 공예 작품에 몰두하곤 했는데, 한 시간도 집중하기 어려웠다.
책을 읽어도 눈으로만 따라갈 뿐 그대로 지나가듯 전혀 기억에 남지 않았다. 같은 장을 소리 내어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어야만 겨우 머리에 남았다. 드라마나 영화 역시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자꾸만 딴청을 피우거나 쓸모없는 부산한 움직임만 늘었다. 풀리지 않는 실타래를 손에 쥐고 있다가 풀지 못한 채 그냥 놓아버리기를 반복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글을 쓸 때만큼은 달랐다.
원래 글을 쓰는 사람도 아니었고,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글을 쓰면 마음이 정리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모카에 대한 글을 브런치북 연재 글을 올릴 때마다
다시 모카와 만나는 듯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좋은 기억 외에 아픈 기억까지 함께 몰려와 한없이 울기도 하고 그 감정이 버거워지자 시로 옮기기 시작했다. 내가 글을 쓰게 될 것이라는 것을 생각지 못 한만큼, 시를 쓸 거라고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마음속에서 울리는 소리와 감성을 나도 모르는 사이 글로 옮기고 있었다. 길을 걷다가도, 자전거를 타다가도, 떠오르는 순간이 오면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서서 메모장에 적었다.
그렇게 모인 시들을 조심스레 정리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문학대전 공모전에 응모했다.
미술대전 공모전은 수차례 경험이 있었음에도 문학대전 공모전이 더 떨리고 두려웠다. 대상과 최우수상, 단 세 명만 뽑는 자리였으니 어떠한 기대도 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브런치에 글쓰기를 시작한 지 고작 두 달 차에, 글쓰기와 시에 대해 배운 것도 연습한 것도 거의 없었으니까.
그저 ‘브런치 스토리 합격’이라는 기적 하나로도 충분하다 여겼다.
하지만 얼마 뒤 결과 발표날, 나도 모르게 하루 종일 휴대폰만 바라보았다. 해가 저물어가고 하루가 끝나도록 휴대폰은 잠에 들기라도 한 듯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당연한 결과라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모카에 대한 그리움에 마음의 허기가 더 깊어지는 듯했다. 그렇게 긴 밤을 지내며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상을 받는 그날까지 도전하고 또 도전하자. 모카를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라도 포기하지 말자.'
그런데 다음 날, 낯선 번호로 연락이 왔다.
내가 응모했던 공모전 협회 회장님이셨다. 응모작이 너무 많아 심사가 예상보다 길어져 결과 발표가 늦어졌다며 프로필 사진과 수상 소감을 요청하셨다. 순간 믿기 어려워 조심스레 여쭈었다.
“제가 어떤 상을 수상하게 된 건가요…?”
“시조 부문 최우수상입니다.”
전화 통화 후 문자로 짧고 간결하게 주셨던 답변
(아직 기사 발표는 없다)
믿기지 않는 꿈만 같은 결과였다.
'내가 시인이 되다니...'
나는 모카 덕분에
글쓰기 시작한 지 2달여 만에 시인이 되었다.
그것은 브런치 스토리 합격 후 모카가 내게 준 두 번째 기적이자 선물이었다.
브런치북 합격과 시조 시인으로의 등단.
나는 모카가 내게 준 기적 같은 선물이라 믿는다.
모카가 정말 내 곁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여전히 모카는 내 곁에 있다는 믿음.
그 하나로 아픔과 슬픔이 점점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다른 기적을 기다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