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by nEvergreen

뾰족한 얼음 알갱이들을 품은 듯한 빗방울들이 세상의 모든 빛까지 쓸어 담으며, 심연의 깊은 땅 어딘가로 사라진다.


무뚝뚝하고 무정한 회색 세상. 이제 막 인사차 찾아온 가을을 문 밖에서 거절하며 이 오랜 인기스타를 부끄럽게 만들어 버리고 있었다. 보도블록에 떨어져 사방으로 몸을 찢기는 빗방울들은 이 모든 무거움에 죄책감을 느끼며 스스로 산화하고 있었다.


마음의 속도가 발길보다 빠른 빗길 속을 걷는 즈음에, 스쳐가는 흐릿한 소리가 송이의 발걸음을 순간 얼어붙게 만들었다.


익숙하지 않았지만 분명 기계음이거나 물리적인 것이 아님을 직감한 순간, 그 낯선 소리는 송이의 귀가 아닌 마음속에 들어와 버렸다. 모든 음파를 모으려는 듯 귀를 기울여 주위를 둘러보는 순간, 자동차 몇 대가 주차된 어느 건물 한 구석에서 가냘펐지만 무거운 영혼이 담겼고 애절했지만 세상 어떤 송곳보다 더 날카로운 울림이, 비에 젖어 질식되어 가는 세상 속을 아주 또렷하게 뚫고 나오는 것을 깨달았다.


절제되지 않은 감정이 송이의 발길을 그쪽으로 내몰았다.


태어난 지 두세 달 정도 되어 보이는 한 아기 고양이가 구석에서 혼자 웅크리고 앉아 울고 있었다. 한 움큼 크기의 아이 고양이는 떨며 동그랗고 검은 눈으로 송이를 바로 직시하고 있었다.


아기 고양이는 눈 빛에, 자신의 몸같이 작은 희망과 함께 세상을 덮는 비처럼 큰 두려움을 동시에 실어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새 체념으로 가득 채워져 고개와 함께 땅으로 꽂혀 들어가고 있었다. 회색빛 바닥을 무심히 적시는 빗줄기는 이 아기 고양이의 몸을 적시며 털들을 날카롭게 갈라내고 있었다. 그렇게 갈래 진 털들은 아기 공양이 떨림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마치 구원의 작고 마지막 소망을 품은 듯, 살짝 들어 올려져 있던 앞 발은 이제 무슨 생각에서 인지 아니면 잃어가는 의식에 의한 건지 고개와 함께 떨구어 가고 있었다.




이 세상에 지극한 악과 성스러운 사랑이 공존하는 것은 인간에게 내려진 징벌일까 아니면 어떤 영적인 메시지일까라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물음을 생각하고 있는 자신에 놀라는 순간, 그녀는 지금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확신을 가진 듯했다.


확실히 지금 이 순간은, 이곳을 무심히 떠난다는 것은 확실한 악이 될 것이다.


혹 다른 이가 먼저 이 아기 고양이를 발견했다면 위생센터에 신고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른 유기된 많은 애완동물과 함께 차에 태워져 삶의 마지막 공기를 마시며 죽음의 길로 갔을 것이다. 새끼라고 동물보호소 같은 곳을 데려가지 않는다. 지금은 그렇게 가져가 입양을 기다려도 거의 대부분 새 부모를 만나지 못하고 안락사 처분되고 있다.


가끔은 현세에 비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경우들, 마음이 정말 따뜻하거나 정서적 문제가 있는 이들이 아기 유기동물들을 가져다 키우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도 대부분 키우다가 어느 정도 자라고 나면 위생센터에 전화를 걸고, 펫토이드를 들여놓는다. 아주 간혹 전자의 경우 삶의 대부분을 그 입양한 아이들의 모든 삶과 함께 보내는 경우도 있지만…


마음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순간, 이성의 힘이 이 항해의 키를 가까스로 붙들었다. 키울 자신이 없었고, 차라리 이 아이는 안락사가 더 낳지 않을까 하는 의식적 자기 위로가 마음에 이상한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것을 느꼈다. 지금 이 세상에 실제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잖은가.


수많은 개와 고양이들이 길거리에 버려지고 있다. 이 주인 잃은 불쌍한 신세들은 무자비하고 폭력적으로 수거해 가는 수거차량에 실려 손쉽게 없어질 것이다. 말썽 안 피우고, 무엇보다 항상 뭔가 해 줄 필요가 없는, 예를 들어 산책을 시킨다든가 배변거리를 치운다든가, 시시때때로 밥을 준다든가, 아니면 멀리 여행 갈 때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이제는 필요 없게 됐다.


실제와 똑같은 촉감과 털과 눈망울과 발톱과 손톱을 가진 펫토이드(petoid)라 불리는 로봇 반려묘와 반려견들이 각 가정에 적어도 하나 이상을 갖고 있다. AI의 도움으로 이들은 보통 실제 강아지와 고양이들이 행동하는 일반적인 수십 가지의 행동을 그대로 행할 뿐 아니라 인간의 호기심을 극적으로까지 몰고 가는 더 많은 것들을 행할 수 있으며, 각 상황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이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진짜 애완동물들이 나타내는 반응과 행동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할 수도 있다. 물론 경우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로 매겨진다. 똑똑하고 재미있는 녀석은 부자들 사이에서 이미 몇 천만 원에 팔리고 있다. 보통 펫토이드경우 수십만 원인 것에 비해. 제3세계에서 모조품으로 들어오는 값싼 것은 몇 만 원에도 팔리고 있다.


그래도 아직까지 인간 주인들 중에는 실제 애완동물을 끝까지 키우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상한 차별과 시선은 그들이 그렇게 하는 삶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주로 바깥에 산책을 하는 경우에 더욱 조심해야 했다. 애완동물이 길거리에서 배변하는 경우는 그야말로 눈살을 찌푸리는 많은 이들의 시선을 감내해야 했다. 냄새나고 더러운… 누군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짖기라도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애완견과 함께 주인을 야만스러운 존재들로 보는 시선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무뚝뚝한 고양이들은 사정이 더욱 심하다. 잘 반응하고 물거나 할퀴지 않는 펫토이드들이 무뚝뚝한 고양이들의 자리를 대부분 차지했다. 그뿐인가, 펫토이드들은 자그맣고 귀여운 새끼 때 그대로의 모습을 갖고 있지 않은가. 물론 어른 개와 고양이로 정확히 크기며 모양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다만 비용이 조금 들 뿐이었다.


이런 모든 생각과 현실의 불편함이 마음속에서 살짝 틈을 엿보는 때에 불현듯 오래전에 사고로 잃은 조이가 생각났다.


송이의 수많은 감정의 광선들이 우주 사이를 왕래하는 여행을 마치고 무언가에 이끌러 져 한 점으로 모아지는 것을 느끼는 순간, 송이는 방황의 거추장스러움을 단 번에 가르는 결단을 가졌다. 이제 이 아이는 조이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불안한 앞일은 이 강한 집착스런 애정에 아무런 힘을 내지 못하고 송이와 아이가 걷는 길 뒤에서 비에 씻겨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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