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창의 오래된 스테인드글라스를 지나 제단으로 쏟아지고, 풍성하게 빛나는 색들이 제단을 덮은 천, 나무, 카펫을 물들인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는 예배 때보다 교회 더 깊숙한 곳까지, 철따라 왼쪽으로 기운 빛이 들어온다.
양초, 새벽 예배 연기의 희미한 흔적, 책-우리 교회는 아직도 종이 기도문과 찬송가집을 쓴다-나무와 천과 바닥에 쓰인 세제 냄새를 맡으며 숨을 들이쉰다.
나는 살아 있다. 빛 속에 있다. 어둠은, 이 순간에는 빛보다 빠르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마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점점 더 가까워지는 어둠에 쫓기듯이 동요한다.
엘리자베스 문 [어둠의 속도]
엘리자베스가 묘사한 교회 공간에서 빛이 움직이는 모습, 특유의 냄새를 떠올려본다.
런던 슬로언 스퀘어 바로 옆 성공회 예배당에도 동쪽 창에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다. 예배 중에는 체인에 매달린 향로(Censer)에 향(Incense)를 피워서 흔들며 예배당 안을 한바퀴 도는 순서가 있다.
나는 종교와는 무관한 삶을 살아왔으나, 종교적인 공간은 즐긴다. 어떤 종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고요히 앉아서 공간 자체에서 오는 어떤 느낌을 바라보는 순간들을 좋아한다.
물론 언제나 평화를 얻고 나오지는 못한다. 뇌수술을 앞두고 불안에 떠는 자폐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끝내 마음의 소란을 진압하지 못하고 되돌아나오는 경우도 적잖다.
그런 때는 종교 건축 혹은 종교 미술, 그리고 종교 음악은 인간의 나약함이나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한 몸부림처럼 보인다. 막대한 돈을 들여서 당대 최고의 건축술과 장식 기술을 동원하는 종교 권력, 그 아래 있는 마음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