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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얼룩과 영주권 사이

필리핀 아줌마, 케이스 매니저, 룸메, 그리고 나

by K 엔젤
쉬는 날 ― 그래도 또 일하러 간다


오늘은 쉬는 날이다.
캐나다에서 간호보조 일을 한다는 건, 필리핀 아주머니들의 텃세를 신경 쓰지 않고 버티는 법을 배우는 일과 같다. 일 안 간다고 아무도 내 마음을 이해해 주는 것도 아니고, 내 밥은 내가 찾아먹어야 한다는 걸 잘 알지만, 일요일엔 정말 힘들어서 못 갔다.


며칠 전 올라온 풀타임 공고는 지원해 둔 상태지만, 과연 뽑힐까 계속 마음이 쓰인다. 오후 근무라 집에서 쉬고 있는데, 같은 학교 다니던 동기가 메시지를 보냈다. 본인은 한국어를 못하지만, 한국인 어르신이 사는 Assisted Living 시설이 있는데 일도 쉽다고, 나한테 괜찮을 것 같다고 알려줬다.

그리고 다음날, 결국 정규직 공고는 다른 사람에게 갔다는 메일을 받았다.


오늘 다시 영주권 정보를 찾아봤다. 6개월 풀타임 경력 + 홈서포트 기관 잡오퍼가 필요하단다. ‘6개월은 꼭 채워야 한다’라고 생각하니, 풀타임 잡을 구하는 일이 ‘즐거움’이 아니라 ‘숙제’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저녁으로 피자를 먹으며 긍정 회로를 돌렸다.
“그래도 지금 두 군데나 일하고 있는 게 어디야.”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출근 준비를 했다.


집을 나서는데 룸메가 냉장고 문이 더럽다며 “좀 치우자”라고 했다.
“나 요새 너무 바빠. 이거 생각할 시간 없어! 계획표 한 번 짜보자.”라고 말하고 나왔다.


같이 사는 우크라이나인 룸메는 병적으로 깔끔하다. 냉장고에 얼룩 하나만 있어도 벌벌 떤다. 직장에선 성격 센 필리핀 아주머니들 상대하기도 힘든데, 집에서도 깐깐한 룸메를 상대하니 진이 빠진다. 나도 나이 들면 저렇게 될까? 남 눈치 안 보고, 드세지고, 자기 방식만 고집하게 될까?


오늘의 깨달음

캐나다는 영어를 못해도 어떻게든 일하며 사는 나라다.
영어도 잘 안 통하는 사람들끼리 일하고 살다 보면 피곤할 때가 많다.

오늘 홈케어에서는 중국인 케이스 매니저가 와서 내가 하는 일을 계속 지켜봤다.
“사인인 해라, 사인아웃 해라” 하나하나 잔소리를 듣다 보니 짜증이 났다.
케어는 모든 클라이언트마다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신경 쓸 게 많다.
식사, 옷 갈아입히기, 이동, 상태 체크, 끝나면 서류 작성, 사인까지.


게다가 원래 같이 가야 할 HCA 한 명이 안 왔다고 해서 내가 3시간 더 일하게 됐다. 처음 가는 케이스라 물어봤더니 “아침은 각자 먹는다”라고 해서 신경 안 써도 된다고 했다. 그런데 케이스 매니저는 밥 먹었냐, 이닦았냐, 숨은 어떠냐, 걸을 수 있냐 등 하나하나 체크했다.

나는 중국인 할머니랑 소통이 잘 안 된다. 그래서 케이스 매니저가 대신 묻고 해석해 줬다.


영주권을 따려면 홈서포트 기관에서 풀타임 잡오퍼를 받아야 하고, 케어기버는 항상 간호사나 케이스 매니저 감독 아래 일해야 한다. 풀타임으로 일하면 책임도 커지고, 진짜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다.


그 와중에 어제 지원했던 한국인 전문 요양시설 Amenida에서 연락이 왔다.
면접은 금요일, 그런데 “레크리에이션 에이드를 급하게 구하고 있는데 이 일을 지원해 보는 건 어떠냐”라고 인사 담당자가 나한테 물어본다.


일단 생각해 보고 연락하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인디드에서 검색해 보니 시급이 18불. 거기다 나는 풀타임인 줄 알았는데 캐주얼로 시작이란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조용히 말했다.


“사요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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