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세동 May 20. 2023

선생님, 저도 대학을 다 가보네요.

차세동의 표면

그가 지닌 또 다른 자부심이 있다면 아이들이 제시하는 만족도와 효과(기여도)가 있다.


그는 늘 결과로 증명하길 원했다.


변화하는 아이들의 모습과 아이들의 목소리로 자신의 역량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아이들을 만나는 일에 경력이든, 이력이든 화려하게 기술하며 왈가왈부 자신을 설득시키는 일이 그와는 맞지 않았다.


그가 자부심을 느끼고, 잘하고 있다는 확신을 얻는 곳은 아이들의 모습과 목소리가 거의 유일했다.


자신의 경력과 이력을 화려하게 내세우지 않는 그에게

시작도 전에 무시와 괄시를 보내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의 무대나 프로그램, 수개월 동안 진행되는 이른바 시즌이 끝나면

사과하는 이들도, 자신의 행태에 부끄러워하는 이들도, 언제 그랬냐며 180도 태도를 바꾸는 이들도 많았다.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는 종종 그런 모습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들은 추후 한 번 더 다루도록 하자.


돌아와서,

그가 한 학교에서 방학 시즌을 진행하면 한 학교당 보통 15명 내외의 학생을 선발한다.

그의 선발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학교 사전답사 : 사전답사를 통해 학교 주변과 지역 분위기 및 인프라를 파악하고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전반적인 문화와 분위기 등을 파악한다. 아무리 멀 더라도 꼭 간다. 1,2시간짜리 프로그램에 사전답사까지 온다고 놀라는 기관들이 많다.


2. 선생님 면담 및 교내 관찰, 발굴 : 해당 학교 선생님과의 면담을 통해 교내 분위기나 쟁점, 특히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발굴한다. 이때 직접 교내 관찰활동을 통해 도움이 필요할 것 같은 아이들을 따로 미리 발굴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전혀 통보하지 않는다.


3. 교실 홍보 : 그는 대부분 자신의 방학 시즌을 교실을 직접 돌아다니며 홍보한다. 이때, 미리 발굴했던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가지고 신청할 수 있도록 홍보 방향을 설정한다. 그가 가진 중요한 철학 '우리는 손을 내밀고 잡아줄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들이지, 손을 끌어당겨 잡아채는 사람들이 아니다' 때문에 그는 강제로 아이들이 본인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하지 않는다. 꼭 참여했으면 좋겠는 아이들에게는 따로 한 번 더 권유하는 정도가 전부다.


4. 1:1 면담 : 그 후에는 신청학생들을 대상으로 1:1 면담을 진행한다. 많을 때는 한 학년에 100~150명 정도의 학생이 그의 프로그램을 신청하기에 1:1 면담에 정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며칠을 해당 학교에 출근하여 아이들 한 명 한 명 이야기를 나눈다.


5. 학생 선발 : 팀 내부 회의를 통해 15명 내외의 학생을 선발한다. 학생들은 여전히 이 선발기준을 궁금해하고 심지어는 본인이 선발되고도 본인이 선발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는 한다. 사실 여러 기준들이 있기는 하지만 가장 절대적인 기준은 하나다. '우리가 가장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학생'

우리가 모든 학생들에게 최고의 선생님이 될 수는 없다. 우리와 함께하는 여행, 캠핑, 대화, 꿈, 상상들이 모두에게 꼭 필요하다는 의식은 자칫 위험할 수 있다. 때문에 우리가 지닌 역할 속에서, 우리가 가장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선발한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날이었다.

여름 시즌 아이들을 선발하기 위해 경기도 소재의 한 학교에 갔다.

사전답사부터 선생님 면담 및 교내 관찰, 발굴. 그리고 교실 홍보까지 마친 후 1:1 면담을 진행하던 때였다.

해당 학교 또한 신청자들이 100여 명에 가까웠기에 1:1 면담에 많은 공과 시간을 들였다.

며칠 간의 1:1 면담을 마치고, 그와 그의 동료는 바람을 쐬기 위해 밖으로 향했다.

그렇게 끝났다는 상쾌함과 쉴 수 있다는 편안함을 만끽할 때쯤 그의 전화가 울렸다.

'그 저기.. 학생 한 명이 지금 신청해서.. 면담할 수 있냐고 물어보는데 어떡할까요?'

다들 잘 알지 않는가. 모든 일이 끝난 후에 아직 끝이 아니었다는 걸 자각하는 것은 상당히 괴롭다.

이미 신청기간도 한 참 지난 뒤였다.

그는 잠시 고민했지만 역시나 학교로 돌아갔다.

그리고 부랴부랴 면담을 진행했다.

면담이 끝나고 그는 읊조렸다. '큰일 날 뻔했네'


정말 감사하게도 많은 선생님이나 청소년기관 종사자분들이 그의 안목을 믿고 의지한다.

잠깐의 대화로도 드러나지 않는 위험요인이나 위기상황들을 겪는 청소년들을 발견하는 그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스스로도 자신의 능력에 놀라워하기도 한다.

때로는 '감'이라고 표현하지만 단순히 감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면담이 끝난 후 해당 학생을 선발했다.


해당 학생을 선발한 후

주기적인 상담과 프로그램, 대화부터 여행, 캠핑, 견학, 상상과 꿈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그 학생은 본인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아픔들을 조금씩 꺼내 보여주었다.


역시나 지금까지 너무 많은 상처들을 껴안고 살아온 모양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절벽에서 위태롭게 서 있던 학생이었다.

드러나지 않는 우울과 강박을 견디며 이미 의학에 도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대견할 정도였다.

'들키고 싶은 약봉투'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청소년이 정신과병원에 발을 들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 학생은 스스로 적극적이고 활발한 학생이었다고 추억했다.

공부도 열심히 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추억했다.

하고 싶은 것도 참 많았다고 했다.

친구들과 여행을 가보고 싶다고 했다.

학원에도 다녀보고 악기도 배워보고 싶다고 했다.

본인의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라고 했다.


그러한 현실이 두려웠고,

그러한 현실이 미웠으며,

모든 도전들을 주저했다고 했다.

현실적이라는 핑계로 의무적인 선택만을 겨우 쫓아왔다고 했다.

그런 삶 끝에 하루하루의 의미를 잃어갔다고 했다.


종종 납득하기 힘들 정도로 잘못된 회피와 비합리적 선택을 하는 그 학생을 이해할 수 있는 맥락이었다.

그 학생은 사실 차세동에게 참 많이 혼나고는 했다.

차세동은 마냥 따뜻하고 마냥 천사 같은 선생님은 결코 아니다.

'아닌 건 아닌 거고, 하고 싶은 것들 속에 해야 할 것들은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 모든 과정을 낭만 넘치게 즐길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 아이들과 나누는 것이 그의 큰 역할이었다.


차세동과 그 학생은 서로 참 오랫동안 만났다.

이상하게 그렇게 혼나면서도 참 오랫동안 차세동을 따르는 학생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그들은 종종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그 학생은 분명, 조금씩 더 나아지고 있었다.




그 학생이 성인이 되어서는 차세동의 친구들과 즉석으로 캠핑을 가기도 했다.

당시 상황이 지금 생각해도 웃긴 것이,

차세동은 한 명이 더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았고,

차세동은 뭔가 지금 시간이 날 것 같을 그 학생에게 전화했고,

그 길로 30분 후 그 학생을 태워 1박 2일로 캠핑을 떠나는 낭만청춘영화 같은 장면이었다.


또 한 번은, 대학에 진학한 그 학생이 그의 회사 프로그램 내 대학생 선생님으로 선발되기도 했다.

그는 가끔씩 그의 학생들이 그의 회사에 입사를 하거나,

그의 회사 내 선생님으로 자리하게 되는 경우를 맞이하는데 그럴 때마다 커다란 감동을 받고는 한다.


그런 일들이 찾아오는 몇 해가 지나고.

봄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하루였다.

그 학생과 차세동은 오랜만에 약속을 잡아 저녁을 함께했다.

두 남자는 고깃집으로 향했다.


고기를 구우며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렇게 한참을 쌓인 이야기를 나눌 때쯤 그 학생이 이야기했다.

'중학교도 졸업 못할 것 같았는데 그래도 쌤 만나고 이렇게 대학교도 가보네요..'

고기를 구우며 차세동 가슴이 사무치는 녀석의 한 마디였다.


그렇게 사무치는 가슴과 일렁이는 시선을 부여잡고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해가 떨어진 저녁, 그 학생은 쭈뼛대기 시작했다.

차세동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올 것이 왔구나. 무슨 일이 있구나. 괜히 나를 만나자고 한 것이 아니었구나.'


그 학생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선생님 사실..'

그러더니 그 학생은 주섬주섬 자신의 가방을 열었다.


가방 속에서 나온 것은 다름 아닌 꽃과 편지였다.


놀라웠다.

센스라고는 조금도 키우지 않았던 소년이었다.

선생님이나 청소년 업종에 종사하는 분들은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센스라고는 일도 없는 투박하지만 연약한 고등학교 남학생.


그가 꽃과 편지를 꺼낸다.


부조화도 이런 부조화가 없고,

드라마도 이런 드라마가 없다.


이런 남학생이 준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지금까지의 서사를 알고 있는 이 학생이 준다니 소스라치게 놀랄 뿐이었다.




그 학생은 성인이 되어,

그와의 만남과 그 후로의 미래를 천천히 전했다.

다음은 차세동이 그 학생의 이야기를 글로 정리한 것이다.


하루하루의 의미를 잃어갈 때,

소셜벤처에서 왔다는 선생님들이 '꿈'이라는 단어에 나아가는 프로젝트를 한다고 하셨다.

어떻게 용기를 내었는지 신청을 고민하고 고민하다 마지막에 겨우 신청서를 전달할 수 있었다.

그 선생님들과의 만남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솔직히 멋있어 보였다.

선생님들과 시간을 보내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선생님들도, 내 또래 친구들도 스스로의 꿈을 향해 상상의 끝자락까지 나아가는 곳이었다.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계산보다는 덤벼보는 사람들이었고

그때마다 나와 함께 하자고 손을 내밀어주었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하다 보니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막연한 동경을 가지게 되었다.


차세동이 꿈을 물어보면 이렇게 답한다.

멋있는 사람 되기!

직업을 꿈으로 이야기하기를 질색하는 그에게 어떤 답변이 적합할까 고민 끝에 나온 문장이다.

현실이라는 핑계로 내 아픔을 곪게 내버려 두었다.

내 삶은 내가 살아야 하는데.

자신의 삶을 자신답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상은 너무나 즐거웠다.

그런 사람들이 던져주는 질문과 대화들을 사랑하기까지 했다.

며칠씩 말도 못 하고 고민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만드는 질문과 대화들이었지만,

그 덕분에 내 삶을 살아가야 할 이유를 얻었다.

도전 앞에 망설일 때, 두려움보다는 나의 목소리에 더 집중할 수 있는 까닭이었다.


지금은 하고 싶은 걸 찾아다녀본다.

물도 무서워했는데 이제는 자유형도 배워본다.

서울이 궁금해서 하루 날 잡아서 서울구경도 해본다.

택배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오는지 궁금해서 택배 관련 아르바이트도 섭렵해 본다.

이제는 갑자기 여행을 떠나고 싶어서 친구들과 노숙에 가까워도 즐거운 여행을 떠나본다.

하고 싶었던 음악도 배워보고 요리도 해본다.


이제야 좀 사는 것 같다.

내가 그리던 인생을 이제야 즐겨보는 것 같다.


다른 건 아직 잘 모르겠는데, 나는 지금 재밌는 것 같다.



1. 그 학생이 처음 아르바이트로 번 돈이 있었다. 그 학생은 그 돈을 현금으로 뽑아 봉투에 담았고 그 봉투는 차세동과 팀원들에게 향했다. 차세동은 아직도 그 봉투를 간직하고 있다.


이전 09화 저 어차피 촉법소년인데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