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기억, 흐르는 조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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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기억은 단순히 침전하거나 쌓이는 것에 그치지 않는바. 언제고 어느 날이고, 그 층위들 사이엔 늘상 무수한 틈이 자리할 수밖에 없으리라. 이런 균열들은, 어쩌면 작은 파열음에서 시작되었을는지. 그리 우리는 종종 그 틈으로 발을 헛디디곤 하고, 또 그 틈 사이로 무언가 스며든다는 걸 감지하기도 하곤 하지 않던가.
어릴 적 미처 해소하지 못한 감정, 설명되지 못한 상처, 이름 붙일 수 없었던 순간들. 기억의 지층 속에 간신히 가려져 있던 어느 날, 그것들은 어느 사이 벽을 타고 슬며시 새어 나오곤 하는 양. 그렇게 종종 우리는 무너지기도 하는 것이다. 과거는 과거로 그토록 봉인되어 있지만은 않겠으므로, 과거 어느 날의 틈은 현재의 가장 연약한 자리를 잔혹하게 찔러 주파해 들어 오기도 하는 모양이겠으므로.
허나 이 틈은 그에 아울러 숨 쉴 여백이자 이후 예의 무너진 자리 위로 새롭게 쌓아 가능성이 되기도 할 텐데. 가령, 기억의 틈이 있기에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다시 묻고, 이처럼 스스로 다시 구성하고자 하는 충동을 밀어붙이기도 할 수 있겠으니. 물가의 작은 틈에서부터야 물줄기는 언젠가 새로운 유속의 맹아로서 터져나갈 기회를 비로소 얻듯, 우리 삶의 모든 유속은 이 틈으로부터 마침내 제 길을 찾아 나서기도 할 수 있을 텐데.
그처럼 예의 무수한 틈은 기억의 하자일 수도 있겠으나, 그에 아울러 새로운 운동성을 피워내는 유속의 출발점이기도 하겠다. 언젠가 그 안으로 무너지고, 또 여느 날은 그 안에서 길을 내며, 다시 어느 순간들엔 그 안으로부터 다시금 자신을 틔워 올리는 것. 어쩌면 이는, 저 무수한 틈 위에 불완전하게 균형을 잡고 그로 인해 멈칫거리기도 하며, 또 그로부터 힘을 받아 더욱 박차를 가하기도 하는 그런 유속일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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