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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스티나 Jan 05. 2025

갱시기 전도사

소울푸드

갱시기를 아시나요?

  내 고향에서 어릴 적에 많이 먹던 나름 소울 푸드이다. 국시기라고도 하고 비하해서 개밥이라고도 한다. 개밥이라는 말은 진짜 기분 나쁜 표현이어서 되도록 머릿속에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맛있는 갱시기를 개밥이라니? 하지만 멍멍이들이 먹는 밥이 갱시기보다 맛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있을까. 멍멍이에게는 개밥도 갱시기처럼 맛있을 수도 있겠지?

  직장 동료 2명과 소울푸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갱시기 이야기가 나왔다.

그들은 모두 서울 출생이라 듣보잡이라고 했다. 그리고 갱시기의 맛을 너무나 궁금해하며 먹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급 결성한 모임이 '갱시기 모임'이다.

  칼바람이 부는 겨울의 어느 날 우리 집에서 거국적인 갱시기 모임이 이루어졌다. 방학 중이라 한참을 못 본 동료들과의 근황 토크로 시끌벅적한 시간이 지나고 제법 비장하게 갱시기 만들기에 돌입했다. 

1. 물은 좀 넉넉히 잡아야 한다. 

2. 먼저 콩나물, 멸치를 넣고 한소끔 끓인다. 

3. 묵은지를 넣고 좀 더 푹 끓인다. 

4. 그런 다음 식은 밥, 국수, 떡국떡을 순서대로 넣으면서 계속 푹 끓인다. 

마늘을 조금 넣으면 잡내가 없어진다고 한다. 갱시기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는 묵은지와 멸치이다. 딱히 요리 솜씨가 필요치 않은 음식이기에 나 같은 요린이도 제법 맛을 낸다.

  못 먹던 시절 적은 양으로 많은 식구를 먹이기 위한 음식이다 보니 재료를 조금씩만 넣어도 양이 엄청나게 불어나니 양 조절을 잘해야 한다. 먹다 남기면 너무 퍼지고 먹기 힘들어서 버리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네 어머니는 식은 갱시기에 물을 조금 더 부어 데워서 드시면서 갱시기를 한 톨도 버리지 않으셨다.

  드디어 갱시기가 완성되고 구수하면서도 맛깔난 냄새에 모두 입맛을 다신다. 큰 주발에 한 그릇씩 후루룩후루룩 잘도 먹는다.

  "너무 맛있어요~특히 김치가 너무 아삭거리고 국수와 밥이 너무 맛있어요~"

  연신 땀을 뻘뻘 흘리며 쉼없이 숟가락질을 한다.

  "갱시기는 먹고 돌아서면 배고프니 한 그릇씩 더 드세요~"

  모두 두 그릇씩 클리어하고는 배를 두드린다. 갱시기 모임 대성공이다. 얼떨결에 과식했다면서도 만족한 웃음을 띠며 이마의 땀을 훔친다.

  "저는 몸이 안 좋거나, 특히 감기에 걸렸을 때 갱시기 한 그릇 먹고 나면 살 것 같아요~큰애를 가져서 입덧이 심할 때도 갱시기만은 먹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우리 큰애도 갱시기를 그렇게나 좋아해요~“

  나의 갱시기 예찬론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한다. 어릴 적 외갓집에 가면 큰 가마솥에 군불을 때어서 갱시기를 만들었다. 온 가족이 둥근 양은 밥상에 둘러앉아 갱시기를 먹던 추억이 생각난다. 그때 갱시기를 같이 먹던 외할아버지와 외삼촌, 외숙모님은 벌써 저세상 분이 되셨다. 그곳에서도 갱시기를 드실까? 다소 엉뚱한 생각을 한다. 갱시기에 대해 전혀 몰랐던 분들에게 나의 소울 푸드인 갱시기를 전파했다는 뿌듯함에 마음마저 따스해지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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