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임 교사에게 하는 인사 매뉴얼
교육장실에서 발령장을 받았다.
교육장님께서 부모님을 향해서 90도로 인사를 하며,
"자녀분을 훌륭하게 키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육자의 길이 결코 쉽지 않은데 힘든 길로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모님께서도 폴더폰처럼 몸을 접고 황송해하셨다.
부임지로 가는 덜컹이는 버스 안에서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아이고, 그 훌륭하신 교육장님께서 그렇게 큰 절을 하며 감사하다고 하니까 기분이 좋더라. 우리 애야-나의 애칭-가 을매나(어찌나) 자랑시럽던지(자랑스럽던지)."
'에휴~부모님이 이렇게 좋아하시니 나 교대 간 것 잘한 것 맞지?'
다시 한 시간을 달려 미니어처 같은 시골 학교가 보였다.
갑자기 가슴이 방망이질을 한다.
두려움, 설렘, 기대감,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복합적이고 미묘한 마음으로 걸음은 뒷걸음질 쳐졌다.
학창 시절, 공포의 장소였던 교무실이 나의 근무 공간이 된다.
학창 시절, 탈출만이 지상과업이었던 교실에서 이제는 탈출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한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사선을 넘듯이 교문을 넘어섰다.
나이가 지긋하신 교장, 교감선생님께서 현관에서 맞아 주셨다.
교장실에서 교장선생님이 부모님을 향해서 90도로 인사를 하셨다.
"훌륭하게 키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육자의 길이 결코 쉽지 않은데 힘든 길로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귀를 의심하며 여기가 교육장실인가 순간 헷갈렸다.
어쩜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건네는 인사말이었다.
초임 교사와 부모님께 처음 하는 인사말에 대한 매뉴얼이 있나?
아니면 교육 선배님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심 어린 말인가?
부모님의 허리가 더 깊숙이 내려 갈수록 부모님의 어깨와 입꼬리는 승천하셨다.
'에휴~훌륭하게 키워 주신 건 맞는데 내가 훌륭한지는 모르겠네.'
조회시간에 단상 위에 올라가 아이들에게 부임 인사를 했다.
"땡땡국민하교 어린이들 반가워요. 나는 올 3월 1일 자로 땡땡초등학교로 발령받은 교사 정 아무개입니다.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 교정이 너무 아름다워서 이곳에서 생활하는 친구들도 분명히 아름다울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선생님이-내가 지금 내 입으로 '선생님'이라고 부르네?-여기에서 친구들은 보니 선생님 생각이 딱 맞은 것 같아서 너무 기뻐요. 앞으로 선생님과 친구들이 함께 공부하고 뛰어놀며 함께 행복하게 생활해요.
선생님이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 하나 있어요.
'웃고, 뛰놀자.
그리고 푸른 내일의 꿈을 키우자.'
우리 함께 마음껏 웃고 활기차게 뛰어놀며 내일의 푸른 꿈을 키워 봅시다!
감사합니다."
수십 년이 지난 후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비슷하게 이야기했을 것이다.
특히 그 당시 육영재단-육영재단(育英1969년 4월 14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 부인 육영수가 어린이 복지사업을 목적으로 설립해 같은 해 4월 24일 설립인가를 받았다. 육영재단이 육영수의 이름을 땄다는 것은 동음 때문에 생긴 오해이다. 육영사업을 위한 재단이다.財團)은 대한민국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가 어린이 복지사업을 위해 1969년에 설립한 재단이다. -위키백과-에서 설립한 서울 남산에 있는 어린이회관의 머릿돌에 쓰여 있던 구절인 '웃고, 뛰놀자. 그리고 푸른 내일의 꿈을 키우자.'는 그 당시 나의 교육 철학과 맞닿아 있었다.
그래서 자주 인용했고 그 내용대로 아이들을 교육하고 싶은 초임 교사의 포부가 있었다.
나를 첫 부임지로 무사히 바통 터치를 하신 부모님은 내가 묵을 숙소로 가신 줄 알았다.
그런데 두 분은 교문 밖에 몸을 숨기고 딸이 조회대에서 일장 연설을 하는 것을 다 듣고 계셨다.
"하이고, 자가(쟤가) 저 높은 조회대에 올라가서 뭔 말을 할 수 있으려나 하고 내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소리는 잘 안 들렸는데 꽤 오랫동안 뭐라고 뭐라고 말하는 것 같기에 을매나 안심이 되던지. 도대체 뭔 말을 한겨? 우리 애야가 선생님 다 됐네~"
퇴근 후 숙소에서 만난 어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시며 두 손을 붙잡고 흔드셨다.
그 옆에서 빙그레 웃고만 계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참내, 엄마~나 이래 봬도 선생님이야. 선생님. 애들 앞에 서니 말이 저절로 술술 나오대? 나도 조금 신기했어."
두 눈 감으면 한껏 젊으셨던 우리 부모님과 숏커트와 언발란스하게 정장을 쫘악 빼 입은 촌발 날리는 어리바리 왕초보 여선생이 떠오른다. 다시 돌아갈 수 없지만 젊으셨던 우리 부모님은 다시 만나고 싶다. 이제는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와 구순이신 어머니의 쇠락한 모습을 보면 더욱더 간절해지는 마음이다.
훌륭하게 잘 키우신 우리 부모님의 젊은 날의 자랑이었을 내가 지금에야 조금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