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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세동 May 18. 2023

선생님, 약속 지키셨네요.

차세동의 표면

이른 나이 정말 다양한 무대에 섰던 그였다.


실감 나는 표정, 재미있는 입담은 그가 가진 나름의 재능이었다.

그의 PD 여자친구는 종종 '오빠, 진짜 방송하면 안 돼?'라며 그의 재능을 아쉬워한다.


사실 그는 무대에 대한 커다란 로망을 지니고 있다.


더 큰 무대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자신의 스타일로 자유롭게 펼치고자 하는 낭만이 있다.


그는 무대에 대한 갈증이 있었고 무대 위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얻으면 최선을 다했다.


주변인들은 무대 위에 있는 그를 보면 늘 이야기하곤 한다.

'그는 무대 위에 있을 때 정말 즐거워 보인다.'

'그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저 위에 있다.'


그렇게 그는 조금씩 그의 무대규모와 관중들의 숫자를 키워갔다.

그렇게 2년, 3년 정도를 무대 위에 섰을까.

코로나 19가 창궐했다.

아이들을 만날 자리도, 사람들을 만날 무대도 점차 줄더니 어느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는 사라져 버린 무대 아래에서 무기력한 스스로를 발견할 뿐이었다.


그리고 22년 여름, 그는 오랜만에 무대 위에 올랐다.

수많은 무대 중 하나일 뿐이었을지 모르지만, 유독 마음에 남는 자리였다.

팀원들과 온몸으로 기회를 마련했고, 대학생 선생님들을 교육하며 수업을 함께 준비하는 기획이었다.

한 고등학교에서 진행한 기획이었는데 1시간은 전교생 앞에서 그가 강연을 진행하고,

1시간은 학생들이 흩어져 원하는 대학생 선생님들께 수업을 수강하는 총 2시간짜리 기획이었다.

스스로에게 허락된 무대와 교실에서 마음껏 자신의 색채를 만들어내는 그였다.


강당의 의자는 3년 만에 창고에서 나왔다고 했다.

강당에 앉은 700여 명 학생들은 강당에서 이런 행사를 처음 해본다고 했다.

코로나 19가 지독하게도 길었다.


그는 스물다섯 명 정도의 대학생 선생님들을 교육했다.

밤을 지새우며 화상회의를 하고, 온/오프라인 워크숍을 진행하며 조금은 지치기도 했던 그였다.

하지만 그는 그 순간을 따뜻하게 기억한다.


그는 정말 우연히, 그의 중학교 동창을 이번 대학생 선생님으로 맞이했다.

사실, 고등학교 이전의 학창 시절 기억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그였다.

생각 없이 방향을 상실하고 공부로 분노를 표출하던 때였다.

하지만 알지 않는가.

'나도 당연히 선생님 될 줄 알았지'에서 적었던 것처럼, 14살의 그는 삶의 동기를 잃었다.

그때의 그는 처음으로 선생님이 되고자 했다. 그때의 그는 처음으로 교육을 하고자 했다.

중학교 시절을 상기시키는 동창의 모든 말들이 그 초심을, 그리고 지금의 확신을 다시 일러주었다.


또 신기한 일이 있었다.

강연이 끝나고 이동하던 도중 그의 눈에 낯이 익은 소년들이 들어왔다.

중학생 때 각자의 중학교에서, 각자의 위치에서 그를 만난 학생들이었다.

시간이 지나 그 고등학교에 모여있던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얼굴들이었다.


그리고 한 소년이 그에게 말했다.

'선생님, 약속 지키셨네요.'

'선생님, 중학교 때 콘서트 홀에서 처음 뵈었는데 선생님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성장하고 계시네요.'


예전부터 지금까지 그는 강연이 끝나면 대중들에게 3가지 약속을 한다.

1. 나는 더 성장할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낭만 넘치는 바보로 살아갈 테지만 더디더라도 꼭 더 성장할 것이다. 그러니 미래에 우연히라도 나를 보게 된다면, 한 번 이 약속이 지켜졌는지 꼭 살펴보길 바란다.

2. 나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다. '삶의 방향을 잃었을 때 대화라도 나누면 실마리가 보일 것 같은 사람' 혹시 이 무대로 당신들께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느꼈다면 주저하지 말고 연락하라. 늦더라도 꼭 답하겠다.

3. 고작 2시간을 본 나는 앞으로 평생 그대들을 위해 살아가겠다. 그러니 삶이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들 때, 한 번은 나를 떠올려주길 바란다. 고작 2시간을 본 나마저도 그대들을 위해 살아가겠다고 하지 않는가.


교무실에서 열변을 토하며 15명의 학생을 겨우 만났던 그는,

30여 명이 조금 안 되는 교실에서의 무대를 허락받았다.

30여 명이 조금 안 되는 교실에서의 무대는 콘서트 홀이라는 100여 명 정도의 무대가 되었고

100여 명 정도의 콘서트홀은 1000여 명 정도의 강당으로 성장했다.


지인들만이 만날 수 있었던 그를

지역사회 곳곳에서 찾기 시작했다.

지역사회 곳곳에서 무대를 펼치던 그가,

지금은 전국투어를 한다.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청춘들을 만나러 다닌다.

일반학교부터 특성화 학교, 대안학교와 국제학교, 위기교실까지.

더 나아가 선생님들과 기관, 전문가들까지도.

그는 더 큰 무대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낭만을 외친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무대에 대한 갈증이 있다.


더 큰 무대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눈에는 월드투어가 담겨있다.

어쩌면 춤추는 우주인이라는 회사명처럼,

그는 때로 지구밖까지 상상하는 듯 보인다.

그가 그리는 꿈의 사이즈가 가끔은 스스로도 가늠이 되지 않을 만큼 커다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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