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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드 Jan 25. 2024

10. 불운과 불행에 굴복하지 말자



처음에는 말 그대로 시간을 때우기 위해 글을 썼다. 담배를 피우지 않고 군것질도 거의 하지 않으며 메신저로 수다를 떨 사람이 많지 않은 나에게는 그나마 글쓰기가 퇴근 시간을 기다리는 합리적인 방법이었다. 


그런데 에세이를 연재해 본 적은 없어서 괜찮은 영감을 접하거나 좋은 소재가 떠오르지 않으면 포스팅을 쓰는 게 꽤 어려웠다. 나는 사회학자나 노동 연구가 같은 사람이 아니었고, ‘집에 가고 싶다’는 참 원초적인 이야기를 그럴싸하게 풀어내려니 내 수준에는 무리인 것 같다는 생각도 조금 들었다. 최소 글을 10개 이상 써야 브런치북을 만들 수 있다는 것도 큰 장벽으로 다가왔다. 


이 미숙한 글 묶음에는 이미 언급된 책 두 권, <가짜 노동>과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가 많은 영향을 끼쳤다. SNS 계정에 흘러 들어오는 말들도 종종 자극을 주었다. 우연히 접한 기사들 일부는 내 생각에 비록 힘은 없어도 타당성은 있음을 암시했다. 참고로 링크를 건 기사에서는 스웨덴의 한 노인 요양 시설에서 간호사의 근무 시간을 줄이고 인력을 추가로 고용했더니 간호사와 환자들 모두 행복해졌다는 내용, 영국에서는 61개 회사가 6달 동안 근무 시간을 줄이는 실험을 했는데 그중 56곳이 단축된 시간을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는 내용 등이 들어 있다.


일주일에 6일이 아니라 5일 일하면 기업이 망하고 경제가 무너질 거라는 말이 떠돈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설레발은 틀린 얘기로 드러났다. 미국에선 Mark Takano라는 캘리포니아 민주당 의원이 32시간 근무 법안을 제출했다고 한다. 주 40시간 근로는 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100년도 되지 않은 일개 규칙일 뿐이다. 그보다 더 오래된, 평생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생활양식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배웠다.


그렇기에 개인이 퇴근하지 못하고 너무 길게 일해야만 하는 모습은 어느 성서에 기록된 것도, 세상에서 가장 권위 있는 헌법에 규정된 것도 아니다. 차라리 1년에 한 달씩 휴가를 떠날 수 있는 국가에서 살지 못하는 불행, 근로 시간이 더 획기적으로 줄어들지 않은 시대에 태어나고 만 불운 정도로 생각하는 게 나을 것이다. 법이나 진리라고 여기는 것에 비해 불행이나 불운에는 굴복하지 않은 마음이 생길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고로 나는 고통스러워하면서, 여전히 내가 나답게 내 시간과 삶을 사용하지 못하는 현실에 심정적인 저항이라도 이어가려 한다. 운동 시간도 더 늘리고 병원도 자주 다니지 못하는 걸 결코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리라. 내가 원하는 대로 가용할 수 없는 시간이 없는 바람에 잠이 부족한 것에, 그로 인해 면역력 저하 질환이 발생하는 상태를 겸허히 받아들이지 않겠다.


인간에게 더 빠른 퇴근과 더 많은 자유 시간을!








아, 올해 목표 중 하나 해치웠다 X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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