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령, 피할 수 없는 운명
1980년, 교육대학교는 2년을 수료하면 교사 자격증이 나오고 순차적으로 발령이 났다.
대학교 소재지인 직할시에 발령이 나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이 별따기였다.
500명 정도의 재학생 중에 10명~20명 정도만 직할시로 발령 나고 나머지는 도내 발령이었다.
나의 교대 진학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기울어가는 집안 형편을 고려하여 내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나의 자존감은 바닥에 떨어졌고 당연히 학교 생활이 즐겁지 않았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 이유 같지 않은 이유였다.
수업을 집중해서 듣지 않았으니 머리에 남는 것이 없었다.
가끔 수업을 땡땡이치고 이웃 학교나 유원지 등으로 놀러도 다녔으니 모범 인생 중 최대의 일탈도 서슴치 않았다.
진짜, 얼마나 쓸데없는 짓이었는지 금방 닥친 졸업과 함께 발령을 받으며 뼈저리게 후회했지만......
3월 1일 자 발령은 20명 내외였다.
나머지 발령은 1년을 끌며 지루하게 시간을 끌었다.
직할시 발령이 20명 남짓인 것을 생각해 보면 3월 1일 자 발령자는 전교 40등 안에는 들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나는 3월 1일 자 발령자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그것도 순번이 앞인 것을 보니 직할시 발령에 아슬아슬하게 떨어진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는 좌절했다.
조금만 더 열심히 공부할걸......
쓸데없이 방황하며 학업에 전념하지 못한 것을 또 한 번 뼈저리게 후회했지만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직할시에 발령이 나면 평생 직할시에서만 근무하니 시골 학교에서 근무할 일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었다.
2년이라는 짧은 대학 생활을 끝내고 발령받는 나이가 20대 초, 꽃다운 청춘이었다.
시골 오지나 벽지에 발령이 나면 청춘사업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였다.
시골에 박혀서 몇 년 보내다 보면 나이만 먹고 제대로 된 연애하기도 힘드니 결혼하는 것도 순조롭지 못할 것이라는 당시 나와 친구들의 우려와 현실 해석이었다.
그 당시에는 일요일에 당직 근무까지 했기에 당직이 돌아오는 순서도 빠를 것이고 이래 저래 청춘사업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 임은 불을 보듯이 뻔했다.
게다가 시골의 소인수 학교에 발령을 받으면 업무량이 가중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보다 업무에 치여서 힘들다는 이야기는 선배들에게 들어서 익히 알고 있었다.
3월 1일 자 발령 난 지역은 대부분 'O군', 'B군', 'C군'이라는 3대 벽지였다.
3월 1일 자 발령자 명단에 이름이 오른 것은 기쁜 일이 아니었다.
그 이후에 발령 나는 사람은 대도시와 인근의 군이었기에 나의 발령은 가장 안 좋은 타임이었던 것이다.
나의 첫 발령을 기뻐하시는 부모님과 달리 나는 불안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물론 하루라도 빨리 발령이 나서 부모님의 짐을 덜어 드렸다는 안도감도 조금은 있을 정도의 양심은 있었다.
나의 절친인 S는 5월에 발령받았는데 철강 도시인 P시의 학급수가 60 학급이나 되는 큰 학교에 발령받았다.
그 말은 업무량도 급감한다는 말이고 그만큼 근무 조건이 좋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휴~차라리 공부를 안 할 거면 아예 더 못하던지 어중간한 성적으로 위에서 떨어지고 아래에서도 밀렸다.
발령 날짜가 다가오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형량을 기다리는 죄수의 심정이 이럴까?
아버지 절친분께서 경찰서에 근무했는데 교육청에 문의를 해서 나의 발령지를 알게 되었다.
"땡땡군에 발령이 났다네."
땡땡군이라면 태어나서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시골이었다.
3대 오지는 면했다는 건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나는 우리 집 뒷마당에 가서 펑펑 울었다.
태어난 후, 이렇게 많이 울어 본 적은 처음이었다.
두 눈이 토끼눈이 되도록 울고 또 울었지만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며칠 후면 나는 발령지로 떠나야 했다.
가슴에는 삭풍이 불고 온 세상이 끝난 것처럼 마음이 내려앉고 이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었다..
좀 더 열심히 공부할 걸 하는 회한과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며칠 밤을 꼬박 새웠다.
나는 처음부터 교사의 자질이 없는 함량 미달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만날 아이들이 얼마나 소중한 인연인지, 그리고 내가 써 나갈 교육 일지가 얼마나 귀하고 의미 있는 것인 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