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다시 미생. 배운게 도둑질.
요즘 “에겐녀, 에겐남, 테토녀, 테토남”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리더군요. 전 이게 무슨 뜻인지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트렌드에 민감한 업계에서 일하고 있으니 신조어 하나쯤은 금방 익힐 줄 알았는데, 요즘은 10대들이 쓰는 줄임말 하나를 문맥상으로도 이해하지 못해서 몇 번씩 되묻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흑... 나이 들었단 걸 이렇게 체감하네요.
혹시 저처럼 신조어에 약한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드리자면,
에겐녀/에겐남은 에스트로겐이 넘치는, 감수성이 풍부하고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테토녀/테토남은 테스토스테론이 넘치는, 강인하고 목표 지향적인 사람을 뜻한다고 해요.
그런데 요즘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워킹맘은 에겐도, 테토도 아닌 어중간한 중간지대 어딘가에 계속 머무르는 존재라는 것.
얼마 전 부서에서 큰 프로젝트를 맡았는데, 연차는 많지만 손은 거의 안 대는, 전형적인 '고집 있는 시니어' 몇 분과 함께 해야 했습니다. 차라리 안 도와주면 나은데, 의견은 많고 실행은 없고… 정작 마감 임박해서는 “그건 애초에 무리였지 않았나” 같은 말로 슬쩍 발 빼시더군요.
그래도 저는 “그래, 내가 더 젊고 유연하니까 맞춰가자”라는 마음으로, 불협화음을 조율하고 결과를 내보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자, 윗선에선 교묘하게 실무진 탓을 했더군요. 저를 포함해서 열심히 뛴 후배들까지 같이 욕을 먹게 된 겁니다.
예전 같았으면 화가 치밀어 친구랑 맥주 마시며 눈물 흘렸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집에 가면 저를 기다리는 딸아이가 있으니까요.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지. 다음 기회에 바로잡자" 생각하며 묵묵히 다음 날 출근했죠.
하지만 그냥 참고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 일이 몇 번 반복되자, 어느 날은 테토녀 모드로 돌변했습니다.
“이런 프로세스로는 팀 전체가 효율을 낼 수 없습니다.”
“그 시점에 그 판단을 하신 건, 저희 입장에선 이렇게 느껴졌습니다.”
감정은 쏙 빼고, 팩트 중심으로 조목조목 짚었습니다. 회사는 말하지 않으면 정말 모르는 곳이거든요. 나 혼자 화내도 소용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때로는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를 포기하고, 조율자 역할을 자처해야 했습니다.
이런 저도, 주니어들 앞에서는 다른 모습입니다.
누군가는 실수 하나에 무너지고, 누군가는 상사의 말 한마디에 자신감을 잃죠.
그럴 땐 “왜 그런 말을 듣고만 있었냐”는 식의 테토녀식 훈계보단, "그건 너 잘못 아니야. 나도 신입 때 그랬어" 같은 에겐녀 모드로 돌변합니다.
같이 울어주고, 들어주고, 때로는 "네가 느낀 불합리함은 맞아. 하지만 그걸 실력으로 넘을 수 있다"며 다독입니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케줄이 틀어졌다고 스트레스 받는 딸아이에게는 "엄마는 옛날에 더 엉망이었어~” 하며 웃게 해주기도 하고,
어느 날은 “지금은 우는 게 아니라 해결책을 찾는 시간”이라며 단호하게 말하기도 하죠.
싱글일 때 저는 감수성 가득한 에겐녀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되고, 시니어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테토녀의 모습을 갖추게 됐습니다.
그렇다고 어느 하나를 완전히 버릴 순 없더라고요.
워킹맘은 늘 에겐과 테토 사이를 오가는 존재인 것 같아요.
그리고 가끔 그런 생각도 합니다.
“우리 딸도 언젠가 사회생활을 하겠지. 제발 이상한 상사 안 만나게 해주세요…”
전문직을 시켜야 하나, 창업을 시켜야 하나, 요즘 고민이 많습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