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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vergreen Jun 09. 2024

이상한 학생들

가야 할 길과 그저 가는 길

봄 학기 개강 첫날, 해석역학 시간이었다. 나는 사무엘 (Samuel)이라는 학생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개강 이전에 누가 수업을 신청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이 학생이 몹시도 궁금했다. 해석역학은 2, 3학년 학생들이 듣는 고전역학 (Classical Mechanics)과 동일한 물리학 전공과목 중 하나였다. 보통 전공 학생들도 힘들어하는 고급 미적분으로 물리 문제를 푸는 거라 수학적 능력도 요구되는 좀 학생들한테 어려운 과목으로 통한다. 그런 과목에 전공이 "기독교학"인 친구가 내 수업을 들으려고 등록했다. 과연 삼각함수나 알까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이 학생의 배경이 궁금했다.

수업을 진행할수록 자연스레 학생들과 교통 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자연스레 이 학생에 대해 알게 되었다. 당연히 나의 관심을 강하게 끌 수 있었던 것은, 매 시험과 숙제 점수가 탁월했다. 분명 이 수업을 듣기 위해 선제 과목인 미적분학도 잘 이수했던 것 같다. 


"저는 신학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입니다. 우선은 그게 목표고 그다음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것입니다". 그럼 왜 물리학 수업을 듣냐고 물었다. 다른 인문 사회 과목 중 선택할 수도 있는데라고 덧붙였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과 만물을 다른 관점에서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롭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보통의 학생들과 다르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름도 하필 사무엘이지 않은가. 대견하지만 무모한 모험일 수 있다는 말은 해주지 못했다. 그저 잘하길 아니 잘 버티길 바랄 뿐.


2번의 중간시험과 최종 학기말 시험이 있었다. 마지막 기말 시험은 문제지를 나누어 주고 기한까지 제출하는 소위 오픈북(Open Book) 시험이었다. 한 학기 동안에 배운 것을 다 이해해야 했으며 잘 이해 못 했으면 다시금 처음부터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었다.


기말 시험 답안지를 채점하는데, 사무엘의 답안지는 다른 학생들과 확연히 차이가 났다. 정말 과목 내용을 확실히 이해하지 않으면 못 쓸 답안이었다. 학기 내내 그랬다. 전공자인 다른 학생들보다 한 수준 높은 실력을 보여왔다.


학기가 끝날쯤에, 이 학생이 졸업을 앞두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점도 의아했다. 졸업을 앞둔 시점이면 졸업 준비를 하며 쉬운 과목을 들으며 학점 관리를 하는 것이 보통인데, 전혀 다른 전공의 고학년 수업을 듣다니...

아무튼 탁월한 사무엘에게 너의 재능이 아까우니 물리학 석사나 박사 과정을 밟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너 정도의 실력이면 어떤 대학원에 가도 성공할 수 있다고, 추천서도 써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의 대답은 확고했다.

"저는 이 길이 저의 길임을 확신합니다. 저는 신학 대학원에 가서 신학을 공부하는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 (Calling)이라고 믿습니다".


사무엘은 내가 개인적으로 경험한 많은 학생들 중에 탁월한 물리 실력을 갖췄다. 그는 물리학을 계속 공부했어도 성공할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가 택한 아니 그의 부르심이 있는 신학에서도 그는 분명 탁월함을 나타낼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하나님께서 그를 어떻게 인도하실지 모르겠지만, 목회자로, 신학자로, 선교사로 아니면 다른 모습이든 탁월하게 쓰임 받을 것을 믿는다. 그의 지적능력을, 성실함을 세상 학문이 아닌 영혼과 신앙의 문제에 정열을 쏟는 그의 모습이 자랑스럽다.


오래전에도 비슷한 학생이 하나 있었다. 다른 학교에서 강의 조교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 실험과목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유난히 성실하고 똑똑한 학생이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나무로 만든 제법 크기가 있는 십자가를 목에 걸고 실험에 참석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미국 학생들도 이러는구나 하며 다소 의아해하며 유심 있게 그를 지켜보았다. 실험에 성실히 임했으며, 실험 후에 쓰는 리포트도 잘 만들어 제출하곤 했다. 

나중에 우연치않게 이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야고보 (James)였다. 성경의 인물들 이름을 우리말로 소위 재해석해서 부르는 것이 엄청 어색하다. 야고보라 우리말로 부르니, 정말 예수님의 제자처럼 느껴지지 않은가. 

제임스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보았다.

"졸업 후 잠깐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한 2년간 다닌 후, 신학교에 진학할 예정입니다."


그들에게는 분명 가야 할 길이 선명하게 그들 앞에 놓여 있다. 그것은 분명하고 확고하고 쉽게 흔들리지 않은 길이다. 다른 많은 학생들처럼 그저 가야 하는 길들과는 다른 것이었다.

미국은 아직 영적으로 잠든 곳이 아니다. 사무엘과 제임스와도 같은 능력 있고 성실한 친구들이 연봉 수십만 불의 자리가 아닌 기도의 자리에, 성경을 가까이하는 자리로 가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Calling"을 통해 일꾼들을 모으시고 있기 때문이다.


우상 숭배와 타락이 극에 다다랐던 고대 이스라엘 왕조의 아합 왕 때, 외로이 선지자의 자리를 지키던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우상인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 명의 선지자들을 남겨 두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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