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으로의 회귀, 그리고 위기

Part 2. 다시 미생. 배운게 도둑질.

by 마포바게뜨

어른들의 이야기로는 저는 자라면서 어렸을 때는 붙임성도 좋고 해맑았대요.

그러다 학창시절 비평준화 학교를 다니면서

중학교 조차 성적을 잘 받아야 그 지역에서 좋다는 학교를 갈 수 있다고 은연중에 하도 많이 들어서


쉬는 시간에 조차 계속 앉아 문제집을 풀고 외웠던

그렇게 친구들과의 수다보다 혼자 주입식 교육을 풀기 위해 부던히도 애썼던 아이였습니다.


자연스럽게 말 수는 줄어들었고,

매사 다소 진지한 점점 대화의 기술을 잃어가고 있던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그러다 점수 맞춰 다들 좋다는 과에 지원을 했고,

근데 이게 나의 적성에 맞는지는 모르겠는데,

다들 토익 900은 넘어야 대기업 서류통과 된다더라...라는 시류에 편승하여


종로 파고다 학원에 방학때 등록하고 다니고

내가 영어로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고 싶은건데 토익900하면 영어 잘하는거 맞는건가 작은 의구심을 품은채

구지 적극적으로 그 의구심을 풀기 위해 노력을 하지는 않고 있는 아이었죠.


그러다 덜컥 50개쯤 서류를 뿌린 끝에 겨우 한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었고

신입사원 시절을 혹독하게 겪으며 난 누군가 여긴 어딘가..라는 (학생때 진즉 했으면 좋았을 법한) 고민에 봉착하게 되었었어요.


이직도 여러번하면서 제 스스로에게 맞는 일과 직장을 찾아 오래 다니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 같아서 20대는 참 스스로 자초한 방황을 오래 한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가 이 20대의 저를 보는 것 같아서, 임시완이 나왔던 미생 드라마 진짜 재미있게 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근데, 크게 착각했던게 20대만 지나면 미생의 프로가 되는 줄 알았어요.

임시완 미생.jpg tvN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

아니 왠걸, 30대는 결혼 출산 등 인생의 크나큰 이벤트가 떠억- 버티고 있었고

40대는 체력, 부모님 건강 등 또 다른 인생의 크나큰 이벤트가 떠억- 버티고 있었기에


일에 에너지를 100프로 쏟기도 힘들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래서 30대때 미생의 운명이 어렴풋이 보였기에 결혼과 출산을 빌미로 탈출을 시도 했던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미생으로 회귀될지도 모른다는 가정도 없이.


근데, 그 회귀를 맊으려면 정말 커리어를 비트는 매우 큰 노력이 필요한거 같은데, 평소 팔로우하던 인스타그래머나 유튜버들 그래서 저는 매우 존경합니다. 그들의 결과만 보이는 것일뿐 기존 트랙에서 벗어나 개인의 콘텐츠를 성장시키기 위한 그들의 노력은 가히 상상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시도와 실패 속에서 성공한 것일 테니까요.


전 그런 자발적 꾸준함이 조금은 부족했던 사람이었던거 같습니다.

게다가 눈 앞에 놓여있는 육아와 집안일을 먼저 하고 나면 이미 반나절 이상은 가있고 체력은 급격하게 소진되기 일쑤라 미라클 모닝 따위의 나만의 시간은 그림의 떡이었죠-


그래서 미생으로의 회귀를 택했습니다.


누군가는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능력이라고 했지만,

산업 특성도 있었고 또한 그런 자리는 남들이 떠나고 싶어하는 마냥 편한 자리는 아니라는 이야기도 되겠죠.


제가 돌아온 자리가 그랬습니다.

그래서 3개월은 이 악물고 온갖 던져지는 일을 쳐내고 밤샘을 하며 저를 증명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러면 저를 인정해 주리라 생각했고, 점점 적응이 되며 사람도 뽑아 안정화를 이룰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미생으로 오래 산 사람들은 소위 '사내 정치'와 '동물적 가스라이팅'을 통해 본인의 입지만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법을 배워왔다는 사실을 제가 꽤 오랜기간 미생에서 퇴직하고 있었어서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약 1년간 묵묵히 버티며 그래도 나아지겠지, 그래도 이 고생을 알아는 주겠지 라는 생각으로 지내오다, 일만 묵묵히 하면 안되고 내가 어떤 일을 했는지 알려야 한다는 선배들의 조언을 떠올려봤지만 그런 조언을 실행하려고 결심하려고 할 때쯤 제 안의 어떤 말로 표현하기 힘든 마음이 '너의 한계인가봐. 인정해.'라고 말을 건네왔습니다.


이렇게 똑같이 1년을 더 버티면 저의 건강이 안 좋아질 것 같고, 제가 과거 미생을 포기할 때 인생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내련던 결정들이 머리속을 스쳐가면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렇게 계속 살면 안된다고 이야기해 주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미생이 된지 1년쯤 되었을때, 남편에게 제안서 작업을 하느라 밤을 새고 작업한 다음날 아침 6시. 남편은 출근하려고 일어난 아침 6시. 방 문을 열어서 안 자고 뭐하냐고 묻는 남편의 물음에, 나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고 싶었던 오기따위가 무슨 소용이냐며 그에게 책상에 멍하니 앉아 고개만 돌리며


"오빠. 나 아무래도 안될거 같아. 그만 둬야할 거 같아."


남편은 한 동안 말없이 있다가


"니가 아니면 아닌거지.
그만둔다고 말하고 좀 쉬었다 너랑 맞는 다른거 알아보는 게 낫겠다."


그 말에 자신감이 찬 저는 당일 오전 10시

상사에게 드릴 말씀이 있는데 시간 되시냐고 메신저를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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