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로 가면 어디가 나오는지 알려주실 수 있어요?"
"이 길?" 노인은 낫으로 땅을 짚고 손잡이에 기댄 채 펄롱을 빤히 보았다. "이 길로 어디든 자네가 원하는 데로 갈 수 있다네."
클레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
여성들을 감금하고 강제노역을 시키고 사생아들을 살해하거나 해외로 수출 입양하는 수녀원의 비밀을 펄롱은 우연히 알게 된다. 직접 눈으로 본 참혹한 모습이 아른거려서 길을 잘못 든다.
펄롱이 되돌아갈 길을 찾다가 우연히 만난 노인에게 길을 묻자 노인은 말한다. "어디든 원하는 데로 갈 수 있어."
눈을 감으면 편하다. 모른 체하면 안전하다. 돈이나 지위를 갖지 못한 평범한 우리들은 더구나 그렇다.
하지만 한 걸음 내딛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타고난 영웅이라서가 아니라, 마음이 너무나 불편해서. 주머니 속에 꽁꽁 감췄던 종주먹을 내밀고야 마는 순간들. 그렇게 소심한 사람들이 각성하면 춥고 어두운 석탄창고에 감췄던 추악한 비밀이 폭로되고는 한다.
물론 그런 진전이 정말로 의미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우리의 세계는 늘 반복되므로. 빌런 하나를 해치우고 나면 또다른 빌런이 나타나곤 하므로. 그저 행동해야 할 것만 같으니까,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할 뿐이다.
어렵더라도 이겨낼 수 있는, 도전하고 싶고 재미도 있는. 오락실에서 손에 땀을 쥐게 했던 아케이드 게임 같으면 좋겠다, 현실도. 끝판왕을 쓰러뜨리고 정말로 리셋이 되면 좋겠다. 그럴 리는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