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결혼하는 친구를 축하하며
친구가 결혼한다. 처음으로 결혼하는 친구는 아니지만, 이토록 친했던 친구의 결혼도 없었다. 함께 유년시절을 보내고 20대를 내내 붙어 다닌 소중한 친구다. 생이 내게 준 것들 중 가장 귀한 선물 같은 친구이기도 하다. 함께 있을 때 즐겁다. 즐거움이 귀한 시대에 즐거울 수 있다는 건 때론 눈물겨운 감사함이다. 그러나 이 친구를 내게 즐거움을 준다는 실제적 효용의 층위에서만 '좋은 친구'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이 친구의 역사를 존중하고 살아갈 날들을 굳세고 멋지게 펼쳐나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이 친구의 총체가 내게는 각별하다. 결혼을 하겠다는 건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나의 친구는 아직 내가 해내지 못한 결정을 내렸다. 고민과 용기가 필요했을 결혼이란 결심을 하며 나보다 한 단계 더 어른으로의 성장을 해내기도 했다. 행복만 하기를 바란다. 진심이다. 앞날에 행복만 가득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도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때론 모질다. 어쨌든 경험적으로 누적된 데이터가 증명하는 것은, 행복만 한 삶은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고 그랬으니 앞으로도 찾기 요원할 수 있다는 서글픈 사실이다. 행복만 하면 좋겠다는 바람은 무색하게 때론 작고 큰 좌절들로 울적하거나 서글플 수 있다. 늘 뜻대로만 되는 삶이 아니라는 게 무척 비정하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을 테다. 그래도 이 친구는 그럼에도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행여 무너질 것만 같을 때에는, 이제 그 옆에서 온전히 무릎을 맞대고 함께 세상을 욕해줄 아내도 생겼으니 더욱 그럴 테다.
친구의 배려로 예비 아내와 함께 자리한 적이 있었다. 잘 어울리는 그들이었다. 성숙하면서도 의연한 분이었다. 무엇보다 따뜻함이 느껴졌다. 친구의 여생이 아마 결코 외롭진 않겠다고 느꼈다. '그대의 슬픈 내력이 그대의 삶을 엄습하지는 않기를'이라는 시 구절이 있다. 밝은 친구지만 그럼에도 다 말하지 못하고 가지고 있을 슬픈 내력이 있을 테다. 아내와 남은 삶을 꾸려나가면서는 최소한 지난 슬픔에 매몰되거나 잠식되는 일은 없겠다는 확신도 들었다. 나는 사람에게는 '불행하지 않음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어떻게 보면 행복이 요원한 세상에서의 비겁한 타협일지도 모른다. 불행과 행복 사이에 굳이 굳이 '불행하지 않음'을 욱여넣었다. 조금 더 축약하면 '무탈함'이다. 어쨌든 삶이 너무 서글퍼지는 순간에도 불행함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며, 행복은 멀리 있지만 멀쩡하고 무탈한 날들이라도 최대한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는 소망이다. 그날 둘의 모습을 보며, 최소한 서로로 인해 불행해지는 날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거 같다고, 감히 짐작하기도 했다. 둘이 서로에게 보내는 진실한 응원이 불행을 막아내기 위한 든든한 방파제가 될 것이다. 그럼, 됐다. 삶은 지나치게 복잡하지만 그중 중요한 것들에 선한 마음으로 천착하는 것만으로도 어려운 문제가 손쉽게 풀리기도 한다. 사랑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지만, 사랑은 많은 문제를 풀어내는 시작점일 수도 있다. 요령을 부리는 게 아니라 우직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삶을 대하는 태도가 가치 있는 이유며, '사랑'이라는 매개로 만난 내 친구와 친구의 아내도 마찬가지로 삶의 무너짐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을 지탱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추억'과 '희망'이라 생각한다. 둘 사이의 '추억'들이, 혹여 힘든 시간이 찾아와도 이 순간도 다시 추억이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이어지도록 도와줄 테다. 희망은 생의 역사란 맥락에서 잉태되는 소중한 바람이다. 단순하고 막연한 기대와는 다른 이유다. 연속 함수와 같은 인생에서 순간순간의 고민과 변수들이 반영된 아주 복잡한 방정식의 결과가 희망이다. 그러니 희망은 지난날에 발 딛고 내일을 긍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앞으로는 좋은 이들만 펼쳐질 거라는 게 희망의 요체가 아니다. 희망은, 우리의 어려움조차 마냥 무의미하거나 무가치하지만은 않을 거라는 믿음에서 기인한다. 사람이 끝내 무너지는 건, 아주 큰 한 번의 충격이기보다는 누적된 절망들을 더 이상 견디거나 수용할 수 없어서일 때가 있다. 지금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친구에게나 내게나 괴로운 일들은 있었을 테다. 그럼에도 친구는, 누구보다 사랑하고 다시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해 주는 아내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 어디서 툭, 내려온 사람이 아니다. 친구의 복잡한 삶의 방정식이 있었고 그 여로에서 만나게 된 친구의 아내다. 최소한 두 사람만큼은, 서로를 만나기 위해 때론 벅차고 때론 어려웠던 삶을 때로 겨우 버텨냈던 것이라고 긍정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 큰 기적과도 같은 만남이 있었으니, 앞으로도 삶이 버거운 순간마다 이 역시도 언젠가의 다른 기적을 위한 시간이라는 희망을 가져볼 수 있을 테다. 너무 소중하지만 그만큼 품기 어려운 희망이 둘에게는 분명 존재한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던 나의 소중한 친구가 이제는 굳이 먼저 약속을 정하고 만나야 한다는 것에 조금의 유치한 샘이 나기도 하지만, 친구의 더없이 아름다운 표정의 결혼사진을 볼 때마다 나도 웃음이 난다. 우리가 이렇게나 컸구나,라는 마음도 있다. 어느덧 흘러간 시간이다. 그저 흐르기만 할 수 있던 시간을 내 친구는 꼭 움켜쥐며 소중한 인연을 만나게 되었다. 배울 게 많은 친구다. 삶에 씩씩하고 당당하며 가능한 정직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내게도 종종 영감을 준다. 이제 나의 친구는 '남편'이라는, 내가 겪어보지 못한 미지의 역할을 수행하게 됐다. 내게 그랬듯, 함께 있을 때 즐거우며 힘든 순간에 가장 먼저 생각나는 남편으로 남은 생을 성실히 살아갈 거라 믿는다. 생에 단 한 번만 무언가를 걸어야 한다면, 친구의 날들이 무탈하고 종종 행복할 거라는 것에 베팅하겠다. 의례적인 축복이 아니라, 내가 봐 온 이 친구라면 능히 그런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거라는 굳건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뵀던 친구의 아내 역시도 내 친구를 충분한 사랑으로 감싸주고 안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서로를 외롭지 않게 할 수 있는 부부라는 건, 어쩌면 전생에 나라를 구하는 것 이상의 공덕을 쌓아야 가능한 기적일지도 모르겠다. 둘의 만남이 기적이라는 건 두 사람 모두가 언제나 인지하고 있을 테니, 나는 친구와 친구의 아내 모두 어떤 순간의 서글픔에도 결코 무너지지 않을 거라 확신한다. 두 사람 모두 서로에게 충실하고 삶에 성실하며 남은 삶의 여행을 손 꼭 잡고 걸어갈 테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기쁜 마음에 조금은 내가 주책맞게 울컥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축하한다는 소리다. 별다른 소질이 없어서, 재주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재롱 같은 글로 이렇게 축하의 마음을 구구절절 적었다. 내가 빚어낼 수 있는 가장 큰 축하의 마음으로 축하를 건네며, 삶의 제2막으로 넘어갈 친구의 인생에 우리가 함께 부질없게 보냈던 시간도 충분히 의미 있었다고 기억되기를 함께 바란다. 아내도 있고 우리 같은 친구도 있는 친구니, 남은 삶을 살면서도 외로움을 느낄 일은 없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우리를 찾기 전에 현명하고 지혜롭게 친구의 울적함을 먼저 느끼고 최선으로 친구를 보듬어줄 아내를 만난 것 같아서, 참 다행이고 뭉클하다. 축하해 친구야. 너의 기적에 경의를 보낸다. 우리가 봐왔던 가장 밝은 별들보다 더 밝은 날들이 티없이 맑은 바람처럼 너의 앞길에 가득하기를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