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늦은 봄날, 송이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차를 몰고 가는 길이었다.
여느 때와는 달리 퇴근길의 복잡한 도로를 피해 다소 오래 걸리지만 한적하며 아름드리나무들이 길 주위에서 활짝 편 팔들로 반기는 산비탈 아래의 도로를 달리고 싶었다.
지방 도시의 변두리 도로는 한적했으며 시나브로 푸른 회색 빛이 세상을 덮어 가고 있을 때, 선선한 저녁 바람을 쐬며 저녁 식사를 하는 두 마리 노루들이 도로 주변에 나와 있었다. 매우 일상적이지 않은 아름다운 광경에 시선이 그 노루들에게 돌아가고, 그중 한 마리와 정확히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오물거리는 입을 보이며 녀석의 검고 둥근 눈은 무언가 말하는 것 같이 빛나는 초점을 갖고 있었다.
“쿵!”
뭔가 둔탁한 것이 차에 부딪히는 것을 느꼈다.
진동을 느끼는 동시에 반사적으로 앞을 주시했지만, 앞에 아무것도 없었다. 시선은 다시 반사적으로 백미러로 옮겨졌는데, 반원형의 검은 물체가 방금 지나온 길에 나동그라져서 차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순간 ‘타이어!’라는 생각이 스쳤고, 도로에 떨어진 폐타이어를 밟았구나라는 확신이 몰려왔다. 주위에는 송이의 차외에 다른 차는 보이지 않았다.
‘노루한테 홀렸구나’라는 어처구니없고 억울한 생각 속에 주차할 곳을 찾고 있었는데, 갑자기 차 밑바닥에서 뭔가 긁히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상황이 심각함을 깨닫고 바로 다소 덜 위험해 보이는 차도 주변에 차를 멈추고 차 앞을 살펴보았다.
순간 눈을 의심할 정도로 운전석 바퀴 앞쪽이 다 없어져서 차 내부의 엔진 부분이 드러나 보였고, 앞 범퍼는 1/3이 없어진 채 땅바닥에 닿아 있었다.
‘아~ 그 노루와 눈 만 마주치지 않았더라면…’ 다시 한번 후회가 밀려왔다.
사고 다음 날은 휴일이라 일하는 곳에 가지 않아도 되었다.
분명 깨진 차의 부분들이 떨어져 있을 거란 확신하에 어제의 문제의 장소로 차를 몰았다. 범퍼는 끈으로 고정했고, 새 범퍼를 주문해 놓았다. 여러 정비소에 문의하여 견적을 내 본 결과 보험처리도 안 되며 약 300백만 원가량의 수리비가 든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차를 잘 아는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자 중고 부품을 우선 주문하여 놓고, 고칠 때까지는 흉측하게 드러난 차 내부를 가리고자 부서진 범퍼와 부분들을 찾아서 대충 붙이고 다닐 생각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사고 현장 쪽으로 시골길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다리가 있었고, 차를 세워 둔 곳 뒤쪽에 키가 다른 낮은 두 구릉이 마주 보고 있었던 곳, 그중 왼편 작은 구릉에 노루들이 있었던 곳 같은 지점에 가까이 온 느낌이 들며 이쯤이다 싶어 도로를 유심히 살펴보는 순간.
도로에 핏자국이 흥건했으며 사체가 끌려간 자국이 보였다.
분명 폐타이어를 치었는데…이 말을 되뇌며 차를 도로 곁에 세우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한낮의 햇살은 무척 따가웠고 주위의 온도가 한 여름같이 무더웠다. 풀들의 말라가는 냄새, 나무 냄새가 기대되었지만, 의아하게 고기를 구운 듯한 냄새가 사방에 은은히 퍼져 있었다. 그리고 송이의 눈앞에는…
작은 동물의 척추뼈로 보이는 것이 살이 거의 다 발라진 채 얼마간의 털가죽에 덮여 있었다. 머리와 다리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 주위에서 자신의 차의 부서진 범퍼와 앞바퀴 부분 그리고 타이어 안쪽 가리개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 타이어 안쪽 가리개는 송이가 어제 백미러로 본 반원형의 모양이었으며 검은색이었다. 그리고 금이 많이 난 부서진 범퍼 사이에 작은 털들이 박혀 있는 것을 보았다.
‘동물을 치었다!’.
그것도 남겨진 뼈의 크기로 봐서
‘아기… 아기노루!’.
갑자기 길고 날 선 검으로 심장을 쑤시는 아픔과 절망적 고뇌가 뇌 속을 파고들었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비명조차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졌던 일. 자신이 그 풀을 먹고 있던 노루와 눈을 안 마주쳤다면 그 어린 노루를 피할 수 있었을까? 생명을 자신의 손으로 해치웠다는 자책감이 그 모든 생각들을 덮어 누르고 있었다.
잠시 이성적 회복이 있은 후 사고 후의 일련의 과정들이 떠올랐다. 누군가가 죽은 노루 시체를 도로에서 끌어내어 부서진 차 부품들과 함께 도로 곁에 치워 버렸고 밤 새 야생 동물들에 의해 살이 발라져 먹혔던 것 같다.
치인 노루를 직접 보지 않았던 것이 다행일지 모른다. 사고 처리는 둘째 치고라도 피범벅이 되어 죽은 그 어린 노루를 본다는 것은… 다시금 죄책감이 이 모든 생각을 집어삼켜 버리고 말았다.
그 사건은 일반적인 경우처럼 치유의 과정이 이루어지겠지만, 송이에게 절대적 상처를 흉터와 함께 정서에 남기고 말았다. 역설적으로 그것은 그 생명과 사랑, 진실이라 불리는 것들에 반하는 행동들에 대해 특별히 양심의 긴장을 요구하지 않는 어느 정도의 의식의 편리함과 편안함으로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생명이 없고 무감각과 무의식인 펫토이드들에 대해 살아있는 동물들보다 더 강한 친근감이 들 정도가 되고 말았다. 그러한 가상적인에 대한 친근감과 실제적인 것들에 대한 반감은 분명 가식적인 집착이었다. 송이도 의식하고 있었지만, 본인도 어쩔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자신에게 멀어만져 가는 진실과 진정을 멀리서 째려보며…
가끔 있지만 이제는 살아있는 동물을 살해하는 악몽은 전보다 덜 꾸고 있다. 애완동물의 로봇화에 대해 더해진 공공적인 순기능은, 도로에 차에 치어 죽는 개나 고양이 수가 현저히 줄었다는 것이다. 아주 가끔은 차에 치여 망가진 펫토이드들도 나오긴 하지만…