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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 속에서도 사랑은 꽃핀다.

첫 미팅

by 정유스티나

격동의 80년대 그 시절은 일상이 전쟁이었다.

실제로 총기로 자국민을 살해하던 야만의 시절이었다.

휴교령이 내려서 고향집에서 칙칙한 봄날을 보내고 있었다.

따르르릉.

안방에서 전화벨이 울리고 아버지께서 받으셨다.

"네, 맞는대요."

나에게 전화를 바꾸어 주셨다.

"여보세요?"

"우와, 맞네. 나 동민-가명-인데. 정땡땡씨 맞지요?"

이게 누군가?

동민이라면 첫 미팅 파트너인 그 동민이?





대학생이 되고 나서 제일 먼저 하는 통과의례가 선남선녀의 만남을 주선하는 '미팅'이다.

여고 동창인 친구가 주선한 미팅에 나갔다.

친구들의 대학은 모두 달랐지만 남자들은 모두 K대 상경학과 학생이었다.

미팅 장소는 동성로의 '거목'이라는 다방이었다.

이름값을 하는 듯 다방의 한 복판에는 큰 나무가 아름드리 자리 잡고 있었다.

어두컴컴해서 얼굴도 잘 보이지 않았지만 커피 맛이 좋았기에 시내만 나가면 친구들과 가끔 들르던 곳이다.

꺼벙함이 미덕인 양 잔뜩 촌스러움을 덕지덕지 묻힌 남자애들이 일령 횡대로 나란히 앉아 있었다.

우리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아 시골 촌닭 같던 어리바리함을 장착하고 최대한 조신한 몸짓으로 앉아 있었다.

아마도 최소 3시간 이상은 공들여서 꾸미고 단장한 것이 분명한 번쩍임과 가릴 수 없는 청춘의 풋풋함으로 컴컴한 다방을 환하게 밝혀 주었다.

주선자가 남자의 소지품을 탁자 위에 주르륵 늘어놓았다.

지갑, 때 묻은 손수건, 토큰, 시계, 전공서적 1권.

약 3초간의 정적이 흐른 후에 여자들이 최대한 침착함과 우아함을 유지하며 느낌이 가는 물건을 잽싸게 낚아챘다.

나는 시계를 집었다.

어쩐지 약속을 잘 지킬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건이 점지해 준 파트너를 찾아 잠시 소란스럽게 짝과의 매칭이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김동민입니다."

덩치가 꽤 있는 곰 같은 남자애가 꾸벅 인사를 했다.

'꺼벙 오브 꺼벙'

키가 큰 데다 건장한 체격이라 최소 5살은 많아 보이고 아저씨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노숙함의 소유자였다.

재수생이나 복학생인가 했더니 올해 나와 같은 나이에 입학한 새내기였다니 세월이 얘에게 무슨 일을 한 거야?

'흠, 첫 미팅 망~'

진즉에 인원수 부족이라 친구가 애원해서 의리로 나온 미팅이었기에 큰 기대를 안 했다지만 실망이 작은 건 아니었다.

사회적 가면을 쓰지 못하는 성향에다 마음에도 들지 않았으니 온 얼굴에 불편함을 감추지 못하는 미숙함을 보였다. 그런데 동민이는 내가 싫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를 싫어하는 것보다는 안심이 되고 기분이 좋았지만, 호감이 가지 않는 상대와 데이트할 것을 생각하니 괜히 그놈의 정 때문에 미팅에 참석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나가시죠."

제일 먼저 엉덩이를 떼며 나에게 나가자고 말하는 그 애와 그 뒤를 엉거주춤 뒤따르는 나를 보고 일행은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씩 웃으며 브이자를 해 보이는 그 아이에게서 그 당시 '행복이란' 노래로 줏가가 올라 간 가수 조경수의 얼굴이 슬쩍 보인 것이 우리 만남의 신호탄이었다. 조경수 가수는 조승우의 아버지이기도 한 것은 TMI.

하필이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이고 3초 조경수일지라도 첫인상과 달리 불호에서 호감으로 급격하게 선회했다.

그렇게 망에서 갑자기 흥이 되어 우리는 조금 특별한 마음으로 지내게 되었다.

그 당시 교대 남학생들은 군대에 가지 않는 학군단이라 해서 군복까지는 아니지만 RNTC 복장을 했다.

그래서 교대 교문을 여자는 자유롭게 왕래하였지만, 남자는 교대생 복장이 아니면 입장 불가였다.

교문 밖은 타 대학교 남학생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여자 친구를 만나려고 죽치고 있는 것은 흔한 장면이었다.

동민이도 나를 보려면 늘 교문 밖에서 서성였다.

그런데 몇 번의 만남을 한 후 나의 변덕 내지는 변심으로 이별을 선포하고 만남을 그만두자고 했다.

그랬더니 동민이는 계속 교문 앞에 죽치고 있어서 집에도 못 가고 오르간실에서 오르간 연습을 하며 애꿎은 시간을 보냈다. 해가 어둑어둑 질 때야 조심스럽게 교문으로 내려오면, 저 멀리서도 거구의 존재감과 함께 검은 기운을 뿜어내는 동민이를 발견한다. 그러면 걸음아 날 살려라를 외치며 다시 오르간실로 냅다 뛰어 올라갔다. 덕분에 오르간 연주 실력은 일취월장했고 좋은 점수를 딴 것은 고마운 일이다.

꽤 오랜 시간 나와 동민이의 숨바꼭질은 지속되었고 그 애의 속을 태운 나는 '나쁜 여자'였다.


그러던 중에 하루아침에 휴교령이 떨어지고 연락할 수단이 없던 시절이라 자연스럽게 정리가 된 친구이다.





1.jpg



그랬던 동민이가 내 고향집으로 전화를 하다니?

휴대폰은 고사하고 집 전화가 부의 척도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우리 집 전화번호를 알리가 없는데 어떻게 전화를 했지?

역전에서 기다린다는 말에 속없이 반가운 마음이 울컥 들어 한걸음에 달려갔다.

특유의 꺼벙함으로 역전 공중전화박스에서 손을 흔드는 동민이의 표정은 내가 본 것 중 최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27번째에 성공했네~"

대뜸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며 빙글빙글 내 주위를 돌았다.

못 본 사이에 애교가 부쩍 늘었군.

"전화번호부책에서 정 씨는 처음부터 다이얼을 돌렸지. 딱 27번째가 너네 집이더라. 장인어른께서 받으시대?"

그동안 불어난 뱃살만큼이나 넉살도 늘어 난 동민이가 귀여웠다.

동민이 바지 주머니에는 아직도 동전이 한 움큼 달가락거리고 있었다.

"27번째에서 성공했길 망정이지 정 씨가 얼마나 많은데."

참으로 무모한 그 애의 행동을 책망하면서 하얗게 눈을 흘기지만 내 입가에는 배시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동안 동민이를 피하고 애를 먹인 것이 미안해서 나의 태도는 심하게 친절했고 상냥함으로 우리 사이는 봄바람이 불었다. 훈풍이로다.

전장 중에서도 사랑은 꽃피고 폭격이 날아드는 밤에도 역사는 이루어진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김용택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지만 나는 이렇게 노래 부르겠다.


휴교령이 내렸는데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낮 진짜 고맙고

반가워요


전화.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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