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따먹기에 대한 선명한 기억은 내가 지나 온 유년시절, 그 많은 날들 중 하나이다.
.유년 시절의 빛바랜 장면 속에 석양이 하늘을 물들이는 해 질 녘 텅 빈 운동장에서
단발머리 깡충한 나와 한 갈래로 질끈 머리를 묶은 친구와 했던 땅따먹기가 있다.
국민학교에 가려면 스무 발자국만 가면 되는 곳에 살았던 나는, 방과 후에도 주로 운동장에서 많이 놀았다.
한낮의 더위가 살짝 수그러진 해거름이지만
아직은 해가 길어서 땅거미가 우리를 덮치진 않은 여름의 시작과 끝.
그 시간이 나는 참 좋았다.
지천에 널려 있는 땅에 작은 사기 조각과 나뭇가지 하나만 있으면
날이 저무는 줄도 모르고 재미있었던 가성비 갑인 놀이였다.
우리가 자주 놀던 철봉 밑 넓고 편편한 땅에다 우리가 그릴 수 있는 최대의 네모를 그린다.
네 귀퉁이 중 하나씩 베이스캠프 삼아 내 작은 손바닥을 있는 힘껏 쫘악 펴서 반원 크기의 땅을 확보한다.
종자땅이다.
병뚜껑이나 사기그릇 깨진 작은 조각을 손가락으로 튕긴다.
세 번을 튕겨서 베이스캠프로 돌아오면 그만큼의 땅을 따먹는 것이다.
내가 확보한 땅의 경계선을 손바닥으로 슥슥 지우면서 영역을 넓혀 갈 때의 희열감은
복부인의 성취감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고 리스크가 고 수익의 확률을 높여 주듯이 땅따먹기에서 많은 땅을 차지하려면
위험을 감수하고 친구보다 더 멀리 튕겨야 한다.
손가락을 한껏 오므린 후 튕길 방향을 조준할 때의 스릴과 긴장감은
먼 훗날 재산을 불려 갈 때의 가슴 떨림보다 결코 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함께 할 친구가 없으면 나 혼자 땅따먹기를 했다.
다중인격으로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끄집어내서 편을 가른다.
본캐가 먼저 한 후 부캐가 이어서 조각을 튕긴다.
그럴 때는 땅을 적게 가진 애의 편이 되어 마음으로 응원했다.
같은 ‘나’이지만 지고 있는 아이가 어쩐지 안쓰러웠다.
손톱 밑으로 흙이 새까맣게 들어가고 온몸에는 땅따먹기 한 흔적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몸은 더러워졌지만 마음은 한껏 부자가 되어서 내가 딴 땅을 가슴에 안고 뿌듯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한동안 땅따먹기에 열중하고 그 놀이를 많이 한 것을 보면
내 속에 땅에 대한 본능적인 욕심이 있었던 건 아닐까?
아니 인간은 누구나 나의 땅을 가지고 싶은 욕망이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내가 이 세상에 온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귀소본능인가 합리적인 추측을 해 본다.
튕기기 세 번만에 늘어나는 내 땅의 넓이처럼 쉽게 땅을 늘릴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에 피식 쓴웃음 짓는다.
안산땅 수십만 평이 있다는 어느 연예인의 말에 경기도 안산에 그렇게 넓은 땅을 샀다고?
깜짝 놀랐더니 이어지는 멘트에 배꼽이 탈출한다.
안, 산, 땅, 수십만 평이 있다고요!
안, 산, 땅?
못, 산, 땅!
하지만 나에게는 수십만 평이 있다.
내가 한 땀 한 땀 손가락을 튕겨서 마련한
그 땅이 아직도 내 마음속에 든든하게 살아 있고 등기 등록도 했다.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의 별장도 근사하게 지어 드린다.
평생 땅 한 마지기 못 가진 우리 엄마에게도 텃밭을 선물한다.
유년 시절 땅따먹기하고 소꿉놀이하던 동무들의 장난감 같은 집을 세운다.
우리 손주들이 와서 술래잡기하며 추억을 만들 우리 부부의 미로 같은 집도 짓는다.
나무가 우거진 곳에는 내가 세상살이에 힘들고 지칠 때마다 쉬어 가는 작은 섬도 하나 만든다.
땅의 가장 중심, 젖과 꿀이 흐르는 곳에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란히 누워 계실 묘지도 세운다.
그 옆에는 우리 부부가 함께 누워서 별을 바라볼 평상도 있어야겠지.
땅이 많으니 할 것이 많구나
부자가 되었다.
땅따먹기
오
늘
도
하
고
싶
다
내 마음속의 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