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나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으셨는지
밥은 챙겨 먹었는지, 학교생활은 어떤지
그 사소한 어떠한 것들도 묻지 않으셨다.
내가 겨울 외투 하나 없이 교복만 입고
추운 겨울날을 버틸 때도
아버지는 혼자서 따듯한 외투를 입고
겨울을 보내고 있었고,
내가 일 년 내내
닳을 대로 닳아버린 신발을 신고 다닐 때도
신발장엔 아버지의 새 신발들로 넘쳐났었다.
내가 다쳐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아버지는 같은 시기에 옆 병원의 친구 병문안은 가면서도
나에겐 단 한 번도 오시지 않으셨고,
독감인지도 모르고 감기약으로 버티던 새벽 날에
아버지에게 같이 병원 좀 가달라고 울고 빌며 말했을 때도
아버진 술에 취해 내 말을 무시했었다.
허리디스크로 병원에서 치료받으며
잠시 일을 쉬고 지냈을 때도
아버지는 왜 집에서 쉬냐고 얼른 일하라고
나에게 뭐라 하기 바쁘셨고,
내게 들어가는 병원비도 아까워하시며
치료도 더 이상 못 받게 하셨었다.
심지어 암에 걸려 병원에 입원해야 했을 때도
아버지는 일이 바빠 자기는 모른다고 하셔 놓고
며칠 뒤에 같이 일하는 분하고 돈 때문에 싸웠다고
집에 오셨을 때는 정말..
"어떻게 이런 사람을 한 아이의 아버지라 할 수 있을까?"
병실에 다른 환자들의 보호자들로 북적일 때
반대되는 내 상황에 미친 듯이 서러워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었던 내 모습이
그 새벽 추운 날
버티고 버티다 혼자 응급실을 가야 했던 내 모습이
암에 걸려 이런저런 걱정과 서러움에 잠 못 들던 내 모습이
나는 아직까지 그 모습들이 하나하나 너무나 생생한데
왜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나에게 미안해하지 않으셨을까?
왜 아버지는 나에게 자식 된 도리만을 강요하셨을까?
나는 아버지가 다쳐 입원을 하면
바로 달려가 아버지의 병시중을 들어줬어야 했고,
아버지가 유흥을 즐기며 카드값에 허덕이실 때도
먹고 싶고 사고 싶던 욕구들을 참아가며 모은 돈으로
아버지의 카드값을 갚아줬어야 했다.
세상엔 부모란 이름으로 다 같은 부모가 아니라는 걸
나는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미안한 기색 하나 없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아버지의 태도에
나는 앞으로 더 이상의
자식 된 도리를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설령 이 세상에 나를 욕할 사람이 있을지라도
그냥 나는 나쁜 사람이 되는 걸 감수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