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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슬프지만 기억해야 할 5. 18

by 정유스티나

우리는 한강보유국.

노벨 문학 작품을 원서로 읽는 국민이다.


'한강' 작가 이력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의 작품 세계를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의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표현하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한림원은 이어 "한강은 자신의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지배에 정면으로 맞서며 인간의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다"면서 "그는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간의 연결에 대해 독특한 인식을 지니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됐다" 라고 부연했다.

-연합뉴스 중-


2024년 10월 10일 한국 첫 노벨 문학상이 탄생했다.

우리는 한강 보유국이며 노벨 문학상을 원서로 읽는 자랑스러운 국민이 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더구나 글을 쓰는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우리로서는 '한강'작가의 노벨문학상 소식은 그래서 더욱더 반갑고 가슴이 웅장해지는 일이다.

한강 작가의 이력에서 국내외적으로 굵직한 상을 수상한 것을 보니 노벨문학상 수상은 당연한 수순인 것 같다.






이번 수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믿는 '소년이 온다'는 그래서 자축하는 기분으로 읽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2014년작 장편이다.

우리의 아픈 근대사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을 빼고 이야기할 수는 없으리라.

내용이 잔혹하리라고 예상을 했기에 큰 숨을 몇 번 고르고 시작했지만, 그다지 길지 않은 장편을 모두 읽어내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한숨에 읽어나갈 정도로 몰입되는 주제와 문체였기에 가독성이 좋았지만, 삐어져 나오는 눈물과 깊은 한숨을 잠재우기가 힘들어서 계속 책장을 덮고 울분을 달래느라 한참을 서성였다.


이 책은 군상극 형식이다. 복수의 등장인물이 커다란 하나의 흐름이 되는 사건을 각자의 시선으로 전개해 나가는 작품유형이다. 처음에는 군상극형식이라는 것을 숙지하지 못해서 머릿속이 헝클어져서 이해도가 떨어졌다.







1장 어린 새



5. 18 당시, 열여섯 동호의 이야기인데 문간방에 세 들어 사는 절친 정대를 찾는 소년의 시점이다. '나'라는 1인칭 시제가 아닌 '너'라는 2인칭 시제를 사용한 것이 특별하고 객관적이다. 정대는 이미 죽음을 맞이했지만 동호는 정대의 시체를 찾아 초를 태워도 아무 소용없는 냄새를 견디며 전남도청 상무관으로 간다. 상무관에 있는 많은 시체 속에서 정대를 못 찾고 어쩌면 살아남아 다른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걸까? 희망한다. 하지만 누구보다 정대가 죽었다는 것을 잘 아는 것은 동호 자신이다. 정대와 함께 시위에 나갔다가 쏟아지는 인파 때문에 정대의 손을 놓치고 그 순간 정대는 옆구리에 총을 맞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2장 검은 숲



유령이 된 정대의 이야기이다.

동호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정대는 덤불숲에 묻혀 있다.

우리의 몸은 열십자로 겹겹이 포개져 있었어.

죽은 정대는 동호가 아직 살아 있음을 알고, 누나는 자신보다 먼저 경찰의 손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는 것을 느낀다. 동호는 사람들의 영혼을 느낀다.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정대는 언젠가 여자를 안아 보고 싶었던 아주 평범한 사춘기 소년일 뿐인데.

희생자들이 죽어가며 아니 죽어서도 어리둥절했을 대사이다.

도대체 왜 그들은 죽어가야만 했나?


시신 더미들이 썩어 들어가자 군인들은 기름을 붓고 불을 붙인다. 거대한 불기둥이 되어 시신이 타서 재가 되고 영혼들은 하늘로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이제 어디로 가지? 나를 죽인 그들에게 가고 싶지만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누나도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정대는 동호에게 가기로 한다.

그 순간 한 번에 수천 개의 불꽃을 쏘아 올리는 것 같은 폭약소리, 먼 비명 소리. 한꺼번에 숨들이 끊어지는 소리, 놀란 혼들이 한꺼번에 몸들에서 뛰쳐나오는 기척.


그때 너는 죽었어.


동호의 죽음을 정대의 영혼은 생생하게 느낀다.

죽어서야, 이제야, 그 둘은 만날까?

정대의 누나까지 조우를 할까?

그들의 옆구리는 메워졌을까?

그들의 머리통은 복구되었을까?




3장 일곱 개의 뺨



5. 18이 지난 5년 후, 출판사에서 일하는 은숙이 불온서적을 간행했다는 누명을 쓰고 7대의 뺨을 맞는 이야기이다. 5. 18 당시 은숙은 수피아여고 3학년으로 시신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정리하는 일을 맡았었다. 전남도청 사격 몇 시간 전에 그 장소를 벗어나 목숨을 구했다. 혼자 살았다는 죄책감에 은숙의 일상은 산산이 부서졌다. 악몽에 시달리다가 2년 만에 대학을 중퇴한다. 출판사에 취업한 은숙은 서 선생이라는 사람의 희곡집을 출간하는 데 직원으로서의 책임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수배자였다. 경찰은 은숙에게 서 선생의 행방을 대라고 그녀의 뺨을 무자비한 힘으로 일곱 대 때렸다. 실핏줄이 터지도록 맞아도 은숙은 아무 소리도 피하지도 않는다. 나도 같이 뺨을 맞는 것처럼 아픔이 깊숙이 스며들었고 나는 흐느꼈다.

개새끼.

내 입에서 욕이 나온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은숙은 검열 탓으로 무언극이 된 연극을 보며 동호를 떠올린다.

이제 막 피어날 꽃망울 같은 동오가 죽어서, 그 해 함께 상무관에 있었던 사람들이 죽어버려서 은숙의 삶은 장례식이 되었다.




4장 쇠와 피



10년 후, 시민군 김진수의 죽음에 대해 증언해 줄 것을 부탁받은 '나'의 이야기, 가장 잔인해서 온몸이 저렸던 장이다. 극한의 고문. 재발, 그만,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하라 때까지 자행되는 고문의 잔혹함에 치를 떨었다. 평범한 모나미볼펜을 손가락사이에 교차 끼워서 뼈가 드러나도록 잡아 돌렸기에 수감자들의 손가락 사이에는 알코올에 적신 약솜이 끼워져 있었다. 뼈가 드러났기에 그 자리는 이제 그만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더 고통스러울 걸 알고, 약솜을 뺀 후에 더 깊게 볼펜을 끼우고 짓이겼다. 손톱과 발톱 송곳을 들이미는 극한의 고통을 안겨준 이게 사람인가? 고문한 경찰도 집으로 돌아가면 다정한 남편, 자상한 아빠일까? 인간의 잔혹성은 도대체 어디까지일까? 고문을 한 경찰에게도 똑같이 고문을 가하고 싶은 분노에 눈에 핏발이 선다. 특히 4장에서 더 오랫동안 다시 책장을 펼치지 못하고 며칠이 지났다.


김진수는 당시 대학 1학년이었고, 나는 스물세 살의 교대 복학생이었다. 군대가 전남도청에 쳐들어온 날, 상무관에 있었던 사람의 절반 이상이 미성년자였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피가 거꾸로 솟는다. 17세까지만이라도 돌려보내려 했지만, 그들은 집으로 가지 않았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상무관 폭격에서 살아남은 진수와 나는 경찰에 연행당한 후 모진 고문을 당한다. 거짓 자백을 하고 김진수는 7년, 나는 9년을 언도받는다. 그러나 이듬해 성탄절, 군부는 당시 사건에 연루된 죄인 모두를 특사로 석방한다. 그 죄목들이 얼마나 부조리했다는 것을 스스로 자백하듯이.

그들은 총을 들었고, 그 총이 자신을 지켜 줄 줄 알았지만, 그들은 쏘지도 못했다.

진수와 나의 남은 생은 순간순간 죽음보다 못한 삶이었다. 불면과 악몽에 시달리고, 진통제와 수면유도제를 먹으며 지옥의 삶을 근근이 이어갈 뿐이다. 그들뿐만 아니라 당시 고문당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후유증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죽어갈 뿐이다. 김진수는 그 당시 조카뻘이던 어린 영재가 수시로 손목을 긋고 매일 밤 수면 유도제를 먹던 그 영재가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결국 자살한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 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한 강 작가는 피를 토하며 절규하고, 독자는 속절없이 흐르는 뜨거운 눈물로 책장을 적신다.





5장 봄의 눈동자



20년 후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의 증언을 부탁받은 선주이야기

2000년이 되었고, 마흔이 된 선주는 환경 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그 당시 사건의 증언을 해 달라는 윤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한다.

선주는 꽃다운 미성년자의 나이였다. 그때부터 공장에서 하루에 열다섯 시간씩 일을 했다. 한 달에 이틀 쉬었지만 봉급은 남자 공원의 절반이었고 잔업 수당은 아예 들어 본 적도 없다.

우리는 고귀해

노동 운동에 뛰어들고 시위 중 경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자 여공들은 옷을 벗었다. 처녀들의 벗은 몸은 설마 더립히지 않으리라는 예상을 뒤엎고 경찰은 곤봉과 각목으로 그들을 거칠게 진압했다. 경찰에게 배를 짓밟힌 선주는 장이 파열되고 병원으로 이송된다.

그 후 선주는 광주에서 미싱사로 일하다가 5. 18을 맞이한다.

여공 시절에 했던 딱 그만큼의 저항만 한다. 목숨을 잃을 정도의 희생은 하지 않으려 했다.

스스로가 용감하지도, 강하지도 않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선주의 선택은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피하는 쪽이었다.

그래서 1980년에도 살아남았었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 있다.

그녀는 끝내 용기를 못 내고 결국 과거 자신이 겪었던 일에 대한 증언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누가 그녀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죽지 마.

죽지 말아요.




6장 꽃 핀 쪽으로



생떼같은 막둥이 아들을 잃은 동호 어머니 시점의 이야기.

동호는 자신을 찾으러 온 엄마에게 여섯 시에 문 닫으면 들어간다고 한다.

"꼭 그래라이. 해 지기 전에 와라이. 다 같이 저녁밥 묵게.

하지만 동호는 돌아가지 않고 끝까지 시신들 곁을 지켰다.

엄마의 한이다. 강제로라도 끌고 오는 건데. 그런데 어쩐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엄마의 회한이 절절해 가슴이 저린다.

"네 살이 그렇게 희었던 줄 그때 처음 알았다이."

온 몸의 피가 다 빠져나간 동호의 얼굴은 창백했고 몸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엄마는 그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하고 가슴에 품고 산다. 왜 아니겠는가? 죽은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했다. 하물며 하루아침에 아무 잘못도 없이 우리나라 군인의 총을 맞고 비명횡사한 자식을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동호를 묻으러 가는 길에 엄마는 길 가의 풀을 한 움큼 뜯어서 삼키고는 쪼그려 앉아서 토하고, 다 토하면 또 풀을 한 움큼 뜯어서 씹고, 울음 하나 우지 않으면서.

그런데 정작 엄마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동호를 억지라라도 집에 끌고 왔다면? 반찬값이라도 벌려고 문간방을 세놓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동호가 정대와 친구가 되지 않았을 테고 그러면?

매 순간이 회한이다.

하지만 바로 마음을 고쳐 먹는다.

그 불쌍한 남매를 원망하면 내가 큰 죄받제.


목숨이 쇠심줄 같아서 너를 잃고도 밥이 먹어졌제.


아들을 잃었지만 살아내야만 했던 엄마의 삶이 얼마나 허망하고 절망이었을지 상상이 안가지만 심장은 저 혼자 뚝 떨어진다.




이제 엄마는 꽃 핀 쪽으로 갔을까?
동호가 있는 햇빛 있는 데로.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



마침, 오늘 아침에 제법 함박눈이 나렸다.

3월의 눈은 더 눈부시다.

작가의 옛 집이 동호네 집이다.

작가가 그 아이의 얘기를 들은 것은 열 살때였다.

그날의 흩어진 기억의 편린을 찾으러 상무관을 찾고, 증언자를 만나면서 작가는 무너지며 또 일어선다.




동호의 형을 만나서 집필을 허락받는다.

작가는 약속을 지켰다.

제대로 잘 썼다. 아니 너무 잘 써서 세계 최고가 되었다.

동생을 더 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말이다.

동생이 운이 좋아서 총을 맞고 바로 숨이 끊어졌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동생과 나란히 묻힌 고등학생 하나는 바로 안 죽고 살아 있다가 확인사살을 당했다고. 이장하면서 보니 이마 중앙에 구멍이 뚫리고 두개골 뒤쪽은 텅 텅 비어 있었다고. 머리가 하얗게 센 그 학생의 아버지가 입을 막고 소리 없이 울었다고 말하는 형의 열기 띤 눈에 작가는 동의했을까?


망월동 묘지에 누워있는 동호가 씨익 웃는다.

작가님 고마워요. 엄지를 세우며.


집필 중에 악몽에 시달렸다는 작가의 고백은 사실이다.

이 책을 덮는 그날 밤부터 내리 며칠을 악몽에 시달렸다.

내가 동호가 되기도, 정대가 되기도, 은숙이가 되었다가 김진수도 된다.

그중 가슴 미어지게 울다가 깬 꿈은 동호엄마가 되었을 때이다.

평소에 잠잘 때는 업어가도 모르게 죽은 소가 되는 내가 꿈을 꾸다니.

그것도 악몽으로.


이제 세월이 많이 흘렀다.

방아쇠를 당기라고 명령을 내린 자도,

이유도 모르고 그 총알에 맞아서 죽음을 맞이한 영혼도,

살기 위해 총을 들었지만 한 발의 총도 쏘지 못한 채 모진 고문으로 삶을 송두리째 산산조각 난 이들도.

모두 이 책을 읽기를 바란다.

이 땅에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아프지만 잊지 말고, 슬프지만 기억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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