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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드 Jan 17. 2024

9. ‘나’를 단수로 만들지 않기 위해



이영도 작가의 유명 판타지 소설 <드래곤 라자>에서 한 대마법사는 요정의 여왕을 향해 “‘나’는 단수가 아니다”라는 명대사를 말했다. 거칠게 표현하면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그에 따라 달리 기억되는 인간이기에 나라는 존재는 하나로 정의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90년대에 나온 작품이지만 그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한번 ‘나’의 모습을 하나하나 짚어본다. 누군가의 자녀이자 동생인 나, 어느 회사에서 이러저러한 직무를 맡고 있는 나, 이런 학교에서 저런 공부를 한 나, 링크드인 프로필이나 이력서 혹은 자기소개서에 서술되어 있는 나. 


하지만 위의 표현들은 좀 심심하고 불완전한 것 같다. 그래서 더 구체적이고 독창적으로 표현하면 이렇다. 나는 심정적으로 부모가 해야 할 일을 떠안은 사람이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너무 바빠서 가끔 쓸쓸함을 느끼는 사람이다. 스러져가는 내 천직이 너무 좋아서 기어코 죽음의 현실을 탈출한 사람이며 어쩌면 누군가에게 낯선 사랑의 형태를 일깨워 줬을지 모르는 사람이고 문화 콘텐츠 관람이 아니면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 잘 모르는 사람이다. 나는 회사와 직업, 가족으로 제한될 수 없는 사람이다. 가끔 아빠가 얼마나 교양 없고 여성혐오적이며 시대착오적인 말을 하는지 통감할 수 있는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위의 서술을 가능하게 한 것은 회사나 교육 기관이 아니다. 내가 받았던 심리 상담이나 내가 주체적으로 경험하거나 도전하겠다고 결심한 일들, 독서와 유익한 간접 경험, 가까운 사람들과의 대면 및 비대면 대화 덕분이다. 다양한 환경과 활동을 접해야 나라는 존재가 가진 다양한 면모들을 찾아낼 수 있다. 하다못해 점심 먹는 식당이나 모닝커피를 사는 카페를 바꿔봐야 무언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새로운 ‘나’가 발견된다.


사실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는 나 자신을 풍부하게 만들기 어렵다. 출퇴근하는 장소와 경로, 주변 환경은 고정되어 있으며 직무 성격 자체는 거의 변하지 않는다. 동료가 바뀌는 경우는 있으나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독보적인 사람이 아니라면 조직의 부동성이나 일관성에 녹아들게 된다. 사무실은 대개 다채롭지 않다. 그러니 퇴사하고 나서 나를 뭐라고 소개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고백이 등장하는 건 존재의 독특함을 끌어낼 수 없는 환경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소비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내가 ‘어떤 직장에 다니는 나’라는 단수가 되어버릴 위험성이 커진다.


노동을 통한 자아실현이 매우 이상적인 꿈으로 전락해 버린 이 시대에, 직장이나 직무로 정의되지 않고 존재의 본질과 독자성에 가까운 ‘나’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결국 업무 외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 다양한 종류의 운동이나 책, 취미 레슨에 도전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여행을 해봐야 하고 나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줄 수 있는 인연을 탐색하는 여정에 나설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지금 생각하지도 못했던 영역을 공부해보고 싶어서 기웃거리는 중인데 생각보다 신기하고 재미있다. 그런데 이것 역시 일하면서 알게 된 건 아니다. 본업보다는 동료들끼리 진행하는 세미나나 티타임에서 오히려 얻어가는 게 많다. 내 적성에 맞는 일을 하고 있음에도 직업과 직무로 정의되지 않는 내가 훨씬 크다는 걸 매 순간 깨닫는다.


이 글을 쓰면서 오늘도 나는 단수로 전락하지 않으려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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