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국적이 아니다
그런데 정작 내가 만나는 건 나라가 아니라 사람일 텐데, 이상하게도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이름보다 먼저 떠오르는 건 ‘출신국가’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건 이미 내 안에 깊게 뿌리내린 고질병이다.
중국인은 더럽고 시끄럽다. 인도인은 뻔뻔하다. 일본인은 비열하다. 흑인은 머리가 나쁘고, 아시안은 공부밖에 모른다. 남미 사람들은 일은 대충하고 놀기만 좋아한다. 이런 생각이 내 머릿속 어딘가에서 자동으로 튀어나온다. 나도 내가 역겹다.
다문화 국가 캐나다에서 이런 편견은 독이다. 여기선 이런 생각이 관계를 죽인다. 그런데도 이 필터는 습관처럼 벗겨지지 않는다.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국기를 먼저 본다.
아마 내가 싸워야 하는 건 국적이 아니라, 내 안의 이 더러운 본능일 거다. 그게 더 불편하고 더 오래 붙어 있는 적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엔 졸리라는 베트남 여자애가 있다.
며칠 전 밤, 졸리가 음악을 너무 크게 틀어 다른 룸메들이 부탁했다. “볼륨 좀 줄여줄 수 있냐고.”
그때 다시 확인했다. 시끄러운 건 중국인이라서가 아니다. 인도인이라서도 아니다. 그냥 졸리라서 그런 거다.
사람을 국적으로 판단하면 세상은 단순해진다. 하지만 단순한 건 대개 틀린 쪽이다. 결국 시끄러운 건 여권 색깔이 아니라, 그날 밤 졸리의 성격이다.
주말 아침, 운동복을 입고 방을 나서는데 퇴근한 졸리를 마주쳤다. 졸리는 피곤한 얼굴로 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우리 운동 같이 다니자.”
졸리는 주 6일 일하고 토요일 하루 쉰다고 했다. 하루 종일 일하다 와서도 운동을 간다니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동시에 알겠다. 이민자들한테 운동은 건강보다 멘탈 유지용이다.
뱃살 빼겠다고 시작한 대화가 결국 이런 걸 가르친다. 이 집에서, 이 도시에서, 운동은 근육을 만드는 게 아니라 살아남을 리듬을 만드는 일이다.
하루는 라면을 먹고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국물 앞에 앉아 젓가락을 돌리고 있는데, 베트남 룸메이트가 파인애플을 한 통 들고 식탁에 앉아서 나에게 말을 건냈다.
라면과 파인애플. 뜨거운 국물 옆에 달콤한 과일 냄새가 섞였다. 이 집의 식탁은 늘 이런 식이다. 각자의 나라에서 온 음식들이 한 테이블에서 억지로 공존한다. 국물과 과일, 밥과 커리, 냄비와 젓가락이 부딪히는 소리.
타지에서의 식탁은 결국 조화가 아니라 공존이다.
Good Body, Good English, Good Money
건강한 신체, 유창한 영어, 여유있는 돈
“So, how long have you been in Canada?”
“Almost three years! My aunt lives in Seattle. My boyfriend works in Canada so I chose to come here to experience the culture.”
“Is your boyfriend Indian Canadian?”
“No, he’s Indian Indian. We met in Korea. He worked there for several years. How about you?”
“Six years. I have a Filipino Canadian boyfriend.”
졸리는 필리핀계 캐나다인이라고 했다. 그녀가 폰을 꺼내 남자친구 사진을 보여줬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나이 티가 조금 났다. 다른 룸메들은 졸리가 시끄럽다고 했지만, 나는 그 밝음이 귀엽게 느껴졌다.
다음날 아침, 부엌에서 영어 대사가 흘러나왔다. 영화 자막을 켜고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보고 있었다. 아, 영어 공부 중이구나.
“Do you like watching movies?” 내가 물었다.
“Not really. I watch movies with subtitles to learn English vocabulary.”
역시 예상이 맞았다. 남자친구가 필리핀계 캐나다인이라면 영어가 자연스러울 텐데, 이렇게 따로 공부한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아침부터 크게 영어를 틀어놓고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공부하는 모습은 이상하게 멋있어 보였다.
“남자친구가 영어 잘하면 너도 자연스럽게 늘 텐데, 따로 공부하네. 대단하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난 남자친구를 자주 안 만나. 그리고 혼자 공부할 때 더 빨리 배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 주변엔 영어하는 남자 만나면 자연스럽게 는다고 안주하는 애들 많은데, 너는 다르네.”
졸리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난 인생에서 세 가지만 필요해.
Good body, Good English, Good Money.”
그 말을 듣고 나도 문득 생각했다. 나는 이미 그 세 가지를 다 갖고 있지 않나? 움직일 수 있는 몸, 버벅거리지만 유연한 영어, 그리고 렌트비를 낼 수 있는 돈. 그렇다면 지금 나는 행복할 조건을 이미 다 갖춘 셈이다.
항상 싱글싱글 웃으며 나를 대하는 졸리를 보면, 적어도 내 앞에서는 질투 따위는 없다. 오히려 자기 방식대로 삶을 꾸려가는 단단함만 보인다.
캐나다에서 배운 것 중 하나는 행복은 스스로 정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셸리를 보면서 다시 깨닫는다. 행복한 인간으로 거듭나려면 먼저 내 머릿속의 편견부터 버려야 한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