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화가 나에게 미치기까지
어머니의 인생
어머니는 매 맞는 아내였다.
어머니의 첫사랑은 평소에는 자상하다가도 술만 먹으면 그렇게 어머니를 때리셨다고 했다.
자식 둘 딸린 폭력적인 이혼남이 뭐가 그렇게 좋다고
어머니는 자기 자식도 아닌 첫사랑의 자식들까지 마음으로 품어 그렇게 몇 년을 키우시다 결국 폭력에 못 이겨 도망 나오셨다.
그 이후에 만난 두 번째 남자, 지금의 나의 아버지
아버지와는 30 중반 늦은 나이에 만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막노동을 하셨던 탓인지 입에는 항상 욕과 술을 달고 사셨다고 했다.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생긴 첫 번째 아이,
태어났으면 나에게 오빠 혹은 언니가 되었을 그 생명을
어머니는 아버지와 같이 살 자신이 없어 그냥 그렇게 떠나보냈다고 했다.
그렇게 첫 아이를 보내고, 어머니는 몇 년 후 두 번째 임신을 하게 되었다.
"나는 태어날 수 있었음에 다행이라 해야 할까 불행이라 해야 할까?"
어머니는 앞으로 더 이상의 아이가 없을 거란 생각에
나를 그냥 낳아보기로 결정하셨다고 했다.
어쩌면 그 결정이 불행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할머니에게 인사드리러 갔을 때
할머니는 유전자 검사를 이야기하시며 임신한 어머니와 뱃속에 있는 나를 인정하지 않으셨다고 했다.
그러나 씨도둑은 못한다고 하던가
내가 태어나고 아버지와 똑 닮은 모습에 할머니는 더 이상 유전자 검사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지만,
다른 방법으로 어머니를 괴롭히셨다고 한다.
심한 시댁살이의 시작이었다.
명절마다 시골 마당 한편에서 혼자 고생하시던 어머니의 뒷모습이 아직까지 선명하게 그려진다.
할머니와 고모들은 방 안에 앉아서 쉬고 있고,
아버지는 항상 어딜 가시는 건지 집에 있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렇게 어머니는 홀로 화를 억누르며 지내오셨다고 했다.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울타리가 되어 주지 않으셨다.
그 이후 어머니의 화가 쌓여 폭발하기까지
그 화가 나에게 미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머니에겐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힘든 사람이었고,
나는 짐이고 불행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