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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세동 May 17. 2023

기훈아, 나 지금 죽어도 좋아

차세동의 이면

나의 글에 종종 등장하는 기훈이에 대한 이야기다.

기훈이는 나의 자랑스러운 고등학교 동창이며,

나의 소중한 동료이자 나의 직장,

소셜벤처 '춤추는우주인'의 공동창업자다.

차세동이라는 인생을 만든 인물들 중 한 명이며,

차세동이 가장 아끼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다.

나의 친구다.


'나도 당연히 선생님 될 줄 알았지'에서 등장했던 기훈이는 '스타트업을 해야겠다'는 일념을 지닌 내가 가장 먼저 찾아간 인물이며

무려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던 나의 자랑스러운 고등학교 동창,

막무가내인 나와 함께 해준 동료로 소개된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역시 기이하지 않은가.

아니, 기훈이가 뭐가 아쉬워서 막무가내인 나와 함께 하는 것인가.

웃기는 일이다.


감춰진 서사를 풀어본다.


나의 인생에 '기훈이'라는 인물을 소개하려면

내가 '기훈이'를 만나기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때는 이런 필터가 유행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중학교 시절.

내가 세상에 대한 분노로 공부에 한창 열의를 불태울 때였다.


구구단도 정확히 외우지 못해 속으로 덧셈을 반복하며 곱셈을 하는 척 연기하던 나는 선생님 말씀을 무작정 적었다. 무엇부터 어찌할지 모르던 내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공부였다.

그런 나에게 '공부하는 척 좀 하지 마', '그렇게 무식하게 공부하면 안 된다.'와 같은 반응은 당연한 값이었으며

방법을 간절히 구하는 나에게 쏟아지는 동정 섞인 비난은 당연한 값보다 더 비싼 덤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웃긴 것이,

사람은 늘 더 나쁜 것을 기억한다.

그 이야기는 늘 더 좋은 것도 분명 공존한다는 뜻이었다.

늘 더 나쁜 것에 매몰된 나의 기억 속에 좋았던 것을 꺼내본다.


똑같이 선생님 말씀을 무작정 적으며 공부에 열의를 불태우던 나에게 한 친구가 다가왔다.

그 친구는 우리 반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으며 모범생 중의 모범생이었다.

'공부 그 자체가 인간이라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라는 인상이었다.

공부 그 자체인 인간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그런 말을 건넨 적이 있다.

'너는 나중에 나도 넘어서겠다.'

진지한 표정으로 전하는 그 한 문장은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나는 기분이 좋으면서도 무섭기까지 했다.

나는 그 문장을 지금까지도 품고 살아간다.

이런 것을 보면 나는 한 마디 한 마디의 강력한 힘을 실감하고는 한다.


사실, 그 공부 그 자체인 인간은 외국어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나와 출신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른이 될 때까지 우리는 서로 만나지 못했다.

집 앞에 있는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것만으로도 뿌듯한 나에게 당연한 순리였다.


훗날의 이야기지만, 

1. 내가 처음 춤추는우주인(前 타임드림)을 창업했을 때 공부 그 자체인 인간은 우리 팀에 팀원으로 합류했다.

2. 훗날 어른이 되어 물어보니 공부 그 자체인 인간은 자신이 했던 말을 기억하지 못했다. 단지 웃었다.




돌아와서,

비아냥과 무시가 나의 주변인 태도의 대부분을 차지했기에

나는 이러한 따뜻한 문장에 큰 동기를 얻었다.

먼저 손을 내미는 이에게 크게 의지하게 되는 나였다.


그렇게 고등학교에 입학해 처음 만난 것이 '기훈이'인 것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는 왠지 모를 근거 없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내가 생각할 때 나름 공부 잘하는 친구들은 특목고, 자사고, 외고로 많이 진학했으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심지어 서울도 아니었으니 나름의 승산이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중학교 3년 동안 물론 너무 늦긴 했지만 나름 공부, 축구, 짝사랑에만 대부분의 인생을 쏟았기 때문에 자신감이 차올랐던 것도 있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나는 열심히 공부했고 모범생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물론 성공적이지는 못했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나는 우리 반의 임시반장을 자처하며 학기 초 나의 이미지를 굳건하게 가져갔다.

같은 반 친구들도 나를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으로 인식했다. (아닌가?)

나와 같은 중학교에서 올라온 친구들이 유독 없었기에 가능한 환경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우리 반에서는 경쟁 아닌 경쟁 구도가 생겼다.

우리 반에는 특목고, 자사고에 아쉽게 탈락하여 우리 학교로 온 '진짜 모범생'이 있었던 것인데

진짜 모범생과 차세동, 묘한 신경전 같은 기류가 흘렀다.

사실은 신경전 따위 없었다. 나는 진짜 모범생에 비할 성적이 전혀 되지 못했다.


나름의 자신감으로 덤볐던 첫 번째 고등학교 시험.

무참히 좌절했다.

그렇다, 고등학교는 중학교 때와는 차원이 다른 어려움이 존재한다.

중학교 때도 그렇게 잘하지 못했던 내가 고등학교에서 갑자기 드라마틱한 출발을 이루기는 기적에 가까웠다.


첫 번째 시험에서 무참히 좌절한 나는 부끄러웠다.

나름 내가 공부를 잘한다고 알고 있을 반 친구들에게 들킬까 두려웠던 것도 있었기에 크게 내 성적을 떠벌리고 다니지 않았다. (사실, 공부 잘한다고 알고 있는 애가 기분 안 좋은 척하고 있으면 잘 물어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기훈이에게는 달랐다.

진짜 모범생인 기훈이가 약간은 아니꼬웠다.

나에게 동정 섞인 비난을 던지리라 섣불리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훈이는 달랐다.

나에게 한 없이 따뜻했다.

오히려 자신과 호각을 다투려는 나를 귀엽게 보듯이 나를 도와주었다.

비명 지르기를 포기한 지 오래였던 나의 비명을 기훈이는 듣는 듯했다.

그때부터 나는 기훈이를 목표로 기훈이와 함께했다.


저번에, 만화 원피스에 나와 동료들을 비유했는데, 이번에도 그 비유를 빌려보면

롤로노아 조로가 미호크를 넘어서기 위해 미호크에게 수련을 받는 양상과 유사하다.


함께 많은 꿈을 꾸었다.

기훈이는 나를 무척 도왔다.

그리고 많은 것을 나와 함께했다.

공부부터 교내활동까지 많은 것을 함께했다.

2학기에는 내가 반장으로, 기훈이가 부반장으로 함께 반을 이끌기도 했다.

물론 둘의 팀워크가 기가 막힌 것도 있었다.


지금도 늘 신기한 것이,

내가 싫어하고 못하는 걸

기훈이는 좋아하고 잘한다.


반대로 기훈이가 싫어하고 못하는 걸

나는 좋아하고 잘한다.


그렇기에 둘은 서로에게 최고의 시너지를 내는 것이었다.

기훈이도 나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시너지로 함께 많은 결과물들을 만들어왔다.


물론 그 사이에도 나는 늘 기훈이를 넘어서고 싶었다.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제는 둘 중 한 명이 넘어지면 둘이 함께 넘어지는 관계가 되었다.)


반대성향을 지닌 우리는 고등학교 2학년, 다른 방향으로 걸었다.

어쩌면 당연했다.

문과, 이과 구분이 명확했던 시절, 나는 문과를, 기훈이는 이과를 선택했다.

그렇게 간간히 교내활동만 함께 하던 우리는 서로를 보는 일이 드물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이 끝났다.

나는 당연하게 '기훈이'를 떠올렸다.

소위 이름 있는 대학교에 들어가 나의 목소리에 힘을 싣겠다는 목표가 생긴 나에게

소위 이름 있는 대학교에 들어가고자 했던 기훈이의 대입결과는 무척이나 중요했다.

자신과 함께 미래를 향했던 이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나였다.


기훈이의 눈물을 처음 보았다.

기훈이는 수능에서 무참히 무너졌다. 지금까지 모든 시험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성적을 받았다고 했다.

혼란스러웠다. 섣부른 위로조차 전할 수 없었다.

어깨 한 번 쳐주며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리고 나 또한 대입에서 무참히 무너졌다.

세상에 대한 분노를 이야기하기 위해 나는 소위 이름 있는 대학교가 필요했다.

어쩌면 내가 대한민국이 이야기하는 공부를 했던 유일한 이유였다.

하지만 소위 이름 있는 대학교들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수능 성적은 그닥이었으며,

내가 지원했던 수시전형은 총 6개의 대학 중 5개의 대학에서 불합격 소식을 받았다.

불합격을 받은 5개의 학교가 그나마 합격가능성이 있는 학교였다.

선생님의 컴퓨터에서 그나마 밝은 빨간색으로 합격 가능성이 나타났던 학교들이었다.

부연 설명을 하자면 빨간색이면 보통 불합격이라는 뜻인데 내가 지원하고 싶었던 곳들이 모두 빨간색이었다. 그나마 밝은 빨간색이라 기대해 보았던 것뿐이다.

소위 이름 있는 대학교를 가지 않으면 내 목소리에 힘을 싣겠다는 목표를 이루지 못하리라 생각해서 더 합격 가능성이 있는 학교로는 눈을 돌리지 못했다.

그리고 남은 학교 1곳은 검붉은색의 불합격이 당연했던 학교였다. (빨간색이 끝인 줄 알았는데..)


그 길로 캐나다로 도망칠 준비를 했다.

교육을 바꾸겠다는 포부 따위 내팽개쳤고 구글에 캐나다 공장을 검색해 취업을 준비했다. (특별히 캐나다였던 이유는 없고 당시에 그냥 좋아 보였다. 도망치고 싶었던 나에게 그 정도 이유면 충분했다.)

다 밝히지는 못했지만 나에게 고등학교 3년의 과정은 너무나 힘들었다.

다시 도전할 여력 따위 없었다.

'들키고 싶은 약봉투'에서 적었던 것처럼 내가 처음 정신과를 찾았던 건, 고등학생 때 일이다.

나에게 고교시절은 꽤 많은 아픈 기억들을 담고 있다.

나는 캐나다에 있는 대학교에서 다시 미래를,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고자 계획을 세웠다.

서울대학교보다도 훨씬 이름 있다는 캐나다의 한 대학교에 입학하고자 10년~20년 계획을 세워 선언하고 다녔다.

'교육을 바꾸겠다는 포부는 어디 갔어!'라면서 나를 멈춰 세우는 선생님의 전화도 나의 대입실패에 대한 좌절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리고 기훈이에게 전화가 왔다.

심장이 멈추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문장에서 나의 심장은 다시 뛰었다.

'나 서울대 붙었어'

수능은 잘 못 보았지만 기대하기 어려웠던 성적으로 수시지원을 했던 서울대학교에서 합격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내 상황이 어떻든, 나에게 따뜻했던, 내가 멈추었던 비명까지 들었던 기훈이의 미래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치의 망설임 없는 축하를 아낌없이 보냈다.

나의 인생, 즐거웠던 여러 장면들 중 한 장이다.




술에 낭만을 타 마시던 스무 살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나는 캐나다가 아닌 대한민국의 대학교에서 낭만이 가득한 새내기를 보냈다.

그리고 아는 것처럼, 스무 살의 나는 일련의 과정 끝에 창업을 했고, 기훈이를 찾아갔다.


그렇게 스무 살의 가을, 나는 기훈이를 만났다.

기대했다.

서울대라니,

과연 얼마나 멋진 이들이 함께하고 있을 것인가!

그 속에서 기훈이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인가!


그렇게 우리 동네에 있는 고깃집으로 향했다.


내 앞에 나타난 기훈이는 망가져있었다.

미래를 찾지 못해 허덕이는 망가진 청춘이 앉아있었다.

기훈이는 헛웃음과 함께 이야기했다.

'서울대 간다고 끝은 아니더라. 가면 뭐가 다 있을 줄 알았는데, 분명 그렇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아무것도 없더라. 다 똑같고 너무 실망스러웠어'


차세동은 대학이 필요했다. 그의 삶에 하고 싶은 것들을 만들기 위해 필요했다.

차세동에게 대학은 도전할 가치가 충분한 수단이었다.


기훈이는 대학이 필요했다. 그의 삶이 그곳으로 달려가고 있었기에 필요했다.

기훈이에게 대학은 동기 없는 달리기의 목적이었다.


기훈이에게 나는 지금까지 내가 겪은 일들과 생각들을 전했다.


대한민국 교육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좋아함에 도전하고 서로를 바라보는 문화를 만들어보자고 했다.


사실, 내가 무지하게 거창한 계획을 세워온 것도 아니었다.


기훈이는 '밑져야 본전이지'라는 생각으로 함께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동네 술집에서 지금의 춤추는우주인, 소셜벤처 타임드림을 창업했다.

그렇게 기훈이는 나와 함께 스타트업 창업가로 20대의 전부를 보내고 있다. 여전히.


창업을 한 다음 해,

우리는 돈이 없었다.

옥상 위에 놓인 5평 컨테이너에서 생활했다. 두 남자가 누우면 끝나는 공간이었다.

그래도 5평의 좁은 공간 안에 낭만과 꿈을 꾹꾹 담아내었다.

두 남자 모두 그때 시절을 행복하게 추억한다.


나는 평소에 말하곤 했다.

'꿈이라는 게 이룰 때가 아니라 꿀 때가 행복한 거라잖아.'

'그렇다면 꿈을 이뤘다고 말했을 때는 정말 '끝'이 나도 좋을 만큼, 더 행복할 여지가 없어도 될 만큼, 정말 죽어도 좋다는 뜻이 아닐까?'


나는 단 한 번, 꿈을 이룬 적 있다.

내가 만나는 청소년, 청년들과 낭만 넘치는 청춘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을 때.

나는 더한 행복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술기운이 오른 빨간 볼을 매달고 컨테이너 문을 벌컥 열며 들어왔다.

그리고 말했던 것이다.

'기훈아, 나 지금 죽어도 좋아.'



1. 나는 그 검붉은색 학교에 합격했다. 36:1 정도의 경쟁률로 기억하는데 아직도 그 합격서사가 신기할 따름이다.

2. 내가 군대에 갔을 때 기훈이는 나에게 훈련소에서 필요할 준비물들을 알뜰살뜰 챙겨주었다. 내 여자친구는 그럴 거면 둘이 사귀라면서 귀여운 질투를 했다. 그냥 귀여워서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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