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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백수 Oct 10. 2024

영국 입시는 열 살에 시작된다

10살 딸과 함께 하는 런던살이, 가장 큰 만족 포인트 중 하나가 학교다. 물론 급식만은 제외하고 말이다.


한 반에 10명 정도라서 밀착 교육이 가능하다. 수영과 피구, 배드민턴, 축구 등 각종 스포츠, 거의 공원 급인 가든(학교 뒷마당)을 누비는 놀이 시간도 마음에 쏙 든다. 영어가 능숙하지 않은 아이들을 위해서는 추가 영어 교육을 제공한다. 스페인어, 프랑스어, 중국어 등 다른 언어도 교과 과정에 들어 있다. humanity 시간은 도덕 비슷해서 재미 없을 것 같지만 온갖 토론이 (물론 영어로) 오가는 철학 논리학 수업이다.


런던 전체가 매력적인 교실이다

툭하면 런던 어디든 가서 현장학습을 한다. 영란은행, 영국 의회, 자연사박물관, 사우스뱅크센터, 셰익스피어글로브 등등을 누빈다. 매우 잦은 빈도로 다른 학교 학생들과 축구든 넷볼이든 운동경기를 한다. 이 경기에는 잘 하는 아이들만이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잠깐이라도 선수로 뛴다.

학교 잔디밭에서 뛰노는 아이들. 인공지능으로 제작한 이미지는 아직은 어딘가 어색하고 무섭다. 다행이다(?).

수학은 누가누가 더 어려운 문제를 더 빨리 푸나 경쟁하지 않는다. 생각하는 방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접근을 훈련한다. 답을 맞추는 것만큼이나 풀이 과정을 중시한다. 문제를 보면 이게 수학 문제인지 영어 문제인지. 질문의 초점을 이해하는 것부터가 풀이의 시작이다(사실 세상사의 많은 부분이 마찬가지다).


추론 훈련도 하는데, 언어 추론과 비언어 추론을 나눠서 공부한다. 비슷한 말, 반댓말, 개념의 범주 등을 다루는 게 언어 추론이다. 비언어 추론은 공간지각 훈련, 수열 같은 수학적인 개념을 이용한 추론을 다룬다. 머리 좋은 남성 연예인들 모아놓고 하던 무슨 퀴즈 프로그램에서 보던 것과 비슷한 문제들을 푸는데, 어렵다. 하지만 아이는 재미 있게 머리 쓰는 연습을 한다(아빠는 졸리다).


악기를 다루거나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을 모아서 학기에 한두 번 정도는 음악실에서 가벼운 공연을 한다. 학년 말에 대형 교회 같은 그럴싸한 공간을 빌려서 하는 일종의 종업식 때는 합창단과 오케스트라가 무대에 오른다. 심지어 대형 공연장을 빌려서 같은 재단에 속한 자매 학교 아이들이 다 모여서 합창대회를 열기도 했다. 실력을 견주기보다는 아이들의 참여에 의의를 두고 모두가 즐기며 축하한다. 대회보다는 축제라고 하자(와중에도 나 같은 사람들은 '확실히 한국보다는 못하네. 애들이 뭐든 빡세게 연습을 하는지 한국이 낫기는 낫다' '저 학교 피아노 반주 하는 아시안 여자애는 뭐 솔리스트야? 진짜 장난 아니네?' 생각하고 앉아 있었지만).


살기 위해 친구를 밟고 올라설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경쟁적이지 않다. 누가 누가 잘 하나, 누가 누구보다 빠른가를 겨루지 않는다. 그저 저 친구는 수학을 참 잘한다, 이 아이는 테니스를 기가 막히게 친다, 와 쟤는 수영을 물개 수준으로 한다, 걔는 무슨 언어를 인공지능이 기계학습으로 배운 것마냥 뚝딱 잘도 하나, 우리 애는 바이올린을 기가 막히게 켜지 할 뿐이다. 아이가 가진 장점을 극대화할 방법을, 어떻게 하면 아이가 덜 힘들고 더 행복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국경이나 국적도 거의 의미가 없다. 영국, 미국, 호주, 이탈리아, 캐나다, 인도, 태국, 러시아, 우크라이나, 중국, 한국, 바레인, 스웨덴 기타 등등 어차피 다 섞여 있다. 여권을 두세 개씩, 많게는 대여섯 개씩 가진 아이도 있는 지경이다. 방학때면 가까운 유럽으로, 혹은 가족들이 있는 아시아나 아메리카로 넘어가서 시간을 보내는 게 일상이다. 아이들은 대부분 두세 개씩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네다섯 개 언어에 능통한 아이도 있다.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고 여기가 안 맞아도 어디든 가서 배우고 일하며 살 수 있다. 육로로는 가까운 아시아 대륙으로도 가지 못하는 섬 아닌 섬에 사는 한국은 참...


시시때때로 갖가지 이유를 들어서 논다. 금요일은 일찍 학교가 끝난다. 그렇잖아도 별로 없는 숙제를 금요일엔 아예 내주지도 않는다. 그나마 대략 3~4주 학교 가면 일주일이나 2주일씩 학기 중간 방학이 있다. 여긴 3학기제라서 거의 돌아서면 방학이 다시 시작되는 느낌이다. 학년이 끝나는 7월 초부터 9월 초까지 두 달은 길게 논다. 뜬금없는 뱅크홀리데이가 잊을 만하면 있다. 부활절 방학도 2~3주간 이어진다(그 비싼 학비 받아먹고 공부는 대체 언제 가르치나?).


경쟁의 시작, 11+

이렇게 좋아라만 하지 영국의 학제를 난 아직도 제대로 이해를 못 한다. 사실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있다. 영국의 교육 제도를 알고 싶은 분들은 아래 사이트를 보시기 바란다. 섬네일에 있는 저 이미지만 잘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나는 설명을 포기한다.

https://ukguardianship.com/uk-education-system-state-public-schools/

다만, 이거 하나는 안다. 영국 교육에 경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경쟁은 10살부터 시작된다. 10학년 아니고 10살 맞다. 세컨더리 스쿨 입시 경쟁이다.


영국에서도 대입 시험 성적 좋은 학교 순위는 매년 발표된다. 구글에 UK top secondary schools 검색하면 쉽게 볼 수 있다. 좋은 대학 가려면 반드시 좋은 세컨더리 가야지!는 아니다. 하지만 확률이 높아진다. 한국에서 특목고 가려고 경쟁하는 거랑 비슷하다. 
7학년, 11살부터 좋은 세컨더리에 다니는 게 러셀그룹 대학으로 가는 여정의 시작이다.


물론 '좋은 대학 가는 거 관심 없다' 혹은 '난 대학 자체를 안 갈 거다'하면 상관 없다. 하지만 이곳 캔싱턴 학부모들은 장난 아니다. 학원이든 튜터링이든 엄청나게 투자하는 게 분명하다. 겉으로는 아닌 척해도. 두 학기 전(5학년 2학기)부터 슬슬 시작됐다. 지금, 6학년 1학기는 난리통이다.

공부하다 머리를 쥐어뜯는 아이. 인공지능으로 제작.

시험은 학교마다 제각각이다. 사립학교들 상당수는 지원자의 ISEB(The Independent Schools Examinations Board) 시험 성적을 입학 사정 자료로 활용한다. 일부 학교는 CEM(Centre for Evaluation and Mornitoring) 시험을 치른다. 런던에 있는 학교들끼리 연합해서 보는 시험도 있다. 이른바 런던컨소시움(http://london11plus.co.uk/).


1차 시험은 주로 영어와 수학, 추론. 시험에 따라 문제 스타일이 조금씩 달라서 다 따로 준비해야 할 것 같기도 하지만 아무튼 대동소이.


2차 시험부터는 학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대개 논술 혹은 작문 시험이 있다. 특정 주제를 주고 편지 같은 다양한 형태의 논픽션을 써보라고도 하고, 소설의 한 대목을 제시한 다음 이어서 써보라고도 한다. 지식보다는 어휘력, 논리력, 표현력, 독창성, 창의력 등 많은 걸 보겠지. 


또 면접이 있다. 시험장에서 몇 마디 질문에 대답하고 나오는 식이 아니고 꽤 긴 시간 진행된다고 들었다. "우리 학교에 맞는 인재형을 찾기 위해서"라고 한다. 온종일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다른 아이들이나 선생님과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관찰하기도 한다나.


기간도 엄청나게 길다. 런던에 있는 한 여자학교는 100일간 전형이 진행된다. 11월 1일 원서 접수 마감. 11월 15일, 18일, 20일 세 그룹으로 나눠서 1차 필기시험(CEM). 12월 12일 1차 시험 합격자 발표. 1월 7일 2차 시험(영어 작문과 수학, 각 45분). 1월 13일부터 순차적으로 면접. 2월 14일 합격자 발표. 곰도 사람 될 만한 긴 전형 기간을 버텨내야 한다. 경쟁도 치열해서 매년 경쟁률이 최소 10대 1이라고 한다.


이 길고 힘든 시험을 여러 학교에 지원할 수 있다. 몇 개만 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 시험 치르느라 아이가 힘들어하겠지만 여러 학교에 걸쳐두는 게 안전하다고 여기는 부모들도 있다. 여러 학교에서 오퍼, 합격 통보를 받았다면 가장 원하는 학교를 골라가면 된다. 어차피 입학은 9월이다. 


11+ 시험 기간에 13+로, 9학년 학생을 받는 학교들에도 지원할 수 있다. (그렇다. 모든 세컨더리 스쿨이 11살부터 신입생을 받는 것도 아니다. 13살부터 입학하는 학교들도 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13+ 학교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면 느긋하게 남은 초등 기간을 보내고 9학년으로 가도 좋다. 물론 욕심 많은 아이와 학부모는 11+ 학교로 간다. 아이 친구 중에는 벌써 명문 사립학교 입학 허가를 받은 아이도 있다고 했다.


물론 기회는 또 있다

11+ 시험이 잘 안 되더라도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13+ 시험을 보면 된다. 11+ 시험 때 지원했다 탈락했던 학교에 다시 지원할 수도 있고 아예 다른 학교를 고려할 수도 있다.


극단적으로는 죽 편하게 학교 생활 하다가 이른바 sixth form, 즉 12학년부터 2년 열심히 달려서 대학을 갈 수도 있다. 설령 공부는 좀 부족하더라도 명문 대학에서 탐 낼 만한 인재라면야...(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앞에 썼듯이 난 영국 학제에 무지하다. 관심 있는 분들은 구글신에게 물어보시거나 어디 유학원에라도 가보시길 바란다).


식스폼부터는 사실상 학부 전공을 결정해둔 상태에서 세 과목 이상, 보통 4과목을 골라서 A 레벨 시험을 본다나. 의대 가려면 화학 생물 수학 물리만 미친듯이 파면 된다고 했다. 쓸데 없이 모든 과목을 다 공부하는 한국과 달리 내가 좋아하는 거 잘 하는 거 골라서 심화학습을 한다는 점은 좋아보인다. 물론 필기시험 뒤에는 면접도 있고 하니 공부벌레들은 떨어지기 십상이다. 운동도 하고 봉사활동도 하고 리더십도 있고 뭐 악기도 좀 다루고 전천후 인재가 되어야 명문 대학 상위권 과에 갈 수 있다.


그러나 저러나 한국과 비교하면  경쟁이 그렇게 치열해보이지는 않는데도 (생전 공부를 열심히 안 하던, 혹은 경쟁이라는 것 자체가 없는 환경에 있던) 10살 아이들은 너무너무 힘들어한다. 얘네들한테 한국의 톱 여배우가 만 8세를 애 학원 보내느라고 차에서 저녁밥 먹이고 본인도 차에서 배달음식 먹는 영상을 보여주면 뭐라고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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