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과 out.

by 진솔

그 안에 있는 순간.

바나나 우유와 빨대의 관계를 이해하고 틈과 틈 사이의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고 내 속과 네 속을 엮어 내는 내 삶 속의 in인 나를

글로 쓴다는 즐거움은 참 재미있다.

경험과 의식을 재 정의 하여 글로 옮기는 일이 말이다.

"자세히 보아야 이쁘다"는 나태주 시인의 저 간략하고도 진리 같은

말들의 형언은 이미 역사 속에 기록된 시다.

자세히 보아야 함은 관심이다.

관심은 책상 위에 올려놓고 하는 파헤침이 아니다.

마음에 눈에 심장에 그 뜨거움을 들이부어야 피어나는 부추꽃이다.

그래야 흥건하게 핀다.

그 속에 온건히 들어앉아야 피는 꽃.

"관심"

또 운명 같은 게 아닐까 한다.

눈에 띄어야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지구 반대편에서도 제 짝을 찾아내는 운명 같은 거 말이다.

관심에는 속성이 있다.

무관심에도 속성이 있다.

색깔도 다르다.

빛에 양도 다르다.

마치 질량의 법칙 같지 않나?

관심은 파고드는 속성이 있고,

무관심은 벗어나려는 속성을 가진다.

관심은 따뜻한 색이고 안기고 싶은 보드라운 누구의 가슴팍 같지만

무관심은 퍼렇다 못해 시컴한 파도치는 무서운 바다 같다.

관심은 받을수록 빛을 발하고

무관심은 받을수록 광이 죽는 널브러져 먼지 낀 아버지 구두 같다.

퇴직 후 갈 곳도 만날 이도 없어져서 자꾸만 자꾸만 구석으로

내몰려지고 끝내는 허연 먼지가 들어 차있던 아버지 구두.

현역 일 때 아버지는 꺼먼 구두 약과 구멍 난 양말을 손가락 사이에

두르고 침을 뱉어가며 호호 불어가며 구두를 닦으셨다.

그리고 몇 년 후 아버지의 신발은 운동화로 바뀌었다.

산으로 가기 위해서다.

집안에 퇴직한 아버지에게 눈길이 닿지 않으니 말이다.

말 수도 적어지고 목소리는 더욱 적어졌다.

그렇게 작고 조용한 한 집안의 권위자는 빛을 잃어갔다.

좀 더 우리 안에 일찍 들어올 수는 없었을까?

다 들 사는 게 그리 만들었다고 말한다.

술잔 앞에 마주 앉은 아버지 친구들도.

지금 술잔을 마주하고 같은 이야기를 하고 계신 분들

어서 집 in 하시어 그 들 안으로 조금 더 일찍 들어 가보시지요~

그 들도 기다리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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