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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드 Jan 05. 2024

8. 인간 친화적이고 기후 친화적인 삶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고도로 발전하고 유복해졌다는 이 세상에 이상하고 모순된 점이 참 많다. 가령 농업 관련 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하여 생산량도 늘어나고 생명력이 좋은 품종도 여럿 개발되었다는데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배가 고파 목숨을 잃는다. 에너지 효율이 뛰어난 제품들이 많이 나왔기에 자원이 소모되는 속도나 탄소 배출량이 줄어야 할 것 같지만 그와 관련된 위기는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아무리 생산성을 높이거나 야근까지 하면서 돈을 벌어도 생활은 절대 여유로워지지 않는다. 


반면에 자연에서는 넘치는 것도, 모자란 것도 없다. 영리한 맹수들은 배부를 때 굳이 무리하지 않는다. 생존에 꼭 필요한 외의 폭력은 벌어지지 않으며, 생명은 타고난 생체 리듬에 따라 쉬며 추울 땐 웅크리고 여름엔 햇빛을 본다. 원시 시대로 돌아가자는 건 아니지만 우리의 삶이 확실히 비자연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어떤 의미에서 문명의 풍요는 무의미하기까지 하다. 


이전에 언급한 책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에서는 이렇게 풀이한다. 효율이 좋아진 만큼 기존에 에너지가 투입되지 않았던 영역에서까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고, 생산량이 늘어나도 선진국으로 수출되는 양 때문에 정작 농산물을 많이 생산하는 저개발 국가에선 여전히 먹을 게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중심엔 자본주의가 있다. 이런 파괴적인 자본주의를 막기 위해서는 그 모든 대가를 감수하고서라도 자본을 키우려 하는 그것의 본질을 막기 위해 성장을 멈춰야 한다는 게 이 책의 주된 주장이다.


이런 이야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동의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평범한 삶을 살펴봤을 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은 있다. 끝없이 일해서 일궈놓은 팽창된 국가와 경제가 개인의 인생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인이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과학이 발전한다고 해도 사람은 잠을 자야 한다. 세상에 없었던 최고의 콘텐츠나 나와 거의 일체 된 아바타가 등장해도 인간은 다른 인간을 만나며 감정을 나누고 교류해야 한다. 명품을 사거나 특급 요리를 먹는 것만으로 개인의 정서가 치유되거나 윤택해지지는 않는다. 사실 개인이 버는 돈 그 자체가 존재를 변하게 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생각한다. 그 돈을 이용해서 얻은 배움이나 경험 등이 존재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이는 결국 ‘시간’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나의 삶을 돌아봐도 돈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 건 시간이었다. 일상에서 내 힘이 되어주는 건 가족이나 친구와의 대화, 산책, 운동, 음악 감상, 그리고 꽃이나 하늘 사진을 찍는 일이다. 한편 내 인생에 거시적인 영향력을 끼친 것은 공부, 독서, 영화 감상, 글쓰기다. 대부분 자본주의와 무관하며 탄소 배출이 적은 기후 친화적인 활동들이며 어느 정도 시간을 들여야 한다. 그 외에 내가 실천하고 있진 않지만 공예 활동이나 식물 가꾸기, 가벼운 봉사활동, 정치 참여 활동, 토론 모임 등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자원을 많이 소모하지 않고 과잉 생산에 기여하지 않는 다양한 활동들이 있다. 역시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일들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렇게 인간 친화적이고 기후 친화적인 삶을 시작할 수 있는 키워드인 시간을 어디에 가장 많이 뺏기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차라리 근로시간을 줄여 덜 일하고, 영원히 작고 소중할 나의 잔고를 나의 삶, 우리 모두의 지구와 맞바꾸고 싶다. 내겐 자녀가 없지만 조카 두 명이 있다. 그 친구들이 늦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더럽고 멸망해 가는 별에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을 하기보다는 나 자신과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돈 이외에 다른 것이 보이는 내 시선을 불편함 없이 발휘하길 원한다.


미래를 위해서 덜 일하는 삶. 내겐 논리적으로 다가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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