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까지 쥐어짜인 워킹맘, 그리고 나의 각성

Part 2. 다시 미생. 배운게 도둑질.

by 마포바게뜨

1년 전, 저는 호기롭게 복귀했습니다.


경단녀라는 낙인을 벗고 다시금 ‘일하는 나’로 돌아가는 것이 설렜고, 의욕도 넘쳤습니다.
오랜만에 손에 잡히는 문서 작업도, 머리를 굴려 아이디어를 내는 일도 오히려 즐거웠습니다.

"손이 정말 빠르시네요!"
사방에서 들려오는 칭찬에 저는 더 열심히, 더 빠르게, 더 많이 일했습니다.


하지만 빠르면 일을 줄여주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던지는 구조라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야근은 당연했고, 새벽 퇴근은 일상이 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제 주변엔 늘 ‘급한 일’이 있었고,

저는 늘 누군가의 불똥을 받아주는 소방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 임원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제 빠른 손과 눈치, 말 잘 듣는 성향을 정확히 파악했습니다.

그는 저를 자신의 프로젝트에 끌어들였고, 저는 그 기대에 부응했습니다.
결과도, 성과도 분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해 연말, 승진한 사람은 저도, 함께한 팀원들도 아닌 그 임원 혼자였습니다.

그 자리에 앉아 축하 박수를 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이렇게 열심히 해봤자 결국 쓰이고 마는 거구나.'

성과는 위로 올라가고, 책임은 아래로 내려오는 구조.

누군가의 야망을 위해 저는 껍데기까지 쥐어짜이고 있었습니다.
노력하면 나아질 줄 알았던 제 착각.

그 속에서 결국 저는 '더 이상 이렇게는 일하지 않겠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일을 포기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제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저를 갈아 넣는 방식은 이제 그만두겠다는 선언입니다.

워킹맘으로서의 저도, 프로페셔널한 저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 시간과 감정, 에너지를 스스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제 저는 ‘빠르게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 '경계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 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그 분께 미팅 요청을 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아무래도 요구하시는 업무나 스콥이 제 능력 밖인 것 같습니다.
그만두겠습니다."


갑자기 과장 두 명을 뽑아준다고 합니다.

"누군가를 뽑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침묵...

"그럼 뭐 할 수 없죠. 판을 다 만들어준다고 했는데도 그만둔다면.
그동안 고생했어요."


그리고, 몇 일뒤 HR 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면담을 하자고...


퇴사 이유를 묻고, 팀 이동을 제안했습니다.

그래서 2주간 좀 생각을 해 보겠다고 했죠.


근데 생각을 해보니, 그만두면 그 동안의 고생이 물거품되고 월급을 못 받는 저만 손해인거 같더라고요.

애 엄마가 되니 월급의 소중함을 알기에, 회사가 나를 붙잡는다는 것은 금전적으로 더 보상을 해주진 않는다고 하더라도 평판, 실력 인정을 받았다는 거니,


오히려 이 기회에 팀을 바꿔서 내 페이스대로 안정화하며 근무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쪽팔림은 잠깐, 남이 나에대해 뭐라 생각하던 신경 쓰지않고, 그냥 내 중심대로 가기로!


일단 어떻게 다시 시작한 일인데

내 자리는 지키자!


#퇴사고비

#워킹맘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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