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로봇이 아니다
네네네네네 , 오늘도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침에 출근하니 브라질에서 온 RN 여자가 있었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걸 다시 배웠다. 체격이 커서 케어에이드나 LPN인 줄 알았는데 RN이었다. 같은 RN인 필리핀인 제이는 사무실에서 서류 정리를 하고 있었고, 그 모습이 조금 부러웠다. 몸을 덜 쓰는 일이라는 점이, 지금의 나에겐 그냥 부러운 조건이었다.
근무지마다 규칙은 미묘하게 다르다. 쓰레기 비우는 시간, 빨래 가방을 내리는 시간, 점심시간, 샤워 시간. 전부 외워야 한다.
일을 하다 보면, 나는 내가 누구인지 너무 분명히 깨닫는다.
특히 ‘사람들이 날 못한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
누군가의 한마디에도 예민하게 흔들리는 마음.
사람 죽이는 일도 아닌데, 어차피 바로 잘릴 것도 아닌데,
왜 나는 ‘평판’에 이렇게 민감할까.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로봇은 아닌데 말이다.
그래도 오늘은 생각을 덜 하고, 그냥 시키는 일을 하려고 노력했다.
힘들면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난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게 익숙하지 않다.
남에게 부탁하는 건 불편하고, 나도 부탁받는 게 불편하기 때문이다.
일할 때 나는 중간이 없다. 막무가내다.
파트너가 내게 말했다.
“They are your residents.”
그 말에 또 괜히 흥분해서, ‘그래, 내가 다 해야지’ 싶어 혼자 해보려 했다.
파트너도 바빠 보였고, 무엇보다 ‘너 없어도 나 할 수 있어’를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 번째 할머니에서 결국 무리였다.
파트너가 방에 들어오더니, 내가 입히려던 옷을 보곤 “그건 파자마잖아”라고 했다.
순간 움찔했다.
내가 더 위축되는 이유는, 지금 내 신분이 캐주얼직이라서일 것이다.
정규직 전환을 위해선 동료들의 평판이 중요하다.
그래서 한마디에도 괜히 내가 을이 된 느낌이 든다.
일이 끝난 뒤엔 바로 홈서포트 근무로 이동했다.
너무 힘들어 소파에 누워 있는데, 중국인 할머니가
“소파에 누워 있지 말라”라고 한마디 했다.
욕 안 먹고 돈 버는 일은 없는 걸까.
두 군데를 뛰고 집에 오니 체력은 이미 바닥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함께 사는 우크라이나인 룸메 알라가 말했다.
“우리 이제 청소 날짜 정하자.”
날 좀 내버려 두면 안 될까..?라는 마음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래도 내일 쉬고 싶어 몇몇 지인들에게 물어봤다.
"내일 출근해야 할까?”
다들 “신입이면 가야지”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도 있지만, 사실은 사람들의 한마디가 더 나를 소진시킨다.
그래도 내일을 준비하며 다짐했다.
“흥분하지 말자. 감정은 들고 다니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