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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백수 Dec 04. 2024

정치알못 피카소가 변한 이유

영국박물관에서 한국 계엄령 소식에 놀란 썰

영국박물관에 오랜만에 들렀다. 귀국을 얼마 남기지 않은 지금, 마음이 너무 바쁘다. 런던을 막바지까지 즐겨야 하는데 할 일은 많고 시간이 없다. 오늘은 영국박물관에 가자. 멤버스룸도 좀 즐겨줘야지. 아직도 못 받은 멤버 카드도 받아내고.


막 들어서는데 아내가 보낸 메시지가 뜬다. "비상계엄 선포"라니 이건 또 어디서 굴러온 가짜뉴스야. ㅋㅋㅋ 웃어준 뒤에 멤버스룸부터 올라갔다. 변함없이 아름다운 멤버스룸. 오늘은 고맙게도 창가 자리가 비었다. 점심 삼아 티와 당근 케이크를 주문해서 앉았는데.

어? 진짜네? 하지만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기사를 찾아 보다가 시간이 정신없이 흘렀다. 워낙 엉뚱한 상황이 벌어지다보니 걱정이 된다. 가족이나 친구가, 혹은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더라도 다치면 안 되는데. 그보다 더한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 설마 2024년 대한민국에...


식은 차를 마시고 실크로드전을 보러 갔다. https://www.britishmuseum.org/exhibitions/silk-roads 일본과 한반도부터 영국과 북유럽까지 걸치는 장대한 실크로드의 역사와 사람들 이야기가 펼쳐진다. 화면에 흐르는 영상도 있다. 전시장 천장에서는 여러 음향도 들려왔다. 공감각적인 전시인만큼 즐길 거리가 적잖다. 신라 시대 유물을 여기서 만나니까 신선하기는 했다.

하지만 정신 산만해서 통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2월 23일까지 하니까 나중에 다시 오자. 입장료가 성인 한 사람당 22파운드씩 하는 유료 전시.


영국박물관을 헤매다가 이번엔 피카소를 만난다. 판화가 피카소 특별전. https://www.britishmuseum.org/exhibitions/picasso-printmaker 3월 말까지 계속되는 유료 전시다. 성인 입장료 11파운드.


1900년대 초반, 큐비즘을 선보인 작품부터 1968년 86세에 완성한 작품까지 망라되어 있다.

목걸이를 한 재클린의 초상 1959년

여러 재미난 작품들이 많았지만 상황이 상황인만큼 게르니카가 눈에 들어온다. 게르니카 진품은 피카소의 고국 스페인에 가 있지만 피카소 본인이 그린 작은 복제품이 잠시 런던에 와 있다. 특히 화폭 왼쪽, 죽어 축 늘어진 아이를 안고 울부짖는 여성에게 오래 눈이 머물렀다. 부러진 칼자루를 쥐고 쓰러진 남자에게도.

게르니카 복제품 1937

피카소는 정치에 무관심한 편이었다고 한다. 프랑코 장군이 군사반란을 일으켜서 내전으로 이어지고, 결국 장기 독재의 길을 걷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피카소는 변한다. 피카소는 열정적으로 판화를 제작하고 그림을 그린다. 파시스트들에게 학살당한 사람들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고 슬퍼한다.

프랑코의 꿈과 거짓말 1937

군사반란을 이끄는 장래의 독재자, 파시스트 프랑코를 조롱한다.

프랑코의 꿈과 거짓말 1937

작가의 감수성이 놀랍고 작품은 한참 살펴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좋다. 좋지만 한반도에 저런 비슷한 일이라도 다시 생기지는 않기를 바란다. 설마 그렇게는 안 되겠지.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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