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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어

무책임한 아버지

by 한보물 Jan 17. 2025



집에서 혼자 보 수많은 시간들도

어머니의 폭행과 폭언들도

버티다 보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하며

어린 마음에 밖에서 고생하시는 아버지에게

짐이 되기 싫어 나는 이러한 사실을 숨겼었다.

어머니의 가스라이팅도 한 몫했을 거고,

아버지에게 말했을 때의 후폭풍 걱정이었겠지..


그 당시 나에겐 아버지밖에 의지 할 사람이 없었다.

나를 사랑해 줄 사람도, 나를 지켜줄 사람도

아버지가 유일할 것이라 생각했다.

어머니가 모진 말을 내뱉을 때도

너무나 죽고 싶어 울면서 밤을 지새울 때도

내 마음을 다 잡았던 건,


"그래도 아버지는 날 사랑해 주시겠지?"라는

생각에서였다.


아버지가 집에 오신다는 소식에 아침부터 들뜬 나는

마트에 가 재료를 사고 아버지와 먹을 식사를 준비했다.

작은어머니께 배운 대로 전기밥솥에 밥을 안치고, 계란프라이를 하고, 햄을 볶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라 아버지도 좋아할 거라는 생각이었다.

아버지랑 밥상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생각에

설레어하며 나는 서툰 솜씨로 밥을 차렸다.


밤 8시 10시 12시..

밥이랑 반찬이 식어가는데도 아버지는

밤늦게 까지 집에 오시지 않았다.


"차가 밀려서 그럴 거야.. 얼른 오실 거야.."

나는 밀려오는 잠을 참아가며,

아버지가 오시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새벽 2시, 드디어 아버지가 집에 오셨다.

아버지의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에 나는 언제 졸렸냐는 듯

"아빠"라고 소리치며 아버지를 마중 나갔다.


문이 열리자 그렇게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아버지는

술에 많이 취해있었고, 모르는 여자와 함께 있었다.

그 여성분은 화들짝 놀란 채 나를 보자마자 바로 도망쳤고,

아버지는 나를 방으로 데려가

방에서 나오지 말고 얼른 자라고 나를 타일렀다.

아버지와 먹을 요리도 했다고, 밥도 내가 스스로 했다고

아버지와 함께하는 그 순간을 기다려왔다고 말하는 내게

아버지는 내일 먹으면 된다고 일단 얼른 자라고 하며

나를 재우기 바다.


아버지는 방에서 안 나오겠다는 나의 약속을 듣고,

그 여자를 다시 붙잡으러 가셨다.


그리곤 같이 집에 와 아버지 방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어머니의 폭행 속에서 유일하게 믿었던 버팀 몫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아침에 일어났을 땐 당연하게도 아버지와 그 여자는 없었고,

식고 또 식어버린 반찬들만 남아있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아버지를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아버지는 그때부터 현재인 지금까지 자기 자신이 제일 중요한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나를 안줏거리 삼아 밖에선 피해자코스프레를 하며 자기와 내가 불쌍하다고 말하고 다녔지만

실상 아버지는 나보단 자신의 유흥이 중요했고,

집에서 혼자 지내는 딸이 걱정될 법도 한데

아버지에게 난 안중에도 없었다.

밥은 먹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잘 지내는지

부모라면 당연하게 할 사소한 걱정들을 아버진 하지 않았다.


"내가 아버지였다면 나를 혼자 내버려 두지 않을 텐데.."

"내가 아버지였다면 딸이 걱정돼서 바로 집으로 왔을 텐데.."


나는 아버지에게 술 보다 여자보다 못한 존재였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버지는 자기밖에 모르고, 책임감도 없는 사람이기에..


날의 일은 시작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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