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풍, 운동회 같은 학교 행사가 있을 때면,
설레어하기는커녕 그런 날들이 너무 싫었었다.
친구들의 도시락은 어머니 정성이 가득 들어있었고,
그에 비해 나의 도시락은 김밥집에서 1,000원 주고 산
초라한 은박지 덮인 김밥이 전부였다.
어머니는 이혼하시기 전이나 이혼하시고 난 후나
나에게 한 번도 도시락을 싸주신 적도
학교행사 날 나를 보러 오신 적도 없으셨다.
도시락을 싸달라고 어린 마음에 말을 건네기도 했었지만
돌아온 답변은 뭐 하러 귀찮게 만드냐는 말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밖에서 느낄 상대적 박탈감보다는
자기 자신이 편한 게 우선인 사람이었다.
나는 어린 마음에 내 김밥이 너무 부끄러워
구석에서 혼자 은박지 김밥을 먹곤 했었다.
운동회 날이면 친구들은 부모님이 왔나 확인하기 바쁠 때
나는 또 어디 구석에서 먹어야 할까 살피기 바빴었다.
친구들은 쉬는 시간에 돌아갈 돗자리와 부모님이 있었지만
나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그래서 학교 행사가 너무 너무 싫었다.
괜히 눈치 봐야 하는 상황도 싫었고,
친구와 나를 자꾸 비교하는 것도 싫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사먹는 김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요즘에 맛있는 김밥들이 많다지만,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내겐
그닥 기분 좋은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김밥이 먹고 싶을 때면,
집에서 직접 만들어 집김밥을 먹곤 했다.
집김밥 특유의 그 투박하고 고소한 맛이 좋았다.
어릴 적 못 먹었던 한이라도 풀고 싶었던 건지
나는 기분이 안 좋아지는 날 이면
그렇게 집에서 김밥을 만들어 먹었다.
먼 훗날 어머니는 내 김밥을 맛보시곤
왜 이렇게 잘 만드냐고 물으셨던 적이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내가 말한다고 해서 미안해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어머니는 기억도 못하는 그 시절들의 일들을
괜히 이야기해 봤자 나한테 득 될 건 아무것도 없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어머니는 내가 과거 이야기를 꺼낼 때면,
미안해하시기는커녕 자기 연민에 빠져
자기 자신의 힘듦만을 이야기하기 바쁜 사람이라는 걸
이제는 정말 잘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