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동준은 굉장한 부자였다.
삶의 모든 편의가 그에게 주어졌지만, 그러나 그는 교만하거나 결코 오만한 자가 되지 않았다. 그의 재력은 그에게 어느 정도의 거만함을 허락하였으나, 동준은 일반적으로 사람에게 요구되는 보편적 가치를 잃지 않으려 했으며, 자신에게는 특별히, 가시적인 삶 이외의 내적인 가치의 것들에 대한 의식적 인지를 추구하였다. 결과적으로 그것을 통해 무언가 결실을 이루려는 듯이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에게 삶은 결코 값싸고 무의식적으로 메꿔가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것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어느 순간 그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이런 친구가 당연히 민호에게는 의아스럽지만 매력적이었다.
특별한 것도 일상적인 것도 아닌 어중간한 시점에 친구 동준의 초대로 민호는 그의 집을 방문했다.
동준이 주방 쪽으로 “부탁한 것 내올래요?” 하고 외쳤다.
민호는 주방에서 어떤 낯선 여자가 차와 커피를 내어 오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걸음은 다소 이상스러웠다. 안 맞는 신발을 신었거나, 몸에 착 달라붙는 치마나 청바지를 입었을 때 옷 안쪽에 거북한 이물감을 느끼는 듯한 모습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민호는 그녀가 편한 실내화에 무릎까지 내려온 편안한 주름치마를 입고 있는 것을 보는 순간, 그의 추측을 수줍게 접어야만 했다.
그녀는 가져온 커피와 차 세트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후 민호 옆에 앉았다. 동준은 싱글 카우치에 앉아 있었고 민호와 동준 사이에 앉을 공간이 있었지만, 그녀는 그들 사이를 파고들지 않았다.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이 무례인 것을 알기에 되도록 기회를 틈타 보려는 노력은 민호로 하여금 계속 곁눈질을 하게 만들었다. 동준은 자기가 여자 휴머노이드(humanoid)랑 살고 있다고 말했었다.
‘이 여자 아니 이것이 그것인가?’
민호의 의아심은 거대한 호기심으로 자라고 있었다. 동준은 이 페미노이드(feminoid)를 가정부이며 때론 아내로서 들여놓았다고 했다.
‘아내와 가정부라는 것이 한 여자에게 주어질 수 있는 두 가지 신분이었던가?’
민호의 생각은 눈치채기 어려운 실소로 이어졌다. 동준이 이 모습을 눈치채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동시에 민호는 끊임없이 스스로 답을 알고 있는 질문들을 던지면서도, 어처구니없게도 그 답들을 페미노이드의 얼굴에서 찾으려는 듯 보였다.
조금 전에 “안녕하세요, 미나라고 해요”라는 인사를 할 때 느꼈던 실제감과 사실감은 그녀의 피부를 가까이서 보는 순간, 충격은 일종의 공포심으로까지 이어졌다. 사실과 허위를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은 마치 캄캄한 호수를 노 하나로 작은 배를 저어 가고 있는 것 같지 않는가.
얼굴에 깨끗하고 화사하게 행한 화장은 그 아래에 땀구멍의 흔적을 품고 있었고, 왼쪽 볼 중간보다 살짝 아래쪽에 작은 뾰루지 같은 것이 나 있었다. 그리고 귓불 아래쪽에 작은 검은 점도 그 찰나의 관찰에도 보일정도였다. 얼굴의 한쪽에 살짝 어린 기미기도 있는 것이 보였다.
‘동준은 페미노이드를 들여놓은 것이 아니라, 분명 여자를 들여놓은 것이었다!’
동준이 민호에게 그녀의 피부를 만져보라고 요구했다. 민호는 반쯤 마비된 정신 탓에 이성적 제제를 가하지 못 한채 무조건적 반사 반응으로 친구의 말을 따랐다.
살짝 손가락으로 곁에 있는 그녀의 팔 언저리를 만지려는 순간, 미나는 민호와 동준을 째려보며 동의 없이 자신을 만지는 것은 무례라며 말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말은 민호의 모든 인지 신경과 감각 세포를 한꺼번에 일깨웠다. 민호는 그녀에게 연거푸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말을 하며 사과하는지 민호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그것을 본 친구는 깔깔거리며 이상한 만족감과 통쾌함이 섞인 웃음을 거실에 채우고 있었다.
당황함과 친구의 행동에 불쾌감을 느낀 채로 민호가 친구와 그녀를 번갈아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하고 있을 때, 그녀가 살짝 토라진 투로 다시 만져보라며 팔을 내밀었다.
민호는 이러한 제의가 어색하고 난처한 상황을 벗어나려는 기회로 여기며 아주 재빠르게 그녀의 팔 언저리에 다시 손가락을 대어 보았다.
'온도!!’,
적당한 서늘함 속에 숨겨진 따스함이 손가락 신경 속을 따라 올라오는 듯한 때에, 저항감 있는 탄력에 촉촉함마저 민호의 감각 신경 속을 내달리고 있었다.
‘사람이다!!’
민호는 잠깐 움찔하며 상체를 뒤로 젖혔다. 그리고 모든 것을 사과의 말에 실어야 했다.
“죄송합니다. 많이 실례했습니다. 페미노이드인 줄 알았어요. 동준이가 자기가 페미노이드를 새로 들여놓았다고 하였길래…”라고 무례와 무지의 수치심은 말까지 힘들게 되뇌게 했다.
친구는 또 한 번 크게 웃었고, 이제 그녀도 입에 손을 가져간 채 웃고 있었다.
2038년. 이혼율은 엄청나게 떨어져 있다. 마찬가지로 결혼율도 10여 년 전에 비해 엄청 떨어졌다. 결혼의 이유와 목적과 의미가 쇠퇴해져가고 있다. 가정법원은 소송과 재판 건수가 현저히 줄었다. 골치 아픈 친자 소송, 불륜, 자녀 탈선, 시부모 문제, 재산 상속 등등의 문제들은 가끔 특종감이 될 수 있는 정도다. 가정이라는 패러다임이 묶어 놓았던 그 수많은 편안함과 자유가 이제 세상에 풀어져 마음껏 향유되고 있다. 동준은 사랑하던 아내를 잃은 후 미나라는 값비싼 페미노이드를 특별히 주문했다. 처음에는 얼굴도 죽은 아내와 똑같이 주문했었으나, 어느 때인가 무슨 이유에서 인지 모르게 얼굴을 새로이 고쳐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