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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세동 May 21. 2023

나 같은 어른을 만날 수 있을까?

차세동의 이면

아이들을 만나다 보면

내가 그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내가 그들에게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끊임없이 걱정하게 된다.


내가 그들에게 좋은 선생님이라면,

내가 그들에게 좋은 어른이라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끊임없이 고민한다.


나 또한 한 명의 인간이기에

아이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와 가치관은 다분히 나의 역사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한 참을 고민하고 있다 보면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선생님의 모습을,

어떤 어른의 모습을 표상하고 있는지 들여다보게 된다.

그렇게 몇 년을 걱정과 고민을 반복하다 나는 나름의 결론을 내었다.


'나는 내가 만나고 싶었던 어른의 모습을 표상하고 있다.' 


'나도 당연히 선생님 될 줄 알았지'에서 적었던 것처럼

나를 도울 수 있는 어른들이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미 치이고 날아가 버린 나를 발견하는 어른들이 없었다.

나의 비명을 듣는 어른이 없었다.

내가 필요했던 어른의 모습을 단지 상상하고 흉내 내는 나였다.


'선생님 저도 대학을 다 가보네요'에서 적었던 잠깐의 대화로도 드러나지 않는 위험요인이나 위기상황들을 겪는 청소년들을 발견하는 나의 안목은 여기에서 나오는 듯했다.


하지만 이것은 역설적으로 나의 가장 큰 한계였다.

나는 그런 어른을 만나본 적이 없다.


여리고 어린 나이의 내가 지르는 비명을 듣는 이가 없었다.

정신과 병원에 차마 들어가지는 못하고 그 앞을 배회하는 나의 손을 잡아주는 이가 없었다.

아파하는 나에게 '괜찮다'라고 '언제나 곁에서 응원한다'라고 전하는 이가 없었다.

좋은 어른, 최고의 선생님은 고사하고 나에게 필요한 선생님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선생님의 모습과 어른의 모습을 흉내 내고 있노라면

나는 때로는 스스로 가식적이라고 느꼈다.

때로는 반쪽짜리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나의 천장이었다.


단지, 지금의 내가 쫓을 멘토를 찾고 싶다는 갈증으로 성장했다.

나는 염치없이, 주저 없이 연락을 참 잘 드린다.

만나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내 생각의 실타래를 풀어줄 희망이 조금이라도 보이는 이가 있다면,

내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어떻게든 자리를 마련하는 나였다.

한 없이 쌓여가는 답장 없는 메일과 연락들에 크게 상처받지 않는 나였다.

그 수많은 메일과 연락의 산에서도 소중한 답변과 기회를 주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이후에는 좋은 어른과, 최고의 선생님들을 많이 만나왔다.

하지만 아직 나는 멘토에 대한 갈증이 있다.

독특한 위치에 서 있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 때문일까

배울 점이 가득한 분들 사이에서 막상 내가 의지하고 쫓을 사람을 찾기란 어려웠다.


물론 찾아낸 적도 있다!

내 멘토로 삼을 만한 사람들을 찾아 기뻐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영역, 지나친 외골수인 나는 이내 그들을 뛰어넘겠다는 꿈을 꾸었다.

결국 그들은 때로 내 멘토가 아닌 언젠가는 내가 넘어서야 할 경쟁자가 되고는 했다.

내 기질이었다.


누구도 듣도 보도 못한 길을 개척하고 있는 스스로가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그런 일이 어디 있냐며, 그 일을 무엇으로 정의할 거냐며 질문을 던져대는 주변인과 사회 속에서

나는 언제나 불안했고, 나는 언제나 스스로를 규정하고 정의하지 못해 방황했다.

그래서 나는 더 내가 역량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나와 유사한 길을 먼저 걸어간 멘토를 찾고 싶었다.

이 가시밭길을 걸어간 누군가가 있다면 너무나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곧, 내가 없는 답을 찾고 있음을 깨달았다.




스물 두 살 때쯤이었나,

우연히 한 커뮤니티 모임에서 만난 형이 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형이다.


당시의 나는 그 형이 모임장으로 있는 커뮤니티에 한 번 놀러 간 완전한 타인이었다.

주제는 '사랑' 그리고 '결혼'이었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나 궁금했고,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도 너무나 많았다.

'사랑'에 큰 비중을 두고 있는 인생이다.(추후에 따로 글을 작성해보고자 한다.)


그렇게 3시간 정도의 시간이 지나 모임이 마무리되었다.

그 형은 나가려는 나를 불러 세우고 나의 연락처를 받아갔다.

그의 인상 깊은 장면들에 내가 많았나 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었다.

나는 사실 의심도 많고 남들이 보는 것만큼 외향적이지 못하다.

때문에 몇 번은 돌려 돌려 거절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거절로는 형의 의지를 결코 꺾을 수 없었다.

결국 만나지 않으면 이 연락이 끝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렇게 그 형을 만나러 갔다.


만나는 그 순간까지도 나는 의심에 의심을 거듭했다.

'보험을 판매하려고 하는 건가?'

'장기밀매 같은 건가?'

'나를.. 남자인데 좋아하나? 난 이성애자인데 어떻게 말하지..'


그렇게 합정에서 만나 돈가스를 먹었다.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형'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군대를 갓 제대했고 나와 '동갑'이라고 했다.


의심했다.

의심은 했지만 대화는 더욱 편해졌다.

존댓말이 사라진 친구 같은 대화가 이어졌다.

그리고 우리는 맥주집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신나게 대화를 이어가던 중 나는 이 사람은 정말 종잡을 수 없다는 확신을 지녔다.

나름 동안의 얼굴을 지닌 나는 아직도 종종 신분증 검사를 받는다.(그냥 투철한 직업정신을 지닌 것인데 나 좋을 대로 생각하는 걸 수도 있다.)

맥주를 시킨 우리는 신분증을 제시해야 했고,

그때 나의 눈에는 그의 신분증이 들어왔고,

그의 신분증에는 그가 나보다 한참 '형'이 맞다는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거짓말이었다.

그의 주장은 그랬다.

'최대한 편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

그 덕분이었을까, 나는 사람을 '편하게' 대하는 것에는 꽤 오랜 시간과 노력이 걸리는 편인데,

그 형과는 그 자리에서 서로 편하기까지 한 친한 친구가 되었다.


지금도 종종 그를 만나면 두서도 없는,

정신의 흐름에 의지하는 생각과 철학들을 여과 없이 풀어내곤 하는데

그 모습이 꽤나 재밌기도 하고 그 속에서 주옥같은 문장들을 서로 찾아내곤 한다.

그와 커피숍에 앉아 이야기하면 서너 시간이 뚝딱 흘러가는 재미를 맛보고는 한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나의 고민을 이야기했다.

'나는 내가 만나고 싶었던 어른의 모습을 흉내 내고 있는데 정작 나는 그런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어, 그러니 나는 항상 반쪽짜리인 것 같고 때로는 상상의 동물을 흉내내기만 하는 것 같고 심지어는 스스로 가식적인 것도 같아.'

'내 멘토를 찾고 싶어. 내가 뛰어넘겠다는 경쟁심조차 들지 않을 만큼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먼저 밟아 나에게 경외심마저 들게 할 그런 사람이 필요해.'


한참을 듣던 그가 답했다.

'세동아, 그런 사람은 없겠다.'


그리고 그는 이유가 아닌 다른 말을 덧붙였다.

'세동아, 그런데 애초에 그런 사람이 앞으로도 없기도 하겠지만 없기 때문에 너가 지금 여기까지 성장한 거야.'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사람이 없기 때문에 넌 더 성장할 수 있는 거야.'

'넌 그런 사람인 거야.'


그는 몇 문장을 더 덧붙였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말들이었다.

'너가 아이들 앞에서 보여주는 그 모습이 너가 상상하는 어떤 좋은 어른, 필요한 선생님의 모습이라며.'

'그 모습은 너의 '상상'속에만 존재해. 그래서 그 모습에는 끝이 없어. 너가 성장하면 너는 더 큰 모습을, 더 좋은 어른, 더 필요한 선생님의 모습을 상상할 거야.'

'그렇기 때문에 너가 성장을 멈추지 않는 한, 너가 만족할만한 멘토는 나타나지 않아.'

'오히려 너의 상상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너는 영원히 멈추지 않고 성장할 수 있을 거야.'

'오히려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에 너는 끝없이 상상할 수 있는 거겠지'

'그게 지금까지의 말도 안 되는 성장을, 지금까지의 너를 만들었겠지.'




낭만이었다.


나는 사람들 모두 가슴속에 묻어둔 낭만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현실이라는 '중력'에 낭만을 저 아래로, 또 아래로 묻어두어

때로는 그런 '낭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소리친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 '낭만'을 지켰으면 좋겠다는 역설적인 마음이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나에게 좋은 어른과 필요한 선생님은, 낭만이었다.




1. 아, 그 형의 직업은 가수이다. 서로 불안정한 미래를 걱정하지만 보통 그가 나를 더 걱정해 주는 편이다. 한 번은 우리가 지은 '드림라운지'에 본인이 처음 가수로 활동할 때 쓰던 피아노를 기부했다. 참 고마운 형이다.

2. '낭만닥터 김사부'를 참 재미있게 본다. 내 복잡한 생각들을 종종 드라마가 명쾌한 장면으로 나타내줄 때, 나는 통쾌함을 느낀다. 나의 문장들에는 해당 드라마 속 대사가 차용된 부분들이 종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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