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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세동 May 19. 2023

저 어차피 촉법소년인데요?

차세동의 이면

먼저, 촉법소년에 대한 나의 견해를 주장하고자 하는 글이 아님을 밝힌다.


나는 종종 포럼 같은 곳에 초청을 받아 발언한다.

내가 만난 위기 청소년들의 숫자가 늘어간다.

각자만의 사건과 각자만의 사연들이 뒤엉켜있다.


내가 만나는 위기 청소년들의 경로는 무척 다양하지만 다음이 대표적인 것 같다.

1. 아는 선생님의 권유와 추천

2.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학교나 기관에서의 연계

3. 경찰서나 기타 기관과 연계되어 있는 프로그램에 기획/진행 선생님으로 초빙

4. 여러 우연을 통한 발굴


'저 어차피 촉법소년인데요?'

아마 모든 청소년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나도 지금까지 이 필드에서 두어 번 들어본 것이 전부일 텐데 들을 때마다 마음이 주저앉는다.

막막함과 두려움이 뒤섞인 참 애매하면서도 유쾌하지는 않은 감정이 밀려온다.




수업 첫날,

이 친구는 나와 싸움이 하고 싶었던 건지 정말 격렬하게 눈싸움을 걸어왔다.

눈이 찢어지게 나를 흘겨보며 기선제압을 시도했다.

사실 나도 이제 나름의 경험이 좀 찼고,

하도 많고 다양한 청소년들을 만나다 보니 이 정도는 귀여운 수준이었다.

선생님들 교육연수를 맡아보면 생각보다 많은 선생님들이 '이런 아이들이 내 앞에 나타나면 어떡하지?'하고 걱정하신다.


내가 드리는 나름의 팁은 다음과 같다.

그 순간을 무엇보다 가볍게 만들어주면 된다. 그 행위 자체가 가진 의미를 바꿔버리면 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그 친구의 목적은 기선제압, 친구들에게 자신을 과시하기, 수업 방해하기, 세상에 대한 분노 등 여러 경우의 수가 있겠지만 그 목적이 가진 결들이 대개 유사하다.

그래서 나는 가벼운 농담으로 정확하게 그 '행위'를 지칭하고, 그 '목적'을 가볍게 만든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OO아~ 눈 찢어지겠다, 광어가 되고 싶은 거야?'

'얘들아 광어 알아? 광어가~'하면서 잠시 다른 이야기로 환기한다.

광어흉내까지 내주면 어느새 웃고 있는 아이들을 발견할 수 있다.

무척이나 임기응변과 쇼맨십이 중요한 직업이다.

물론, 상황과 아이들마다 모두 다르기 때문에 나름의 팁 정도로만 알고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돌아와서,

그 열혈 눈싸움 학생은 종종 수업을 방해했다.

때로는 친구들에게 언어적, 신체적으로 폭력적이었고,

나와는 잘 지냈어도 다른 선생님들과의 마찰이 심했다.

그 학생은 결국 다른 선생님이 더 일을 할 수 없도록 만들기도 했다.

내가 그 선생님과 친해지기도 전에 그 선생님은 현장을 떠났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그 문장이 튀어나왔다.

'선생님 근데 저 어차피 촉법소년 아니에요?'


참으로 난감했다.

개인적으로 지금 우리가 '소년범'을 대하는 자세와 제도는 분명히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와중에 그가 묻는다. 자신은 어차피 촉법소년이 아니냐고.

-

대한민국의 소년범은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만 10세 미만 : 범법소년. 보호처분과 형사처분 모두 받지 않는다.

만 10세 이상, 만 14세 미만 : 촉법소년. 보호처분은 받지만 형사처분은 받지 않는다. (보호처분의 최고처분인 소년법 보호처분 10호는 2년 이내 소년원 수감을 뜻하며 전과기록이 남지 않는다.)

만 14세 이상, 만 19세 미만 : 범죄소년. 보호처분과 형사처분 모두 받는다. (하지만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할 수 없고 최고 징역 20년형까지만 선고 가능하다.)


특히 이중에 많은 악용 사례가 나타나는 것이 '촉법소년'인 것이다.

소위 '촉법소년찬스'라고 까지 불리고 있으며 촉법소년의 숫자는 물론

폭력과 절도, 살인과 강도와 같은 강력범죄의 숫자도 매년 크게 늘고 있다.

내 기억이 맞다면 2020년 기준으로 촉법소년은 1만 명 정도, 살인도 10명 가까이 되었던 것 같다.

-

그는 촉법소년이 맞다.

하지만 촉법소년이라는 제도에 대해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이 늘 두렵다.

촉법소년 제도에도 명분과 의의가 분명히 존재한다.

미숙한 의식에서 비롯되었을 비합리적 선택에 따른 범죄의 여지.

처벌보다는 교화와 개선의 필요성.

어린 시절, 범죄자라는 낙인효과의 부작용 소지.

하지만 이의 명분과 의의 끝에 결과가 다음과 같다는 것이다.

그다음마저도 아이들에게 무섭게 설명하더라도 아래와 같다.


(촉법소년의 명분과 의의를 충분히 설명한 후)

'어 맞아, 그런데 촉법소년이라고 해서 뭐 아무것도 없는 게 절대 아니다.'

'너희 보호처분은 받을 거라서 중범죄 저지르면 소년원 그냥 가는 거야, 몇 년을 소년원에서 너희 이 꽃다운 때를 그냥 보내버리는 거지~ 쉽지 않다? 그러니까 정신 차려.'


이어지는 질문이다.

'선생님 그러면 소년원에서 막 10년, 20년 있을 수도 있어요? 그럼 소년이 아닌 거 아니에요?'

'선생님 소년원도 전과 남아요?'

촉법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들과 해보았다면 위의 질문을 아마 많이 받아보았을 것이다.


이제 문제는 여기부터다.

다음에 대한 답들만으로는 촉법소년의 명분과 의의를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한다.

때문에 답을 하는 나 또한 난감하기 마찬가지이며 오히려 촉법소년찬스가 맞다는 것에 더 고개를 끄덕이는 답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종종 위의 질문이 나오기 전에 주제를 전환하거나 마무리하고는 한다.


그가 '촉법소년찬스'를 영원히 모른 채 성인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나는 모든 법은 처벌보다 예방에 중심을 두어야 한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사람이다.

예방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소년범에게는 어른들이 인지할 수 있는 두 번의 예방 포인트가 있다고 생각한다.

1. 소년이 촉법소년찬스를 모른 채, 소년에게 위기상황이 생기거나 위험요인이 발견되었을 때.

2. 소년이 촉법소년찬스를 인지한 채, 소년에게 위기상황이 생기거나 위험요인이 발견되었을 때.

두 번째 기회까지 왔을 때 우리는 위급성에서나 위기의 규모에서나 상상이상의 대처를 해야 한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촉법소년에 대해 알려주는 것도 어렵거니와 소년들이 여러 SNS나 매체를 통해 촉법소년이라는 것을 접하는 것도 늘 상황을 어렵게 만든다.

첫 번째 예방 포인트에서 우리는 비교적 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사례관리계획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째 예방 포인트에서는 그들이 언제 터질지 모르기 때문에 시도할 수 있는 것들의 선택지가 상당히 좁아진다.




다른 날의 이야기다.

이 또한 수업 첫날이었다.

'선생님 촉법소년은 어차피 처벌 안 받죠?'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아직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아이였다.

호기심으로 무장한 아이는 아직 상대방에 대한 배려의 감수성을 온전하게 배우지 못한 모습이었다.


난이도가 훨씬 높았다.

친구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이 '악의'보다는 '관심받기'에 치중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솔직한 마음으로, 내가 비명을 지르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스스로를 상처 내는 방법으로 비명을 지르던 나였지만,

타인을 상처 내는 방법으로 비명을 지르던 그였다.


수업 첫날, 그는 이미 두 번째 예방포인트에 다다른 것이었다.

그 시한폭탄이 터지지 않게 그의 곁에 모든 어른들이 도와주어야 한다.

위급하고 시급하다.

하지만 모든 어른들이 협조적이지만은 않다.

'선생님, 그냥 뛰어내리고 싶어요.'에서 적었던 것처럼

누군가는 학생의 한쪽 면만을 보고 맹인모상의 꼴로 행동과 판단을 결정했다.

또 누군가는 여건이 허락되지 못해 제대로 된 개입을 할 수 없었다.

또 누군가의 역할은 느낄 수조차 없었다.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그 비명을 듣고도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막막함과 답답함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장벽이다.




소년범이라는 단어 안에 '예방'을 위해 얽히고설켜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더불어 단순히 소년범 개인에서 볼 것이 아니라 소년들의 집단의 차원에서 보려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


소년들은 학교, 학원, 기관 등 다양한 공간에서 새로운 관계들을 무작위로 형성한다.

소년들의 집단에서 형성되는 암묵적인 권력구조, 힘의 균형과 자기표현. 

그 역학을 24시간, 다양한 공간에서 다채롭게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어떤 집단보다 복잡한 양상을 보여준다.

이 복잡한 역학 속에서 소년들은 스스로의 위치를 선택하기보다는 선택당한다.


때문에 누구나,

자기도 모르게 누군가에게는 가해자가.

자기도 모르게 누군가에게는 방관자가.

자기도 모르게 누군가에게는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생각하지도 못한 채, 선택하지도 못한 채 

어느 순간 누군가의 가해자로, 누군가의 방관자로, 누군가의 피해자로 자리했을 때.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누군가는 가해자가 된 김에 자기표현과 보호를 위한 폭력을 행사할 지도.

누군가는 방관자가 된 줄도 모른 채 끝까지 스스로를 합리화할 지도.

누군가는 피해자가 되어 벗어날 수 없는 감옥에 갇혀버릴지도 모른다.


촉법소년이라는 제도에 묶여서 소년들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촉법소년찬스라는 빙산 아래 숨겨진 소년들의 복잡한 역학을 누군가와 천천히 꺼내고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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