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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백수 Oct 12. 2024

임페리얼 컬리지는 중국 대학?

제목이 과장이 아니다. 임페리얼 컬리지 바로 옆에 살면서, 아이 등하교 시키느라 매일 교정을 관통하며 보는 느낌이 그렇다. 공학과 약학, 경영대 등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영국 대학인데, 풍경은 베이징대학이나 칭화대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다.

이미지 flickr

거리에는 늘 중국인 학생들이 무리 지어 다니는 모습이 쉽게 눈에 띈다. 임페리얼컬리지 매점에도 중국 식재료와 음료, 과자가 진열되어 있다. 덕분에 마트에는 배추도 있고(상품명을 차이니즈 리프라고 해둔 건 아무래도 눈에 거슬리지만) 온갖 아시안 식재료도 꽤 쉽게 볼 수 있다.


인근 부동산 업체에는 중국인 직원이 있다. 중국어와 영어를 능숙하게 하는 이 직원들은 주로 중국인 학생과 학부모를 상대하며 인근 부동산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내가 사는 건물 관리인 T는 갈수록 중국인이 늘어난다며 신기해한다. "돈이 어디서 나오는지는 모르겠어. 그런데 중국 아이들이 이 동네 비싼 집들 임대료를 깎지도 않고 척척 계약을 한다고. 걔들 때문에 임대료 엄청 올라갔을 거야." 예전에 많던 일본인은 보기 힘들어졌고 홍콩이나 대만 사람들이 간간이 보였는데 이젠 거의 메인랜드 차이나 사람들이라고.


실제로 현재 이 건물에만 8집 중 최소 3집은 중국 학생들이다. 내가 사는 집 직전 세입자도 중국인 여학생이었다고 했으니까 꼭 절반이었다. 중국 대학 기숙사 비슷한 분위기랄까.


이 집 주인인 M은 집을 팔려고 내놓은 상태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매수 희망자가 집을 보러 오는데 지난주에는 중국인 가족이 왔다. 딸이 임페리얼컬리지에 입학하게 되어서 집을 보러 왔다나. 월세도 아니고 집을 아예 사버리러 중국에서 날아온 부모. 대단하다.


평일에도, 주말에도, 뱅크홀리데이 같은 짧은 휴일 기간에도 고향에 다녀오기엔 너무 먼 중국인들이 주로 학교 근처에 머물러서 더 그런 느낌을 받겠지. 기숙사에 못 들어간 학생들이 학교 주변에서 살고 있기도 할 테고. 여튼 체감으로는 중국인이 정말 많다.


이쯤 되니 궁금해지는 것이다. 임페리얼컬리지 학생 중 중국인은 얼마나 될까?

이미지 flickr

임페리얼 학생 5명 중 1명은 중국인

구글에 검색하니까 중국 학생이 19%라고 나온다. 만족스럽지 않다. 원자료를 찾아보자. 학생 국적을 정리한 액셀 파일이 나온다. 임페리얼 컬리지 공식 자료다. https://www.imperial.ac.uk/student-records-and-data/for-staff/student-statistics-public/2020-2021/ 


2021년 현재 학부와 대학원을 합한 전체 학생 수는 2만2천 명이 조금 넘는다. 이 중 의외로(?) 가장 많은 건 영국인이다. 8,500여 명. 그 다음이 중국 학생들이다 4,345명. 구글이 맞네. 20% 좀 안 된다.


영국과 중국 차이가 제법 커 보이지만 대학원만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임페리얼 대학원에 다니는 영국인 학생은 3,410명인데 중국인이 2,630명이다. 중국 상위권 대학 학부를 졸업한 수재들이 영국 최상위권 대학원으로 몰려오고 있는 걸까?


궁금하니까 한국 학생이 얼마나 되는지도 찾아보자. 학부 대학원 다 합쳐 딱 200명이었다. 4명 중 3명은 학부생들이었다. 대학원생은 딱 50명.


중국 인구가 워낙 많으니까 당연해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구 많은 축에 속하는 데다 영국 식민지이기도 했던 인도 출신 학생이 학부 대학원 합쳐 500명 수준이다. 중국이 비교적 적극적으로 영국 대학, 그것도 최상위권 대학, 특히 대학원으로 학생들을 보내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까지 많은 중국 학생들이 몰려든 건 그렇게 오래 된 일이 아니다. 2003년만 해도 영국 대학 다니는 중국인 유학생은 2만 명 안팎이었다. 20년도 안 지난 2021년에는 이 수가 14만 명이 넘었다. 특히 대학원생만 9만 명에 육박했다. 엄청난 증가 속도다.


영국 명문대 교수 월급은 중국인이 준다?

중국인들이 영국 대학에 낸 학비가 2015년 한 해에 20억 파운드, 환율을 1700원만 잡아도 한국 돈 3조 4천억 원이다. 영국 대학들의 중국 의존도는 점점 높아진다. 이젠 심각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수준이다.


미국 아이비리그에 비교되는 영국의 최상위권 대학들을 러셀그룹이라고 한다. 이 학교들 가운데 중국인이 내는 등록금이 전체 학교 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이 정도다.

University of Southampton 79%

University of Sheffield 71%

University of Manchester 67%

University College London 68.9%

Imperial College London 67.1%

London School of Economics 62.5%


중국인 학생이 많기도 많지만, 외국인은 영국 학생에 비해 2배에서 4배까지 등록금을 많이 내고 장학금 혜택에서는 거의 배제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중국 돈으로 건물 짓고 장비 사서 영국 학생들 가르치고, 영국 교수와 교직원들 월급 주는 구조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University of Liverpool, the University of Manchester, 그리고 the University of Birmingham 이런 명문 학교들은 전체 학생 10명 중 4명 이상이 중국인 학생들이라고 한다.


이제 영국 대학들은 중국 학생들이 갑자기 빠져나가면 어떡하나 걱정할 지경이 됐다. 어떤 정치적인 이유로, 혹은 중국 경제에 어떤 충격이 발생해서 등등 어떤 이유로든 중국인 학생들의 등록금이 사라진다면? 학교 뿐만 아니라 학교 주변의 부동산 임대업, 온갖 식당과 술집들, 식료품점 등 지역 경제가 받을 충격은?


극단적인 상황을 상정하지 않더라도 걱정은 있다. 당장 영국이 오랜 기간 쌓아온 지적 성취들, 정신적인 유산, 최고 수준의 과학 기술들을 중국인들이 고스란히 배워가는 상황은 유쾌할 수만은 없다.


무시하지 말고 정확히 보라

그건 영국인들이 걱정할 일이라 치고. 이거 하나는 기억해야 한다. 절대 중국을 무시하지 말라. 이미 그래도 상관 없을만큼 하찮은 존재가 아니다.


저렇게 투자하고 공부한 기술로 우주선을 쏘아 올리고 달 뒷면에 착륙하고 항공모함을 짓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하고 자동차를 만든다. 이미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빅2다.


하루가 다르게 떠오르는 중국을 잘 봐둬야 한다. 거슬려하고 싫어하는 거야 감정의 문제니까 어쩔 수 없다 해도. 적어도 비웃고 무시해버릴 상대는 아닌 것이다. 런던에 와서 중국인 대학원생이 그득그득한 이웃 거리 풍경을 보다가 새삼 느끼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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